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대통령 명예훼손 수사에서 검찰의 일편단심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에서 축사를 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이혼 사건 전문 드라마인 <굿파트너>룰 보면 자식과 부모가 생각하는 이혼에 대한 세대인식을 확실히 알게 된다. 이혼은 기본적으로 유책주의 판례를 기본으로 한다. 결혼생활를 깬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 청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유책주의이다. 그러나 이혼을 결정하는 일은 결코 손쉽지 않다.
 
부모세대는 한쪽이 유책을 저지른 사실이 명백해도 이혼을 머뭇거린다. 자식에게 미칠 영향 등 살다보면 오만가지가 결정의 장애요소로 등장한다. 드라마에서 신입 변호사 한유리의 판단은 심플하고 명쾌하다. 한 변호사는 엄마에게 아빠의 바람을 알고도 이혼하지 않으려 했는지를 묻는다. 엄마는 공부 잘하는 딸이 피해볼까봐 망설이기도 했고, 남편을 이해해보려 했다고 말한다. 
 
한유리는 "아니, 엄마 인과관계가 틀렸잖아. 바람핀 아빠 때문에 내가 피해를 보는게 아니라 이혼을 결심한 엄마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거야? 아니,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해? 답답해! 와, 진짜 왜 이렇게 다들 이혼을 못할까 진짜!"라고 열변을 토한다. 엄마는 너도 네 자식을 낳아보면 알거라고 말한다.
 
이혼의 세대인식이나 어려움을 말하려고 꺼낸 이야기가 아니다. 법률가 한유리가 언급한 '인과관계'라는 개념 때문이다. 수사와 재판 등 혐의가 무엇이든 법률에서 인과관계를 따지는 일은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하는 수사는 실패한다. 인과관계는 '직접적이냐,간접적이냐, 아니면 협의적이냐,광의적이냐'에 따라 판가름된다. 인과성이 직접적이고 협의적으로 소명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문제는 간접적이고 광의적이었을 때이다.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수사에서 통신조회로 지난주 금요일 오후 언론계와 정치권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 1부에서 1301번 문자로 보낸 '통신이용자정보제공 사실통지' 때문이다. 얼마나 많았으면 동료 언론인들끼리 서로 연락해 문자를 받았는지 확인해 볼 정도였으니 검찰의 통신 조회가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던 모양이다. 대통령 명예훼손 수사와 관련해 통신조회를 당한 사람이 3천명에 이른다는 보도까지 있으니 아마도 단일 명예훼손 사건으로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기록적인 통신조회가 아닌가 생각됐다.
 
윤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이란, 2021년 9월 말에서 2022년 3월 초 사이에 이뤄진 일부 언론의 윤석열 검사의 부산저축은행 부실수사 의혹 관련보도를 말한다. 검찰은 대장동 사건의 주역인 김만배씨가 야당과 짜고 일부 언론과 공작해 윤 대통령 명예를 훼손했다는 프레임을 설정하고 작년 9월부터 서울중앙지검에 특별수사팀을 꾸려 수사를 해 온 사안이다.
 
가장 큰 문제는 검찰이 통신 조회를 아주 우습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검찰은 7개월 뒤에 조회 사실 통보를 하면서 조회의 주요 내용은 "성명,전화번호"이고, 조회의 사용 목적은 "수사"라고 적시했다.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의 어떤 피의자와 연락했고, 언제 통화한 기록을 보고 통신조회를 했는지에 대해 물었지만 어떠한 인과관계 설명도 없다. 별도 확인에 나섰지만 검찰은 물론 통신사도 "수사상 밝힐 수 없다"고 한다.
 
문제는 혐의 사실이 실행된 시기와 무관한 시점에 통화가 이뤄졌는데도 상당수는 통신조회를 무차별적으로 당했다는 점이다. 이 경우 통신조회 사실의 인과관계가 성립하려면 의혹 보도 이전이나, 적어도 그 어간에 이뤄진 통화가 주요 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의혹 보도 시점과 무관하게 2년이 지나서, 검찰의 압수수색때문에 사실 여부가 궁금해 통화한 사람들조차 막무가내로 통신조회를 당했다. 범죄 혐의와 간접적 인과관계가 의심된다고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무분별하게 통신정보를 파헤쳐야 하는건지 납득이 어렵다. 아무리 대통령 명예훼손 수사라지만 이런 '막고 품기식' 수사가 어디 있는가.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공수처가 자신과 김건희 여사, 국민의힘 의원 등 135건의 통신 자료를 조회한 사살이 드러나자 "독재 시절에나 하던 짓" "정치 사찰"이라고 비난했다. 사실 여부를 알 수 없으나 어느 한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 수사에서 3천 건이 넘는 통신조회가 이뤄졌다는 이야기를 아직 들어 본 일이 없다. 야당 대표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피의자의 학창시절 동창들까지 통신조회가 무분별하게 파헤쳤다니 기함할 따름이다.
 
대통령 명예훼손 수사에서 드러난 검찰의 불법과 탈법은 이것만이 아니다. 법원의 영장에 의해 파기하도록 돼있는 압수수색 디지털 정보를 폐기하지 않고 대검 서버 '디넷'에 올려놓은 다음, 필요할때마다 꺼내 쓰는 위법한 수사방식이 사실로 드러났다. 여기에 무분별한 통신조회까지. 
 
검찰은 국가공권력의 근간이요, 공익의 대표자다. 정치검찰이라고 비판하면서도 해체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근간에 이뤄지는 대통령과 그 가족에 대한 수사를 보면 검찰은 대통령의 사당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에 억울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심지어 일부에선 "고려말 무신정권 시절의 도방.정방 같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지만 검찰 핵심 친위세력들이 그 의미를 알아챌리 없다. 
 
그들은 너무 무심하다.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사건과 관계없는 것으로 보이는 통화상대방에 대해서는 추가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수사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했다. 수사 대상자가 언론인들이다 보니, 통화상대방 중에 언론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에 대한 일편단심 충성심은 알겠다. 그래도 명색이 법률가들인데 '인과관계'라도 좀 살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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