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와 전남지역에 역대급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축산농가들이 생때 같은 가축을 한 마리라도 살리기 위해 무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더우면 오리들은 입을 벌려요. 피부로 숨을 쉬는 애들인데 털이 있어 더위에 더 취약하죠."
31일 오전 11시 전남 나주 세지면의 한 오리 농가. 한낮 농장 내부 온도가 34도를 웃도는 상황에서 오리들은 불볕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오리 농가를 운영하는 임종근씨의 등줄기에도 땀이 흐르지만 오리들이 더위에 쓰러지거나 뒤집혀있진 않을까 걱정하며 농가 구석구석을 살폈다.
전체 축사가 5천 평 규모로 6만여 마리의 오리가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이지만 대부분의 오리는 급수대 근처에 모여 목을 축이고 있다. 일부 오리들은 몸을 뉘고 움직임이 없거나, 바닥에 붙어 입을 벌린 채 더운 숨을 가쁘게 내뱉었다.
털갈이 시기를 맞아 노랗던 오리에게서 하얀 털이 자라나기 시작하자 임씨는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오리가 얼마나 더울까?' 생각하면 마음이 타들어 간다. 정오가 되면서 햇볕이 점점 뜨거워지자 임씨는 대형 선풍기를 더 거세게 틀고 안개 분사로 물을 끼얹는 기계를 가동했다.
임씨는 "더운 날에는 물을 하루 종일 뿌려 조금이나마 시원한 바람이 농장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리들이 워낙 온도에 민감해 더운 것도 문제지만 너무 습해도 폐사로 이어질 수 있다"며 "안개 분사기를 10분 동안 3분 틀고 7분 쉬는 방식으로 24시간 가동해 온도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나주시 대부분의 오리 농가는 시도에서 마련한 폭염 예방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임씨는 "스트레스 완화제와 비타민, 소금, 해열제 등을 먹여 방지하는 게 최선"이라며 "총 3억 5천여만 원을 투입한 약품 공급 가운데 오리 농가에는 9천 백여만 원을 지원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최근 이어진 폭염으로 전남에서는 닭·오리 농가 230여 곳 가운데 12곳이 폐사 피해를 호소했다. 임씨는 자신을 포함한 주변 농가들도 폐사를 걱정하느라 근심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임씨는 "오리들은 피부로 숨을 쉬다 보니 더위에 더 취약하다"며 "다른 농장에서는 하루에도 수천 마리의 오리가 폐사됐다며 울상을 지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다수의 오리 농가가 폭염에 폐사가 늘어도 폐사축 처리기를 사용하지 못해 악취와 민원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점이다. 가금류의 경우 200kg의 사체를 처리할 수 있는 폐사축 처리기가 2천 2백여만 원, 돼지 사체 300~500kg의 처리기는 3천 3백여만 원대인 것으로 파악된 가운데 일부 농가에서는 지자체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사체 매장 방식보다 친환경적이고 퇴비 재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처리기 도입이 보편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주시는 오리에 대해서는 폐사축 처리 지원을 2~3년 전부터 중단했다. 한정된 시 예산 속에서 방역적으로 효과가 더 큰 돼지 농가를 지원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답변이다. 오정훈 축산방역 팀장은 "약 3년 전부터 오리 농가와 가금류 농가 등에는 폐사축 처리기 지원이 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며 "폐사축 처리기를 3대 정도 살 수 있는 비용으로 백신이나 약품을 사면 더 많은 농가가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금류에 비해 돼지 농가 폐사축 처리기를 지원했을 때 사체의 악취 문제와 방역 등에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돼 돼지 농가에만 3대 정도 지원이 됐다"며 "농식품부의 방역 인프라 사업에도 가금류는 폐사축 처리기를 사용할 수 있게 명시되어 있는 바가 없다"고 답했다.
전남 13개 시군에서는 이날까지 2만 9천여 마리의 가축이 폐사 피해를 본 가운데 닭·오리 등 가금류가 2만 8천여 마리에 달해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