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임애지는 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노스 아레나에서 열린 8강전에서 예니 마르셀라 아리아스 카스타네다(콜롬비아)를 만났다.
임애지는 카스타네다가 "무서운 상대"라고 했다. 그런데 주위에서 16강을 통과한 임애지에게 "1승만 더 하면 메달"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는 말이다.
1999년생 임애지는 3년 전 도쿄 대회에서 올림픽 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해 16강에서 졌다.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임애지는 좌절을 겪었다. 도쿄 대회를 마치고 "파리 올림픽이 남았다"는 코치의 말을 듣고 힘이 쭉 빠졌다고 했다. "3년을 또 준비해야 하나, 그때 못 하고 져서 정말 복싱을 그만두고 싶었다"고 했다.
임애지는 버텼다. 그는 3년 전과 지금을 이렇게 비교했다. "체력적으로는 더 떨어졌고 전략은 비슷하다 생각하는데 차이는 마음가짐? 그때는 성적을 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면 이번에는 파리를 준비하면서 즐기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임애지는 "1승만 더 하면 메달"이라는 주위의 말에 "네? 저 세 번 이길 건데요"라고 받아쳤다. 8강부터 세 번을 더 이긴다는 말의 의미는 명확하다. 금메달을 목표로 끝까지 가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임애지의 질주는 계속 됐다. 임애지는 카스타네다를 3-2 판정승으로 누르고 8강을 통과했다. 이로써 올림픽 최소 동메달을 확보했다. 한국 복싱은 12년 전 런던 대회의 한순철(남자 60kg급 은메달)에 이어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땄다.
그리고 임애지는 한국 여자 복싱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여자 복싱은 2012 런던 대회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다. 당시 세 체급 경기가 열렸고 지금은 여섯 체급으로 늘어났다).
임애지는 "제가 우리나라 복싱 발전에 도움이 된 것 같아 정말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여성 복싱 최초로 유스(youth) 때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그때 최초라는 말을 처음 들어서 뜻깊었다. 그래도 저에게는 최초의 메달리스트라는 말이 더 뜻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임애지의 자신감을 하늘을 찌른다. "세 번 이길 거다"라는 말은 그냥 한 말이 아니다. 임애지는 "결승까지 생각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임애지와 하티세 아크바시(튀르키예)가 격돌하는 여자 54kg급 준결승전은 한국시간으로 오는 4일 오후 11시34분에 열린다.
반대쪽 대진에서는 북한의 방철미가 준결승에 진출, 임애지와 마찬가지로 동메달을 확보했다. 두 선수가 나란히 결승에 오른다면 이번 대회 첫 남북 대결이 펼쳐지게 된다. 방철미는 준결승에서 작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꺾었던 창위안(중국)과 맞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