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태권도에서 16년 만의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한 박태준(20·경희대)은 우승을 확정지은 뒤 정을진 전담 코치에게 "이거 꿈 아니죠?"라고 물었다. 정을진 코치는 "꿈 아니니까 좀 즐겨라"고 답했다.
정을진 코치는 박태준이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을 도운 지도자다. 그는 박태준을 "초등학교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는데, 천재보다는 진짜 열심히 하는 선수"라고 소개했다.
그는 "머리가 똑똑하다. 모방과 창조를 잘한다. 상대가 잘하는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또 자기 것을 더 강한 무기로 만든다. 올림픽은 특별하니까 외국 선수들이 운동을 많이 한다. 그래서 박태준의 힘과 체력을 3배 정도로 올려놨다. 허리, 허벅지, 무릎이 많이 아팠을 텐데 다 이겨내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정을진 코치가 강조한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그는 "박태준은 특히 인성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대표팀 코치가 갓 스무 살이 된 선수에게 '인성'을 칭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박태준은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결승에서 가심 마고메도프(아제르바이잔)를 꺾고 우승을 확정한 후 세리머니를 하는 대신 무릎을 꿇었다.
왼쪽 다리를 다쳐 경기를 포기하고 쓰러진 마고메도프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몸 상태를 살피며 위로와 격려를 전한 것이다.
박태준은 "올림픽 금메달은 모든 스포츠인의 꿈"이라고 했다. 꿈을 이룬 순간에도 박태준은 상대를 걱정했고 배려했다.
2라운드에서 통증 때문에 중심을 잃은 마고메도프를 완전히 쓰러뜨린 마지막 발차기가 나오자 관중들은 박태준을 향해 야유했다. 그러나 박태준은 "상대가 경기를 포기하거나 그만두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밝혔다. 평소 친하게 지낸다는 두 선수는 경기 후 축하와 위로를 주고 받았다.
메달 시상식 때는 직접 마고메도프를 부축해 함께 입장했다. 마고메도프도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고 둘은 서로를 챙기며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박태준에게 올림픽 금메달은 간절했다. 경기장에 입장하기 전 데이식스의 히트곡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들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실제로 박태준은 한국 태권도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박태준의 금메달로 한국은 도쿄 대회 무관의 아쉬움을 달랬다.
정을진 코치는 "우리는 챔피언이 아닌 도전자"라는 마음가짐으로 대회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박태준은 도전자에서 다시 챔피언이 됐다. 세계 최고의 실력 뿐 아니라 훌륭한 인성까지 갖춘 올림픽 챔피언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