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청일전쟁은 동아시아 세계를 지탱해온 중화 질서의 와해와 근대 국가를 향한 갈림길이었다. 이듬해 청일 사이에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 1조는 "중국은 조선국의 완전무결한 독립과 자주를 확실히 인정한다"고 명시했다. 내용대로라면 조선은 그동안 중국의 속국이었던 것인가?
20년 간 한중관계사 연구를 해온 왕위안충 미국 델라웨어대 역사학과 교수가 쓴 '조선은 청제국에 무엇이었나'는 청제국과 조선의 관계를 역사적, 정치 사회적 맥락 속에서 들여다 본다.
저자는 한국이 청 제국 시기에 정치-문화적 의미에서 중화제국의 일부를 형성했으며, 1895년 이후 그 관계가 급격히 약화되고 끝내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한국이 청제국 시기에 정치-문화적 의미에서 '중화제국의 일부'였다거나 중공군의 개입이 있었던 1한국전쟁 이후에야 중국이 한국에 대해 절대적 독립과 주권을 인정한 근대 국민국가가 됐다는 저자의 주장은 다분히 논쟁적이고 불편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보는 다양한 연구적인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왕위안충 지음 | 손성욱 옮김 | 너머북스 | 432쪽
근대 동아시아의 주축이었던 조선과 청나라, 일본에서 파견한 해외 사절단의 경험을 비교 분석해 전통적인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해체되고 근대 국민국가가 건설되는 과정과 해양 문명관을 탐색한다.
저자는 19세기 후반 청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나선 벌링게임(Burlingame) 사절단과 이와쿠라(岩倉) 사절단에 주목하며 이들이 대양을 항해하며 남긴 기록에서 어떤 용어와 표현, 사건을 기록했는지 비교한다.
중국인 사절단의 기록에는 증기선과 증기기관, 풍랑과 뱃멀미 등과 같은 대양 항해의 기억이 풍부한 반면, 일본인의 여행기에는 그런 내용이 생략되어 있는 점을 비교하며 일본 사절단이 앞서 여러 차례의 사절단과 해외 유학의 경험이 충격 완화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본다.
또한 저자는 당시 일본이 해국(海國)이란 용어를 빈번하게 사용하고 청나라도 이 용어를 이따금 사용하는 데 반해. 조선은 해국이란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근대 동아시아 삼국의 해양 문명에 대한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는다.
이 책은 2022년 출간한 '근대 중국인의 해국 탐색'의 자매편이다.
조세현 지음 | 소명출판 | 4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