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임시국회가 시작부터 야당의 법안 단독 처리로 문을 열었다. 22대 국회 임기 시작 후 2개월째 지속된 '야당의 강행처리' 후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라는 패턴이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일부 '민생법안'에 대해선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지만, 두 달 동안 본회의 통과 후 정부가 공포한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심을 거스르고 있다며 대통령과 여당을 비난하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거대 야당의 지위를 이용해 입법폭거에 나섰다고 비판하는 상호비방에만 골몰한 탓이다.
野 강행처리 6개 법안 거부권 행사 시사…尹 '거부권 부담' 노리는 민주당
국회는 5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7월 임시국회 마지막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일정 방해)에 나서며 노란봉투법 저지에 나섰던 국민의힘은 이날 본회의에 불참해 반대의사를 밝혔다.노란봉투법이 본회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현재 정부로 이송돼 있는 법안은 모두 6개가 됐다. 윤 대통령은 이 법안들 모두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6개의 법안이 "민생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부담과 국민들의 피로감을 부각하는 모습이다. 민주당 박찬대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각 당이 민생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법안들을 각자 준비해서 낼 것이고, 여야가 협의할 부분들은 최대한 같이 협의해 나가겠다"면서도 "우리 당은 뭔가를 하기 위한 입법부의 역할을 하는 데에 비해, 정부·여당은 거부권 행사와 방탄 외에는 특별히 한 일이 없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가 "쟁점법안 본회의 상정을 중단하고 민생법안부터 우선 논의하자"고 제안한 것을 반박하면서, 대치만 계속되고 있는 현 정국에 대해 정부·여당 책임론을 강조한 것이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이미 15차례에 걸쳐 재의를 요구한 만큼, 이들 6개 법안에 대한 추가적인 거부권 행사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거부권이 지속될 경우 대통령의 무능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이후 관련 특별검사나 국정조사의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민주당은 이 같은 상황을 활용하는 동시에 각종 현안에 대해서도 전방위로 정부·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주요 공세 지점의 하나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다. 지난 2일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안을 강행 처리한 야당은, 오는 8일에는 방통위에 대한 현장검증, 9일에는 방송장악 관련 청문회를 열어 정부·여당의 방송장악 의혹을 부각시킬 계획이다. 아울러 '2특검(채 상병·김건희 여사) 4국조(채 상병·방송장악·양평고속도로 의혹·동해 유전 개발)' 또한 추진할 예정인데, 정국의 뇌관으로 꼽히는 채 상병 사건을 최우선순위에 놓고 이번 달 '3번째' 특검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채 상병 특검법 2차 재의표결에서 여당의 이탈표가 최소 3표 이상 나온 만큼 여당의 추가 이탈표 확보를 위한 중재안 마련 등을 고심 중이다.
정쟁에 밀린 민생법안들, 여야 서로 "네 탓"…전세사기법·간호법 '합의 처리' 물꼬 틀까
반면 국민의힘은 이같은 야당의 입법 행보가 대통령을 겨냥한 정치적 공격행위라며 맹비난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에 대해 한동훈 대표는 "대한민국의 우상향 발전을 정면으로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오고,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지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고, 추 원내대표는 민생회복지원금 특별법을 "현금 살포법", 노란봉투법을 "불법파업조장법"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지난 국회에서 이미 폐기됐는데도 이전보다 더 강한 독소조항을 담은 법안을 재발의한 것은 대통령의 재의요구를 유도하고 부정적 여론을 형성해 결국 탄핵 명분을 쌓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다"며 "'역주행'만을 거듭하고 있는 거대 야당이 폭주를 멈추지 않는다면 반드시 '민심의 심판'이라는 제동에 걸리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의 방통위원장 공세에는 민주당 소속인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제명 결의안 추진으로 '맞불'을 놨다. 배준영 원내수석부대표가 지난 2일 발의한 결의안은 최 위원장이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에게 "전체주의 국가에서 생활하시다 보니 민주주의적 원칙이 안 보이는가", 이 방통위원장에게 "뇌 구조가 이상하다"고 말한 것을 근거로 삼았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여론의 추이를 보면서, 가능할 때 제명 결의안 상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작 입법이 시급한 민생법안들은 본회의에 올라오지도 못하고 공전하고 있다. 추 원내대표는 △인구전략기획부 신설법 △화물표준운임제법 △K-칩스법 △스토킹 교제 폭력 방지법 등 법안과 저출생 극복·연금개혁·세제개편 등 현안을 거론하며 즉시 협상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그간 민주당이 6·7월 임시국회에서 보인 움직임을 "소모적인 정쟁", "당리당략에 집착한 무리한 청문회와 정쟁 입법 강행 처리 시도"라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여당이 상임위 법안소위 등에 응하고 있지 않고 있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채 상병 특검법에서 매듭이 한 번 지어지고 나서야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민생입법 지연의 책임이 여당에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여야 원내대표는 이날 전세사기특별법과 간호법에 대한 협의 의사를 밝히면서, 22대 국회 첫 법안 합의처리 가능성을 시사했다. 박 직무대행은 이날 추 원내대표와 만난 뒤 "전세사기특별법과 간호법이 지금 상임위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다"며 "민생 문제를 해결하고 개혁하기 위한 부분에 대한 협의는 진행되고 있다"고 말해, 일부 법안에 대해선 타협의 여지가 있음을 시사했다.
추 원내대표도 두 법안에 대해 "상당 부분 공감이 있고 상임위에서 논의하고 있다", "일정 부분 대화가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으니 상임위에서 의견 접근을 하도록 논의하자고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