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중구청이 세계문화유산 등재 목록에 포함된 지역 대표 기념물 앞 도로를 '불법 현수막'으로 도배해 논란이 된 가운데 구청이 성과와 업적 홍보에만 혈안이 돼 거리 곳곳에 무단으로 현수막을 내걸고 있어 거센 비난이 예상된다.
21일 부산 중구 중앙동의 한 횡단보도 앞에 각종 현수막이 내걸렸다. 현수막에는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 최우수상 수상' 등 구청의 수상 실적이나 '펀&펑 페스티벌' 등 지역 행사를 홍보하는 내용이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동광동의 한 골목에도 구청 행사를 홍보하는 현수막이 내걸리는 등 중구 거리 곳곳에서 구청의 치적과 행사를 홍보하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 현수막은 대부분 지정 게시대가 아닌 도로변과 가로수, 전봇대 사이 등에 설치된 모습이었다. 관련법상 이는 모두 '불법'이다.
옥외광고물법 제5장 제24조에 따라 전봇대나 가로등 기둥, 가로수 등에는 광고물을 표시할 수 없다. 현수막의 경우 지정 게시대나 시공 또는 철거 중인 건물의 가림막에 표시하는 것만 가능하고 위반 시 면적에 따라 벌금이 부과된다.
불법 현수막들은 대부분 부산 중구청이 직접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중구청은 부산시 지정 기념물이자 세계문화유산 등재 목록에도 포함된 부산근현대역사관 앞 도로까지 '치적 자랑'용 현수막으로 도배해 비판을 자초한 바 있다.
구청은 광복절을 앞두고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 앞 도로에 5~6장의 현수막을 게시했는데, 대부분 구정 성과와 행사를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마찬가지로 지정 게시대가 아닌 도롯가에 무단으로 설치한 '불법' 광고물이었다.
도시 경관을 가꾸고 기념물을 관리해야 할 지자체가 오히려 무단 광고물을 무분별하게 설치해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구청이 한쪽에서는 이처럼 무단으로 현수막을 내걸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대대적인 불법 현수막 단속에 나서 '이중 잣대'라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구청은 올해 상반기에만 440개의 불법 현수막을 수거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7년에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옥외광고물 실명제를 도입한 바 있다.
부산참여연대 양미숙 사무처장은 "지자체에서는 불법 현수막을 걸지 말라고 해놓고 정작 본인들이 무단으로 현수막을 건다면 이율배반적인 것"이라며 "구청에서 직접 알리고 홍보하고 싶은 요구가 많다면 법적 테두리 안에서 현실화할 방법을 찾아야 하고 형평성 있게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지역 주민도 "문화재나 지역의 상징적인 건물 앞을 현수막으로 가리는 경우가 세계에 어디 있냐"며 "근현대역사관 건물 외에도 거리마다 무단으로 걸린 현수막 대부분이 보면 단속 권한을 갖고 있는 구청에서 설치한 게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구청은 주민 불만이 제기된 만큼 조치에 나서겠다면서도 "불법이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라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입장을 밝혔다.
중구청 관계자는 "현수막을 설치할 때 제한사항이 많고 지정 게시대도 부족하다 보니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잠깐씩 융통성 있게 걸었던 것"이라며 "불법 주정차 역시 불법이지만 어느 지역에나 있지 않느냐. 문제가 되면 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