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자여 떠나라!'라는 광고 카피가 떠오르는 계절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도 이번 주 남해안 지역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휴가 중 경남 통영중앙시장에서 민생현장을 돌아본데 이어 진해 해군기지를 방문해서는 군 장병들을 격려했고, 김건희 여사는 대통령 동선과는 별개로 6일과 7일 이틀에 걸쳐 부산을 깜짝 방문했다.
눈길을 끄는 건 김 여사의 1박2일 단독행보였다. 비공개라는 대통령실 설명이 무색하게도 김건희 여사의 동선과 사진이 언론에 낱낱이 보도돼 결과적으로 비공개 같지 않은 광폭행보가 대중에 공개됐다. 김여사는 6일 부산의 대표적 수산물인 명란 관련 업체를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했고 중구에 위치한 깡통시장을 찾아서는 상인들과 사진도 찍었다. 이튿날에는 근현대역사관을 방문한데 이어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모여 살았던 흰여울문화마을과 감천문화마을, 갤러리를 잇따라 찾았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공개행보는 지난해 말 명품가방 수수 의혹이 불거진 이래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지난 5월 캄보디아 정상부부 방한 일정과 지난달 11일 방미기간 워싱턴 DC 북한인권 간담회 참석 등 외교관련 행사에만 주로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여름휴가를 자연스런 기회로 삼은 것인지, 아니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명품백 수수의혹에 대한 검찰의 '출장 조사'가 오히려 자신감을 제공했는지는 몰라도 김 여사는 지난달 20일 검찰 조사 이후 보름 여만에 외부 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나 수순(手順)을 거스른 채 여론지형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 바둑판에서도 대국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돌을 놓는 일련의 순서가 필요한데, 김건희 여사는 대국민사과를 건너뛰었다. 명품백 사건이 터진 직후에도 때를 놓쳤고, 윤석열 대통령의 2월 KBS 신년대담을 전후해서도 본인이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 총선 과정에서 폭로된 김 여사의 문자메시지는 '대선 때 사과했더니 오히려 여론이 악화됐다'는 식의 정무적 판단만 부각됐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20일 검찰조사에서 대국민사과를 했다는 김여사 변호인의 주장은 형식과 실질 모두 사과로 볼 수 없다. 제대로 된 사과라면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가 드러나고,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마음이 진정성있게' 담겨야 하는데, 검사 앞에서 대국민사과를 했다는 변호사의 발언을 어느 국민이 사과로 받아줄지 궁금하다. 계산만 복잡한 속마음을 들킨 뒤라면 사과의 효과도 반감될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업무를 담당했던 고위간부가 지난 8일 숨진채 발견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생전에 명품백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안타까워했다는 해당 공무원의 발언까지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것으로 미뤄 명품백 수수사건의 파장이 공무원사회까지 뒤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사태가 결코 가볍지 않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 대중 행보는 허망할 뿐이다. 쉼이 삶을 회복시켜주는 것처럼 부디 이번 휴가를 통해 앞으로 취해야 할 다음 수순도 깊이 고민했으리라 기대한다. 맺고 끊는 자세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국민에게 공개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수순을 밟는 게 우선일 것이다.
절제되지 못한 처신이 국정개입 논란을 불러온 만큼 대통령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는 대선 전 약속도 되새겨야 한다. 무신불립(無信不立), 빵도 아니고 군사도 아니고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백성의 믿음이라고 했다. 김여사와 대통령실이 그토록 강조하는 정무적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