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기간 중 군사보호구역에 무단 침입해 군사기밀을 훔친 20대에게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대구지방법원 제11형사부(재판장 이종길)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군용물 등 범죄에 관한 특별 조치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22)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지난 2021년 8월 해군에 입대한 A씨는 부산에 있는 해군작전사령부에서 근무하던 중 이듬해 3월부터 미인가 출입증을 이용해 군사보호구역인 사령부 의무실에 약 9회 출입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의무실 내 전자도어락 비밀번호를 이용해 비밀보관함을 열었고 그 안에 있던 군사Ⅲ급 비밀인 암호모듈을 꺼내 생활관으로 갖고 갔다.
이후 부대 내에서 암호모듈 분실이 알려지고 조사가 진행되자 A씨는 군용물을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구성품 일부를 파손하기도 했다.
약 6개월 뒤 군은 대구 동구에 위치한 A씨의 주거지에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는데, A씨는 압수된 휴대전화를 원격으로 초기화하려 했다. 이를 본 수사관이 '초기화 기록이 남는다'고 말리자 A씨는 격분해 수사관을 폭행했다. 당시 함께 있던 A씨의 아버지 B(53)씨도 욕설을 하며 수사관 폭행에 가세했다.
재판부는 "A씨의 경우 전산조작 등 부정한 방법을 통해 임의로 출입권한을 부여한 뒤 수시로 군사보호구역에 무단침입하고 군사기밀에 관한 군용물을 절취했다. 피고인이 훔친 군용물은 국가와 군의 암호체계 관련 핵심 기술이 내장돼 있어 외부로 유출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인바, 그 죄책이 무겁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의 범죄행위로 인해 다수의 군 인력이 군용물의 소재를 찾기 위해 투입되고 부대원들이 수차례 조사를 받는 등 불필요한 행정적 낭비가 발생했고 보관책임자들이 징계 등 불이익한 처분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점 역시 피고인에 대한 불리한 정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피고인은 압수수색영장 집행 도중 다른 휴대전화기를 이용해 원격으로 압수된 휴대전화기를 초기화하는 대담한 방식으로 수사기관의 영장 집행을 심각하게 방해했고 실제로 압수된 3대 중 1대가 원격초기화 된 것이 확인됐다"며 엄정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훔친 군용물이 인증서 만료 이후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암호키 유출 등 국가안전보장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은 적었던 점, 군사기밀이 외부로 유출된 정황이 발견되지 않은 점, 피고인이 정신건강을 이유로 군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아버지 B씨에 대해서는 "정당한 공무집행 중인 공무원을 향해 모욕적인 발언과 함께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해 그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면서도 "행사한 유형력이 비교적 중하지 않고 자녀인 피고인 A와 수사관 사이에 말다툼이 발생하자 다소 우발적으로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 등 범행 경위에 있어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