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전국 곳곳에서 적신호가 켜지고 있는 응급의료체계가 서울 등 대도시에서도 잇따라 '구멍'을 보이고 있다며, "무너진 의료 정상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또 의·정 사태 장기화로 의료현장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도 정부가 여전히 '땜질' 식 대책과 허울뿐인 논의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실효성 있는 대화 창구'를 열어 달라고 촉구했다.
최안나 의협 총무이사 겸 대변인은 22일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열린 의료현안 관련 일일브리핑에서 서울 노원구 소재 인제대 상계백병원과 경남 양산의 부산대병원 응급실 동향을 공유하며 이 같이 밝혔다.
의협이 공개한 해당 병원들의 응급실 현황에 따르면, 인제대 상계백병원은 유아 장 중첩·폐색의 경우, 평일 진료는 가능하나 주말은 해당 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또 소아과 응급실도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진료가 가능하지만, 주말 진료는 불가능하다'고 나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외과 환자는 '야간시간대(오후 5시~익일 오전 8시) 반드시 수용 능력을 확인하라'고 되어 있어 진료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가 하면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양산부산대병원은 이날 오전 기준 '소아를 포함한 모든 파트의 정형외과 진료·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최 대변인은 이를 두고 "이게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대도시의 권역응급(의료)센터마저 (의료진 부재 등으로) 진료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일시적인, 일부 병원의 문제'라고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고 당국을 직격했다.
그러면서 "곧 추석 연휴가 다가온다. 현장에 있는 의사들의 걱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지금 우리 사회의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무너진 의료를 정상화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범 직후부터 의협이 보이콧 중인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대해선 "무너지는 의료체계를 외면하고 한가하게 수사로 가득한 논의를 할 때가 아니다"라며 부정적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날 오전 진행된 특위 산하 의료사고안전망전문위원회 토론과 관련해선,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의료사고 안전망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의료 공백을 먼저 정상화시키고, 의사들이 기피하는 진료를 소신껏 할 수 있는 지원과 법적보호 장치를 제도화해야만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응급실 과부하를 야기하는 경증 환자의 지역 병·의원 분산, 응급실 전담인력 인건비 지원 강화 등의 대책을 발표한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을 맹공하기도 했다.
최 대변인은 박 차관을 가리켜 "의료 현장과 교육의 일상을 파괴시킨 장본인으로 의료계가 경질을 요구한 바 있다"며 "오늘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본인이 일으킨 응급의료 붕괴 상황에 대한 아무런 반성과 사과 없이 말뿐인 대책을 쏟아냈다"고 비판했다.
또 의정 사태 초기였던 올 3월 언론 인터뷰 당시 박 차관의 발언('모든 의사들이 다 현장을 떠나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겠다', '전세기를 내서라도 환자를 실어 날라 치료하겠다' 등)을 인용했다. 최 대변인은 "이 사태에 책임 있는 당국자로서 국민들에게 한 약속을 지켜라"라며 "전세기는 언제부터 이용할 수 있는지 당장 밝히기 바란다"고 비꼬았다.
이어 "이제는 공허하고 무책임한 의료개혁 논의보다 정부의 의료농단으로 촉발된 의료혼란과 전공의 부재, 의대생 교육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책임져야 할 사람이 반성 없이 현 사태의 초점을 흩뜨리고 국민을 더 이상 호도하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의협은 "졸속 정책추진을 일삼고 반쪽짜리 정책기구인 의개특위를 즉각 중단하여 대한민국 의료 거버넌스의 구조부터 개혁해 주기를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며, 정부를 향해 "9·4 의정 합의에 따른 의·정 간 실효성 있는 대화를 시작으로 사태 해결의 물꼬를 터줄 것을 재차 요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의협 전·현직 간부 수사와 관련, 전날 경찰이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데 대해 유감을 표했다.
최 대변인은 "우리 협회는 6개월이나 지난 현 시점의 경찰 조사에 대해 '독재와 탄압만 남았다'는 박 위원장의 표현에 깊은 공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수사 대상인 김택우 전 의협 비대위원장이 받은 '3개월 면허정지' 처분이 끝난 지 한 달여밖에 되지 않았다고도 지적하며 "매우 분노한다"고 덧붙였다.
최 대변인은 "폭압적인 수사로부터 전공의들의 대표자인 박 위원장을 적극 지원하고, 앞으로도 의료농단 사태에 맞서는 관계자들에 대한 정부의 강압적인 수사·소송에 관하여 변호인·대리인의 선임 및 관련비용 등을 지원하여 최선을 다해 회원 권익을 보호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