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은 호황인데 서민은 고달프다[베이징노트]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연합뉴스

악명높던 코로나19 봉쇄조치가 해제된 이후 봄날을 기대했던 중국 경제가 여전히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문제가 있다'고 시인할 정도다.
 
시 국가주석은 지난달 26일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열린 당외 인사 좌담회에서 "현재 중국 경제 발전이 일부 어려움과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그동안 중국 경제에 대해 외부에서 위기론이 제기될 때마다 '경제 광명론'을 제시하며 부인해 왔던 점을 고려하면 시 주석의 이같은 발언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는 더 이상 '경제 광명론'으로 중국 인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차라리 위기론을 시인하고 "노력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다짐하는게 더 낫겠다고 판단한 셈이다.
 

中 경기 위축 심상찮은데…정부 지원 수출은 호황


중국은 위드코로나 원년인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목표치보다 높은 5.2% 성장률을 이끌어냈고, 올해 초에는 5.4% 성장률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며 순항하는듯 했다.
 
하지만 2분기에는 전망치보다 크게 낮은 4.7%의 성장률을 기록하는가 하면 각종 경제지표도 경기 위축 국면에 진입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중국 제조업의 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구매관리자지수(PMI)는 3개월 연속 '경기 수축' 국면에 머물러 있고, 소비 시장의 가늠자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5개월째 '0%'대 상승률에 수렴하며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우려를 키우고 있다.
 
상하이 양산항의 수출입 컨테이너 부두. 연합뉴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은 중국 내수 시장이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지만 수출은 나름대로 괜찮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지난 6월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8.6% 늘었다. 시장 전망치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중국 당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전기차, 선박 등의 수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인데 로이터 통신은 "예상보다 강력한 수출은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국 경제에 몇 안 되는 밝은 점 중 하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韓 10개월 연속 수출 늘었는데 민간소비는 더 위축

 
다른 경제지표는 모두 침체를 가리키고 있는데 수출은 나홀로 호황을 보이는 현상은 한국도 중국과 마찬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7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9% 급증했다. 이에따라 월간 수출이 지난해 10월 이후 10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증가했다.
 
대표적인 수출 기업 현대차·기아차는 올해 2분기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반도체 업황 불황으로 고전하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최근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며 역대 최고치에 근접하는 실적으로 거뒀다.
 
반면,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은 직전 분기 대비 -0.2%를 기록했다. 분기별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한 것은 지난 2022년 4분기(-0.5%) 이후 1년 반 만이다.
 
수출은 괜찮은데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유는 내수 부진 때문이다. 민간소비는 전 분기 대비 0.2% 하락하면서 지난해 2분기 이후 다시 역성장을 기록했다.
 
수출이 늘어나 외화가 계속 유입되고 있는데도 민간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그만큼 서민 경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3고' 지속…서민경제 최악

 
연합뉴스

여기서 중국과 한국의 차이점은 중국은 3년간의 악명높은 제로코로나 정책을 겪으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자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지갑을 닫고 있다면 한국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고 싶어도 지갑에 돈이 없다는 점이다.
 
가장 큰 원인으로 고물가가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을 기준으로 지난 4년간의 물가 상승률은 11.6%에 달한다. 특히, 서민생활과 직결된 먹거리 등 생활물가 상승률은 이보다 훨씬 높다.
 
고물가의 원인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공급망 위축,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동 전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가 꼽힌다.
 
최근 상황을 보자면 고환율 역시 무시못할 요인 가운데 하나다. 자원 부족으로 에너지와 원자재 등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 고환율은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고환율은 미국이 5.25~5.50%의 고금리를 2년여간 유지하면서 강달러 현상이 이어진게 가장 큰 원인이지만 같은 기간 한미 금리차가 사상 최대인 2%까지 벌어진 채 유지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결국 고물가와 고환율, 그리고 (미국의) 고금리, 즉 '3고'가 얽히고 설켜 악순환이 거듭되고, 그 결과 서민들의 지갑은 더욱 얇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수출 대기업 살리고 집값 떠받치고…서민경제는?


일각에서는 정부가 경제 실적을 내세우기 위해 서민경제가 희생되는 것을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오고 있다.
 
고환율이 고물가를 불러와 서민 경제를 갉아먹고 있지만 금융 당국은 이를 어느정도 용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 기업들은 고환율에 힘입어 최고 실적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수십년 동안 수출을 우리 경제의 '금과옥조'로 여겨온 만큼 정부 입장에서는 수출 실적이 좋아야 경제가 좋아지고 있고, 낙수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홍보할 수 있다.
 
물론 정부가 환율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는 없지만 정책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금리 조정 등을 통해 어느정도 환율 방어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그럴 의지까지는 없는 듯하다.
 
여기다 정부가 저금리의 각종 특례 대출을 풀어 집값을 떠받치다 보니 가계부채는 다시 폭증하고 소비 여력은 더욱 줄어 서민경제가 침체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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