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한일외교를 보면 프랑스 작가 볼테르가 쓴 <캉디드>를 떠올리게 된다. 캉디드는 영어 'candid(솔직한,순박한)'와 같은 말이지만 그 뜻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소설 캉디드의 메시지는 도무지 말릴수 없는 낙천주의 세계관이다. 순진한 청년 캉디드를 교육시키는 팡클로스 박사는 "세상 모든 것은 최선의 상태에 있다"고 가르친다.
물론 팡글로스도 현실세계에 온갖 부정과 불합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는 실제로 불합리와 부정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결점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가장 좋은 곳이라는 낙천주의를 고집한다. 볼테르는 당시 사회의 근거없는 낙천주의 세계관을 소설을 통해 조롱했다.
윤석열 정부의 한일외교의 근간과 개념은 무엇인가. 무조건적으로 협력하자는 '개념'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무조건 협력을 '개념'이라 하기도 '이념'이라 하기도 민망하지만, 여하튼 그렇다. 대법원에서 결정난 강제노동 판결도, 일본이 전 세계에서 벌이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 지우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국민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과거 역사에 관계없이 한일 협력만 잘되면 양국 간 모든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낙천적 이념만 존재한다.
무조건적 한일 협력이 '최고선'이라는 노선은 시간이 지나도 도통 변할 기세가 없다. 작년 3월 정부가 시작한 일제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 제3자 변제 해법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뉴스에도 나오지 않는다. 잊혀지고 있으니 무조건 잘되고 있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당시 외교부 장관인 박진은 '컵에 물이 반은 찼다"고 말했다. 세상은 최선의 상태에 있으므로 나머지 반은 일본이 채울 것이라는 낙천적 기대였다. 솔직히 그가 낙천적 기대를 한 것인지, 아니면 비난을 모면하려고 '말기술'을 동원했는지 관심도 없다.
일본이 사도광산에서 '강제노동'이 이뤄졌음을 부정하는데도 이 시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윤석열 정부는 찬성했다. 무조건적 한일협력이라는 낙천주의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일본은 사도광산 인근의 향토박물관에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노동자의 전시중 가혹한 노동환경'이라는 전시코너를 설치했다고 한다. 이 향토박물관은 문화유산구역 밖에 있을 뿐만아니라 강제 연행이나 강제 동원 등 '강제'가 포함된 용어는 단 한줄도 적지 않았다.
대통령실 설명이 가관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라고 통칭된 인사는 "전시실을 방문하면 조선총독부가 노동자 모집에 관여했으며, 노동자가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혔다고 적혀 있는 등 누구나 강제성일 인지할 수 있게끔 돼 있다"고 말했다. 찬찬히 뜯어 읽어보면 강제성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의 대변인같은 화법이다.
한일 간 협력은 중요하다. 협력은 말 그대로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행위이다. 한일이 무턱대고 협력한다고 양국 관계가 모두 아름다워지지 않는다. 양국의 협력 속에서도 짚을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일관계 전반적인 분위기를 의식하고 그냥 일본이 하자는 대로 적당히 넘긴다고 모든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컵에 반을 채운 물도 이제 오염되고 있다고 국민들은 생각한다. 이념도 개념이라 할 수도 없는 '무턱대고 한일협력'이라는 정책 기조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