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등 윤석열 정부 역사관 논란 속에서 독립운동가 후손과 유족으로 구성된 광복회와 관련 단체들이 반발하면서 15일 광복절 기념행사가 두쪽으로 쪼개져 열렸다. 정부 행사에 불참한 광복회장은 자체 기념식에서 "친일에 물든 저열한 역사 인식이 판치고 있다"고 현 정부를 겨냥했다.
광복회 등 56개 독립운동단체연합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제79주년 광복절 자체 기념식을 개최했다. 광복회가 정부 주최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한 채 별도로 행사를 연 건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 자리에는 야당 의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를 비롯한 야당 의원들은 기념식에 앞서 정부 규탄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기념사에서 "최근 진실에 대한 왜곡과 친일에 물든 저열한 역사 인식이 판치고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며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이 모여 독립정신을 선양하고자 하는 광복회는 결코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재부각된 '1948년 8월 15일 건국절' 논란에 대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건국절인가"고 반문하며, "건국절을 만들면 얻는 것은 단 하나, 이승만 초대대통령에게 '건국의 아버지'라는 면류관을 씌어주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기념사에 앞서 참석자들은 일제히 '국민을 위하는 후손이 되겠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면서 열렬히 환호했다. 이 회장이 기념사 도중 정부를 비판할 때마다 참석자 일부는 크게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김갑년 광복회독립영웅아카데미 단장도 축사에서 "누가 이배용(국가교육위원장)을, 누가 김광동(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을, 누가 이진숙(방송통신위원장)을, 누가 김낙년(한국학중앙연구원장)을, 누가 김형석(독립기념관장)을 임명했나"고 반문하며 최근 친일 또는 뉴라이트 논란에 휩싸인 인사를 비판했다.
김 단장은 "친일 국정기조를 내려놓고 국민을 위해 옳은 길을 선택하라"며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해 "그럴 생각이 없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라고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전직 독립기념관장이 현직 독립기념관장의 역사관을 정면으로 지적하는 모양새의 강연도 마련됐다. 광복절 기념식이 끝나고 행사 2부에서는 한시준 전 독립기념관장이 '1948년 건국과 식민지배 합법화'라는 주제로 뉴라이트 인사들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1948년 건국' 주장에 반박하는 강연을 진행했다.
김형석 현 관장도 1945년 8월 15일이 광복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에 비로소 광복이 있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가 도마에 올랐다. 이후 건국절 제정에 반대한다고 해명하기는 했지만,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한 전 관장의 이번 강연은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국가 체제가 갖춰졌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한 전 관장은 "1919년 9월 11일 제정된 임시헌법에 국가 구성의 3요소인 국민(대한인민), 주권(대한인민 전체에), 영토(구한제곡의 판도로 정함)가 적시됐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1919년부터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해 왔다는 점도 언급했다. 한 전 관장은 "1919년에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한 건 자주독립국의 상징"이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사용하는 모든 문서에 대한민국이라는 연호를 사용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뉴라이트' 논리는 이명박 정부에서 끝났다가 이번 독립기념관장이 다시 얘기를 꺼냈지만 수준이 낮다"고 김 관장을 정면 비판했다.
광복회가 개최한 광복절 기념 행사엔 수많은 독립운동 후손들이 참석해 행사장은 발 디딜 틈이 없는 모습이었다. 가족 단위의 일반 시민들도 태극기를 손에 쥔 채 행사를 찾았다. 일부 독립운동 후손들은 기념사와 강연을 비롯해 '뉴라이트' 인사와 관련된 내용이 나올 때마다 손에 들고 있는 태극기를 연신 흔들며 "물러나라"고 외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