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격 국가대표 양지인(한국체대)은 작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아찔한 상황을 겪었다.
양지인은 여자 25m 권총 개인전 결선에서 초반 상위권을 달렸다. 그런데 사격 도중 전자표적 기계가 고장나는 바람에 판독을 하느라 경기가 지연됐다.
사격은 멘탈 스포츠다. 양지인은 대한사격연맹 프로필에 자신의 약점으로 "멘탈이 약함"이라고 적었다. 경기 지연 사태에 흔들린 양지인은 결선을 공동 3위로 마쳤다. 그래도 중요한 순간 멘탈을 회복했다. 4위 탈락자를 가리는 슛오프에서 승리했고 결국 동메달을 땄다.
당시 양지인은 "제가 바꿀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라 '뭐,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다시 했다"고 말했다. 김예지도 그렇고 한국 사격 선수들 정말 '쿨'하다.
기계 고장 등과 같은 변수가 없었던 올림픽 무대에서는 그 누구도 양지인을 꺾지 못했다.
양지인은 3일(한국시간) 프랑스 샤토루 슈팅 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여자 권총 25m 결선에서 우승해 금메달을 차지했다.
25m 권총은 완사(Precision)와 급사(Rapid fire)로 본선을 치르고 결선은 급사로 진행된다. 정해진 시간 안에 10.2점을 쏴야만 1점을 얻는다. 시크한 사격 장면으로 화제를 모았던 김예지가 본선 급사 41번째 발을 3초 안에 쏘지 못해 0점으로 처리된 바 있다.
양지인은 결선에서 차분하고 신속하게 경기를 펼쳤다. 프랑스의 카밀레 예드제예스키와 37점 동점을 기록했다. 이어진 슛오프에서 양지인은 4발을 맞혔고 예드제예스키가 1발 명중에 그치면서 승부가 갈렸다.
양지인은 2003년생으로 현재 한국체대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재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젊은 선수다. 지난해 청두 세계대학생 경기 대회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 시니어부의 커리어를 화려하게 시작했다.
이후 세계사격선수권을 한 차례 제패하는 등 총 7번 출전한 국제 대회에서 여섯 차례 결선에 올라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수확하며 한국 사격 권총 종목의 새로운 간판이 될 잠재력을 보였다.
올해 1월 자카르타 아시아선수권에서는 결선 41점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고 지난 5월 바쿠 월드컵 1차 결선에서도 자신이 세웠던 세계신기록과 타이를 이루며 정상에 올랐다. 이 기록은 바쿠 월드컵 2차 결선에서 김예지가 42점으로 경신한 바 있다.
양지인은 2012 런던 올림픽 김장미 이후 이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최초의 한국 사수가 됐다.
양지인은 평소 경기에 들어가기 앞서 "아, 떨린다. 또 떨린다.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어"라는 생각을 되뇌인다고 한다. 자신의 멘탈도 약하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양지인이 국제 무대에서 보여준 실력과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멘탈이 약하면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성과들이다. 양지인의 진가는 프랑스 파리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