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등 수출 호조로 경상수지 흑자가 6년 9개월 만에 최대로 늘었지만, 내수 부진이 계속됨에 따라 주요 기관이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을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수출과는 달리 주요 원자재·자본재·소비재 수입이 줄고, 국내 소비와 관련 서비스업 생산도 감소 흐름을 보이는 등 내수는 여전히 살아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경상수지 '불황형' 흑자?…수출 전년比 8.7%↑·수입 5.7%↓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일 집계된 국제수지 잠정통계 결과 올해 6월 경상수지는 122억 6천만 달러(약 16조 8900억 원) 흑자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16년 6월(124억 1천만 달러)과 2017년 9월(123억 4천만 달러) 이후 역대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항목별로 보면 상품수지(114억 7천만 달러)가 지난해 4월 이후 15개월 연속 흑자 기조를 유지했고, 수출(588억 2천만 달러)도 전년보다 8.7% 늘어 9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품목 중에서는 반도체(연간 50.4%↑) 수출이 두드러졌다. 이어 정보통신기기(26.0%), 석유제품(8.5%), 승용차(0.5%) 등 순으로 늘었다. 반면 기계류·정밀기기(1.4%), 화공품(7.5%), 철강제품(18.0%) 등은 줄었다.
다만 이처럼 경상수지, 특히 상품수지 흑자 폭이 벌어진 데에는 상대적으로 경기가 더 좋지 않았던 지난해보다도 수입(473억 5천만 달러)이 5.7% 감소한 영향도 있다.
철강재 (18.9%), 화공품(20.6%), 석탄(25.9%) 등 원자재 수입도 6.6% 줄고, 반도체 (4.9%), 반도체제조장비 (24.1%) 등 자본재 수입도 4.6% 감소했다. 곡물(20.3%), 승용차(44.1%) 등 소비재 수입도 15.6% 줄었다.
한은 관계자는 "인공지능(AI) 관련 전방산업 수요 확대, 메모리 가격 상승 등으로 반도체 수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수출 호조세가 지속됐다"면서도 "반면 내수 회복 지연에 반도체 제조용 장비, 승용차 등을 중심으로 상품 수입 감소 폭은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내수 침체일로…소매판매 9분기 연속 감소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소매판매액지수(불변)는 전년동기대비 2.9% 감소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1분기(-4.5%) 이후 15년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소매판매액지수는 개인·소비용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 2700곳 판매액을 조사한 결과다. 이 중 불변지수는 물가 요인을 제거한 값으로, 경제주체의 실질 소비 수준을 나타낸다.
소매판매는 2022년 2분기 0.2% 감소한 것을 시작으로 9개 분기 연속 감소하고 있다. 1995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긴 감소 흐름이다.
품목별로도 승용차(-13.2%)와 의복(-4.4%), 오락·취미·경기 용품(-7.3%), 음식료품(-3.2%) 등 내구재와 준내구재, 비내구재가 골고루 감소했다.
이 같은 내수 부진에, 실질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1분기 1.3% '깜짝 성장'을 뒤로 하고 2분기엔 0.2% 역(-)성장으로 돌아섰다.
문제는 미래 경기 예측 지표인 투자 지표도 밝지 않았단 점이다. 2분기 설비투자지수(계절조정)는 1년 전보다 0.8% 감소했고, 건설기성(불변)도 1년 전보다 2.4% 줄었다.
상반기 세수 덜 걷고 지출 늘린 '정부 주도 성장'이었나…전망치 '뚝'
2분기 마이너스 성장률 기여도를 보면 △민간소비가 -0.1%p △건설투자 -0.2%p △설비투자 -0.2%p로 민간 부문의 침체가 역력하다.
반면, 정부소비는 0.1%p 플러스(+)로 반대 흐름을 보였다. 실제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월간 재정동향 7월호'에 따르면 올해 1~5월 총수입은 258조 2천억 원, 총지출은 310조 4천억 원으로 통합재정수지는 52조 2천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예산안에서 계획한 국세 수입 진도율은 42.2%에 그친 반면, 정부 지출을 의미하는 사업 집행 진도율은 47.3%에 달하면서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았던 셈이다.
법인세 수입이 지난해보다 15조 3천억 원 줄어 세수가 부족한 영향이 컸지만, 부진한 내수에서 오히려 부가세 수입은 5조 3천억 원 더 걷히고 소득세도 3천억 원 늘었다.
내수를 살리려면 재정 또는 통화 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용해야 하지만, 1~5월 국고채 발행 규모가 81조 8천억 원에 달해 이미 연간 총한도의 51.6%를 소진한 터다.
금리 인하만을 바라보는 형국이 됐지만, 1년 넘게 유지된 2.0%p의 한미 금리차로 미국보다 선제적 인하에 나서긴 부담스러운 데다, 통화정책 전환을 선반영한 부동산 시장 과열 조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KDI(한국개발연구원)는 이달 8일 수정전망을 내놓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5로 하향 조정했다. KDI는 "민간소비와 설비투자를 중심으로 내수 증가세가 기존 전망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내수는 미약한 수준에 그치면서 경기 회복이 다소 지연될 전망"이라고 조정 이유를 설명했다.
증권사들도 잇달아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은 종전 2.7%에서 각각 2.4%, 2.5%로 낮췄다. KB증권과 유진투자증권, 흥국증권은 각각 2.5%에서 2.4%로 낮췄다.
유진투자증권 이정훈 연구원은 "기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민간소비와 건설·설비·지식재산생산물 투자 모두 감소하는 등 내용이 좋지 않았다"며 "내수 회복이 여전히 미약한 단계임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