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윤석열과 이종찬의 쪼개진 광복

'뉴라이트 계열 인사'인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제79주년 광복절을 나흘 앞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국민의힘(위부터), 조국혁신당, 새로운미래가 내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제 79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대통령 윤석열은 역사 전쟁에서 날을 세우기로 또 작정한 것 같다. 독립운동 역사를 보존하고 후손 대대 교육시켜야 할 책무를 갖고 있는 새 독립기념관장에 대한민국 역사와 미래 이사장인 김형석을 임명했다. 신임 독립기념관장 면접 심사에서 그는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 국적이 없었다. 우리는 일본의 신민이었다"고 주장했다고 전해진다. 김형석의 역사관이면 대한민국의 독립운동 선열지사는 모두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 망국도 서러웠는데, 국체의 본질을 더럽히는 인물이 독립기념관장이 되는 현실 역사를 인정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왜 저럴까"라고 묻는 일도 더는 번거롭다. 작년 3.1절 기념사에서 윤석열은 "그로부터(3.1독립운동)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 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 본다"고 밝혔다. 일본의 국권침탈이나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는 일체 지적하지 않고 식민사관의 정당성만 부여한 연설이었다. 가해자의 잘못은 온데간데 없고, 피해자의 멍청함을 타박하는 대통령을 3.1절 기념사를 통해 만났다.
 
대통령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엊그제 중앙일보 인터뷰 기사는 그 일단을 또 확인해주고 있다. 김장환 목사는 "윤 대통령이 제게 '텔레그램을 하느냐'고 물어서 깔아두었는데, 지난 8월 3일 텔레그램으로 '공산주의가 기독교에 침투하고 있다'는 내용의 유튜브 링크를 보내왔다"고 전했다. 공산주의.기독교라는 이념도 오늘날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지만 유튜브 세상에 빠져 있는 대통령 흔적들이 자꾸 드러나 당혹스럽기만 하다.
 
꽃다발을 걸고 있는 백범의 앞 소년이 이종찬이다. 우당기념관 제공

광복 79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가장 많이 화나 있는 국민 가운데 한명이 광복회장 이종찬이다. 이 회장은 누구인가. 육사를 졸업하고 민정당에서 원내총무 등을 지낸 정치인이다. 김대중 정권에서 초임 국정원장을 지냈다. 가족력으로는 일제 식민지 시절 40여명의 가족을 이끌고 만주 길림성으로 망명해 독립군 산실이 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이다. 1945년 해방을 맞고 한참 뒤에서야, 가까스로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던 임시정부 사람들이 중국 상하이 공항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상해 공항에서 백범에게 꽃다발은 전해 준 이가 소년 이종찬이다. '어린 자부심'이 표정에서 배어나온다.

지난 2021년 6월 9일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현 대통령)과 이종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현 광복회장)이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윤석열은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서 첫 번째 정치행보를 시작했다. 2021년 6월 9일의 일이다. 그는 기념식에서 "우당과 그 가족의 삶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아주 생생하게 상징하고, 한 나라가 어떠한 인물을 배출하느냐와 함께 어떠한 인물을 기억하느냐에 의해 그 존재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우당의 손자이자, 절친(이철우 연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아버지인 이종찬이 윤석열 옆자리에 앉았었다.
 
이종찬은 아들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소년 윤석열을 알았다. 이종찬의 아들은 체구가 몹시 작았는데 개구쟁이들이 작다고 놀릴 때면 덩치 큰 동급생 윤석열이 대신 싸워줬다고 한다. 이런 연유 등으로 이종찬은 고 윤기중 교수와도 교분이 깊었다. 윤이 사법시험에 잇따라 실패하고 포기선언을 했을 때 윤 교수가 이종찬에게 "아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설득해달라"고 특별히 부탁하기도 했다. 이종찬은 그때부터 변함없이 윤석열의 멘토 역할을 해왔다.
 
윤석열 정권에서 광복회장이 된 이종찬은 사실 작년부터 뿔이 난 상태이다. 작년 8월, 윤석열 정부는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를 추진하는 역사전쟁을 벌였다. 그는 "반역사적 결정을 좌시할 수 없다"며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중략)분명히 이야기합니다. 독립영웅 다섯 분의 흉상을 없애고 그 자리에 백선엽 장군이나 그런 류의 장군의 흉상으로 대치한다면 우리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백 장군이 한국전쟁에서 쌓은 공훈은 평가절하하지 않고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교육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분은 당초 군인의 길을 선택한 것이 애국적인 차원에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일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일제에 충성하는 길도 마다하지 않고 선택했습니다. 운 좋게 민족해방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기회를 틈 타 슬쩍 행로를 바꾸고 무공도 세웠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철거한다는 여기 다섯 분의 영웅은 신의(자신의) 영달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라를 찾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 시작했습니다. 두 가지 종류의 길이며, 급수 자체가 다릅니다. 나라를 찾기 위해 생명을 걸고 투쟁하신 분들은 홀대하면서 운 좋은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는 이런 불합리한 현상을 그대로 두고 귀하가 반역사적인 결정을 한다면 나와 우리 광복회는 그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멘토의 입에서 '밀정'이라는 말이 거침없이 나오는 제 79주년 광복절 주간이다. 이종찬은 "인사가 이런 식으로 가는 건 용산 어느 곳에 일제 때 '밀정'과 같은 존재의 그림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 <밀정>에서 의열단 리더인 김장옥(박희순 분)은 자신을 회유하러 온 밀정 이정출(송강호 분)에게 "윗놈들은 나라 팔아먹고 너 같은 놈들은 동포 팔아먹고, 그래서 먹고살 만하냐!"고 호통쳤다. 민족 역사를 제집 족보 바꾸듯 거꾸로 뒤집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현실이니 갑갑한 사람들이 이종찬 뿐일까.
 
테러리스트 김구 책 표지. 네이버 쇼핑 캡처

광복절날 <테러리스트 김구>라는 책이 출간된다고 한다. 평생 독립에 삶을 바친 김구 선생을 추앙하지는 못할망정 국가 없는 무력단체의 테러지도자로 격하시키는 일들을 국가가 앞장서 조장해 '건국절'을 세우고 이승만을 추앙하면 국가 안보가 튼튼해진다는 논리가 허망하기만 하다. 객관적 권위를 가진 '진실'과 공동체가 함께 지켜야 할 '정체성'마저 흔드는 세상이다. 이 쪼개진 광복절을 '괴랄스럽다'고 밖에 표현할 단어가 없다. 표준어는 아니나 아무리 찾아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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