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무뢰한'으로 칸을 매료시켰던 오승욱 감독이 다시 한번 전도연의 손을 맞잡고 '리볼버'로 돌아왔다. 전도연으로부터 시작된 '리볼버'에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얼굴의 전도연이 담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오승욱 감독은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몫을 되찾기 위해 나아가는 여자가 그것들을 돌려받기 위해 어떤 방식을 활용하게 될지 고민했다. 한층 한층 단계를 거듭해 나가는 형식, 그 뼈대에 주인공이 사람들을 한 명씩 찾아가는 이야기를 구성했다. 그렇게 투명 인간에 가까웠던 한 인간의 분투기가 탄생했다.
오 감독은 잃어버린 대가를 되돌려받기 위해 나아가는 수영의 직진 서사 위로 다양한 인물이 얽히며 만들어지는 심리적 긴장감과 촘촘한 서사를 통해 '리볼버'만의 고요하면서도 뜨거운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수영과 주변 인물들 간의 묘한 케미스트리와 변화하는 관계들로 드라마의 밀도를 높였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배우들, 다시 말해 연기력이었다. 그렇기에 '리볼버'에는 주연부터 조연은 물론 특별출연까지 이른바 '연기 구멍'이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오승욱 감독이 어떻게 '리볼버'를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했는지 그리고 지금의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 초반에는 정보성 대사가 많은 만큼 늘어진다고 느낄 수 있기에 초반의 리듬감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거기서 관객들이 떨어져 나가면 큰일이 정말 고민이 많았다. 기반을 쌓아가야 하는데, 결국 배우들의 연기 하나만으로 가져가야 했다. 이게 정말 어렵고, 쉽지 않았다. 편집하면서 졸리거나 이상하면 덜어내기도 하고, 손을 많이 댔다. 그렇지만 초반에 빌드업을 해놓지 않으면 갈 수 없었다.
▷ 극 중 하수영의 삼단봉 액션은 검도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작품에서 특별히 검도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경찰을 주인공으로 했을 때 상대와 싸울 게 필요한데, 그때 어떤 격투 방법이 필요한지 생각했다. 유도도 있고 검도도 있는데, 유도를 선택하기엔 내가 영화적으로 만들 자신이 없었다.(웃음) 검도로 하면 뭔가 재밌는 게 나올 거 같기도 했다.
예로부터 검객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검객이라고 하면 청렴결백하고 대나무처럼 꼿꼿한 이미지가 있데, 그런 민기현(정재영) '시한부라면'이라고 가정해 봤다. 시한부가 됐을 때 어떤 사람은 더 꼬여버리기도 한다. 애정이 뒤틀려 버린다. 그래서 검도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킬리만자로'부터 '무뢰한'까지 내가 좋아하는 게 삼단봉 액션이다. 거기에 매료된 게 있었다. 유튜브에서도 계속 검도, 삼단봉 관련 영상을 보면서 이번에도 하고 싶었다. 전도연이 삼단봉을 휘두른다면 얼마나 재밌고 멋있을까 싶었다.
▷ '리볼버'라는 영화의 결정적인 한 방은 엔딩이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강렬했다. 원래부터 지금의 엔딩을 계획한 건가?
맨 처음 시나리오 썼을 때부터 지금의 엔딩이었다. 이 영화는 존재감이 전혀 없는 투명 인간 같은 인물인 하수영이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집도 돈도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러다가 맨 마지막에 가서 '내가 하수영이야!'라고 하는, 그거 하나만을 위해 가는 영화였다. 전도연 배우가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나더니 꽁치에 소주를 먹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 엔딩 장면 촬영은 어떻게 진행했나?
그냥 카메라를 갖다 대면 (전도연 배우가) 정말 그런 연기를 할 거라 믿었다. 그래서 한 테이크만 갔다. 정말 마지막 그 얼굴이 툭 나왔다. 그런 점에서 난 되게 복 받았던 거 같다.
▷ '무뢰한'에서 전도연과 함께할 때도 '리볼버'에서와 같은 느낌을 받았었나?
전도연 배우와의 첫 촬영 때 느꼈다. 시나리오를 썼을 때는 (장면들이) 그저 머리 안에 있는 환상과 그림일 뿐, 실제와는 다르다. 전도연 배우가 아침에 출근하려고 걸어 나오는 신을 찍는데, 딱 보자마자 '난 이걸 썼었구나' 그런 느낌이 들면서 소름이 돋았다. 이번에 그런 것들이 더 많아지고, 배우들도 잘해줬다. 굉장히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임지연의 안정적인 연기도 눈에 띈다. 임지연의 어떤 점을 눈여겨보고 이번 작품에 캐스팅하게 됐나?
'더 글로리'를 보고 이 배우를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욕심은 있다. 이전 작품에서 안 보여준 모습이 나오면 좋겠다는 거다. 임지연 배우를 만나서 내가 '정윤선은 로빈(DC 코믹스의 등장인물)'이라고 이야기했다.
로빈은 황당무계한 인간이다. 단순한 배트맨의 조력자가 아니라 때로는 배트맨을 더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주종이 아니라 대등한 관계인 로빈은 너무 재밌는 인간이다. 이 이야기를 하니 임지연 배우가 너무 좋아하고 재밌어하더라.
첫 촬영 때 임지연 배우가 차 문을 열고 나오는데, 정말 하늘이 도와서 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리더라. 어우, 되게 기분 좋았다.(웃음)
▷ 앤디를 연기한 지창욱의 새로운 얼굴도 흥미로웠다.
앤디는 강남 어느 술집이나 사람들 모이는 회의실에서는 어마어마한 사람일 거다. 나름의 전문성이 있는 거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권력을 잃고, 돈도 하나도 없다. 돈이 없어지면서 앤디도 투명 인간 비슷해진 거다.
뭔가 해보려고 하지만 자승자박이 되고, 잘못된 길로 가는 거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하수영에게 얻어맞고, 어머니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고. 그러니 외상으로 전문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고용하는 거다.
지창욱 배우의 얼굴과 몸짓이 들어오면서 원래 시나리오의 비중을 훨씬 뛰어넘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휠체어에 앉아서 다리를 달달 떨면서 움직이는데, 난 너무 좋았다. 지창욱 배우가 하는 모든 게 좋았다. 지창욱이 하는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좋았다.(웃음)
▷ 이정재의 특별출연은 정말 놀라웠다. 이정재가 '리볼버'에 어떤 역할을 해 줄 수 있다고 기대했나?
'날개'. 이 영화가 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준 거다. 이정재 배우와 친분도 있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와 이제야 일을 하는 느낌도 있었다. 또 이정재 배우가 감독도 했기에 감독으로서의 이정재도 있는 거다. 서로 감독으로서의 고충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