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입점업체들은 플랫폼 업체들과 비교하면 을이에요. 처음부터 강압적인 부분이 많았고, 정산기일 긴 거 알고 있었지만 저희가 을이다 보니 다 맞춰야 했어요" (악세사리 등 잡화 판매, 2500만원 상당 피해)
"정산만 제대로 되고 구매율만 높으면, 이 정도 불편은 감수하자 하고 들어가는 거에요. 법적으로 저희같은 셀러들은 의지할 곳이 없어요. 정산이 빨리 돼서 자금이 회전이 돼야 물건을 공급받고 대금도 주고, 택배비도 정산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고, 계속 악순환인 거에요" (뷰티업계 셀러, 1억 6천만원 상당 피해)
티몬 위메프에 입점해 물건을 팔아온 판매자들에 대한 줄도산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정산지연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입점업체들에는 이미 악명이 높은 '77 정산(77일 이내 정산)'이 꼽힌다. 업계에서 늑장 정산 문제는 꾸준히 제기 돼 왔지만 급성장 한 이커머스 환경을 쫓아가지 못한 뒤떨어진 법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10년전 '오프라인' 중심의 옛날 법으로 '온라인' 유통 적용
티몬의 경우 거래가 발생한 달의 마지막 날을 기준으로 40일 후, 위메프는 두 달 후 7일에 각각 대금을 지급한다. 다른 업체들과 비교해도 티몬·위메프의 정산 기일이 유독 길다.
네이버·G마켓·옥션의 일반정산은 구매확정 후 1영업일에 각각 지급된다. 11번가의 일반정산은 고객이 구매 확정 시 2영업일에 100%를 지급한다. 쿠팡의 경우 직매입인 로켓배송은 2개월 뒤에, 판매자들이 직접 배송하는 위탁판매 방식은 배송완료 후 70%는 한 달 내에, 나머지 30%를 두 달 내에 정산하는 방식이다.
티메프 사태에 앞서 대형 문구용품 사이트로 20년 동안 운영돼온 바보사랑 역시 사전 공지 하나 없이 폐업 당일 홈페이지 상에서 폐점을 선언하면서 이 사이트에 입점한 수 백 개의 납품업체들이 정산을 받지 못했다.
현재 판매자들의 피해액은 500만원 이상에서 5천만원까지로 이들은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1년 가까운 기간 동안의 판매대금을 정산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정산기일이 제각각인 건, 오프라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유통법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에는 월 판매 마감일로부터 직매입 60일, 위수탁 40일 이내에 대금을 지급하게 돼 있다.
그런데 이 대규모유통업법은 백화점·마트 등 대규모 유통업자의 거래상 우월적 지위 남용을 막기 위해 2011년 도입된 법이다. 백화점 3사와 대형마트 3사의 시장 과점 상황 속에서 대규모유통업자와 납품업체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해 제정된 법으로 '오프라인' 판매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달라진 이커머스 환경에 부합하지 않는 면이 많다. 이 법에 의해 오프라인에서 대형업체인 이마트, 롯데쇼핑 같은 경우는 온라인 판매에서도 법 적용대상이 되지만, 티몬·위메프 등 통신판매중개업으로 분류되는 중소형 플랫폼은 대규모유통업법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다.
이밖에 법에서 정한 정산기일 '60일' 역시 오프라인 거래 상에서의 '어음 발행' 평균 기간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이 부분도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온라인 매출 비중이 50.5%를 돌파하며 최초로 오프라인 비중을 넘어섰는데 법은 10년 전 오프라인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종수 한국유통원교수는 "이 법이 벌써 5~10년 전에 만들어진 법들인데, 그 사이 전자상거래가 이렇게 빨리 커질 줄 모르고 준비를 안 해왔던 것이다. 전자상거래가 변화하는 시기에 맞춰 법도 제도가 따라줬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 보호 장치도 약하지만…'판매자 보호장치' 전무
티몬·위메프 사태 초기 혼선을 빚었던 소비자 환불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이 되고 있지만 판매자 피해는 이제 시작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피해규모는 5월치 판매대금 미정산금만 산정한 것으로 향후 6~7월 미정산분이 추가되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마종수 교수는 "판매자들은 지금 5월 말에 팔았던 대금까지 받은 거고 6월과 7월에 팔았던 건 아예 못 받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앞으로 연쇄 부도 등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소비자의 경우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해 '에스크로(결제대금예치)' 등의 보호장치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지만 판매자 보호와 관련한 법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취재진이 직접 접촉한 티몬, 위메프 입점 피해자들에 늦은 정산에 대한 불안이 없었는지를 물었는데, 돌아온 답은 "설마 티몬, 위메프 같이 큰 곳이 떼 먹지는 않겠지" 라는 믿음에만 의지했다는 것이다.
늦은 정산 등과 관련해서 이커머스 업계 에서는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법이 제정될 경우 시장을 경직시킬 수 있다는 반발에 막히면서 '자율 규제'형식으로 업계에 맡겨왔다.
참여연대 김주호 민생경제팀장은 "온라인 플랫폼과 관련 자율규제를 협약하는 과정에서도 정산 주기를 짧게 해달라는 내용을 협의문에 넣어달라고 했는데 해당 기업들이 거부하고, 정부도 세게 밀어붙이지 못하면서 빠른 정산주기가 포함이 안 됐었다"면서 "이번 사태를 통해 더이상 자율 협약이나 규제에 맡겨 놓기 어렵다는 걸 확인한 만큼 명확히 규제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홍대식 교수는 "규제가 신규사업자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규제가 모든 답이 될 수 없다"면서도 "중개를 주로 하는 플랫폼 업체들이 갖춰야 할 안전장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