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기업들이 연이어 오너 일가 등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일반주주에게 불리한 합병을 추진하며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불공정한 합병비율 등으로 불이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합병이 진행될때 주주에게 이를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상법 개정이 추진된다.
14일 관련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주주에게 '합병중지청구권'을 주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할 예정이다.
우선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하기 위해 이사에 '공평 의무'를 추가했다. 상법 제382조의3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를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하고,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전체 주주의 공평하게 보호하여야 한다"로 수정했다. 이사가 각종 투자와 인수, 합병 등 다양한 경영 관련 판단을 할 때 대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과 손해를 공평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박상혁 의원안은 특히 이사회가 대주주에게 유리하지만 일반주주에게 불리한 합병 등을 결정할 경우 일반주주가 제동을 걸 수 있는 '합병유지 청구권'을 신설했다. 아울러 '합병검사인 선임청구권'도 신설하고 이사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도 부여했다.
제522조의4를 신설해 "이사가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하거나 현저하게 불공정한 방법으로 합병함으로써 주주가 불이익을 받을 염려가 있는 경우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1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는 이사에 대하여 그 합병을 유지(留止)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불공정한 합병을 통해 주주의 불이익이 예상된다면 1%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가 합병 과정을 중지시킬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합병유지청구권은 주주총회가 합병 승인을 결의하기 전에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제522조의 5도 신설됐는데 "회사 또는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는 합병비율의 산정방법 및 그 적정성을 조사하기 위하여 제522조 제1항의 주주총회 전에 법원에 검사인의 선임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일반적으로 경영진은 합병을 추진하며 합병비율 결정 배경과 합병이후 주주가 얻게되는 실익 등을 제시하는데 외국 사례와 비교하면 국내 기업들이 '합병의 시너지'를 뭉뚱그려서 제시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이에 일반주주가 제3자이자 전문가인 검사인을 선임해 경영진이 주장하는 합병비율의 적정성 등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사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도 신설됐다. 신설되는 제522조의6은 "합병으로 인하여 소멸하는 회사의 이사는 합병비율을 결정할 때 주주가 손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그 임무를 게을리한 때에는 그 이사는 주주에 대하여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조문과 "법원이 선임한 검사인이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그 임무를 해태한 때에는 회사 또는 주주에 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내용도 함께 담았다.
지난 2020년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물적분할이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두산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처럼 이사회가 대주주에게 유리하지만 일반주주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릴 경우 주식 1% 이상을 보유한 주주가 합병 유지(留止), 그러니까 합병과정을 중지를 요구할 수 있고, 검사인을 선임해 합병에 대한 내용을 조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이사나 검사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주주에 대해 손해배상도 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사회가 대주주에게 유리하고 일반주주에게 불리한 합병 등을 결정해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현재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이자 그룹의 '캐시카우'로 꼽히는 두산밥캣을 떼어내 두산로보틱스로 합치는 그룹 개편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지난해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낸 밥캣과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로보틱스의 합병비율을 1대 0.63으로 정한 것인데 이런 안이 확정되면 두산은 밥캣에 대한 지배력을 끌어올리지만 밥캣에 투자한 주주들은 손해를 보게 된다. 현행법으로는 두산 이사회의 이런 결정에 대해 일반주주들이 취할 수 있는 법적인 조치는 제한적이다.
한편 박상혁 의원안 외에도 22대 국회 개원 후 △대규모 상장회사 집중투표제 의무화 △대규모 상장회사 감사위원회 위원 전원 분리선출 △상장회사(상호출자제한 집단 규모) 분할 또는 계열회사에 준하는 회사와 합병 시 각각 3%(최대주주·특수관계인 합산) 초과 지분 의결권 제한 △주총 소집통지 기한 4주 전으로 확대(현재 2주전) △주주가 부당하게 다른 주주 이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할 의무 부여 등의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발의 된 상태다.
재계에서는 이사의 의무 강화와 일반주주 권한 강화를 담은 최근 상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경영권을 제한하고 투자의욕을 저하하며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부정적인 분위기이지만 경제단체 등이 공식적으로 '반대입장'을 피력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국회에서 관련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관련한 입장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박상혁 의원은 "주주에 대한 권익을 보호하는 전제 없이 세제 인센티브만 제시하는 밸류업은 작동할 수 없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주식시장의 매력도를 높일 '진짜 밸류업'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불공정거래행위를 근절할 자본시장법과 전자주총법, ESG법 등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다양한 법안에 대한 개정 작업이 필요하다"며 "근본적으로 상법과 자본시장법에 흩어져 있는 특례 조항을 묶어 이원화 된 규제 체계를 하나의 독립된 '상장회사특례법'으로 제정해 주주 중심의 주총, 합리적 기업 지배 구조를 정립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