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나무 베어 탄소 중립 해결한다?[노컷체크]②숲가꾸기가 우리 숲에 도움된다?[노컷체크]③한국 '산림 바이오매스' 원목 태운다?[노컷체크]④종이 빨대가 플라스틱보다 친환경적이다?[노컷체크] ⑤나무 태우는 산림바이오매스, IPCC 인정한 탄소중립 에너지원이다?[노컷체크] ⑥건물에 나무 심으면 친환경이다?[노컷체크] (계속) |
'환경을 생각합니다.'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 들어서는 한 고급 주택의 홍보 문구다. '친환경 그린빌딩 콘셉트'를 표방하는 이 주택은, 건물 곳곳에 2500여 그루의 나무와 식물을 심었다. 건물 자체가 수직 숲을 이뤘다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친환경 건축물'을 자처한다.
친환경 주택은 세계적 트렌드다. 이 청담동 주택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보스코 베르티칼레', 호주 시드니의 '원 센트럴 파크'와 같은 숲 빌딩을 벤치마킹했다.
고급 주택에 덧입힌 친환경은 눈길도 사로잡는다. 최근 이른바 '환경 효능감'을 누리고 싶은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이왕이면 탄소를 덜 배출하고 환경에 무해한 주택에서 살고자 하는 이들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어디든 '나무' 심으면 친환경일까
단순히 건물에 나무를 심는다고 해서 친환경 주택으로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건물에 나무를 심는 건) 인간의 기후 변화 적응(climate change adaptation)일 뿐, 환경 친화적인 건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친환경 건축'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오스트리아 건축가 올리버 스터(Oliver Sterl)는 지구 친화적인지, 인간 친화적인지 구분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즉, 건물에 나무를 심는 것은 급격한 기후 변화 시기, 단지 '인간'이 적응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다.
취재진이 인터뷰에 나선 7월 초순 오스트리아의 한낮 온도는 35도. 올리버 스터는 "35도, 40도…도시들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식물들은 단열 냉각을 통해 최대 5도 정도 건물 내부의 온도를 낮출 수 있다. 그게 바로 '녹화'의 효과"라며 "또 식물 안에서 사는 건 사람들로 하여금 좀 더 안락하게 느낄 수 있게끔 도와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도시에서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목조 건물이든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든 상관없이 식물을 심으면 (인간의) 기후 변화 적응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립산림과학원 김철기 임업연구사 역시 "공기질 향상 등 환경적 이점은 있겠으나 건축물 자체가 친환경이라는 지표에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는 국제적인 방법론에 관한 얘기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산림분야에서의 탄소 흡수 방법으로는 △산림경영 △신규조림 △재조림 △목재 사용 등이 있다. 단순히 건물에 나무를 심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한국 역시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국제적으로 탄소 감축 의무가 있다. '나무 심은 건물'은 그저 숲 안에 살고 있다는 낭만의 실현일 뿐이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탄소 감축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규원 산림기술사도 "물론 전 지구적으로 탄소량을 줄여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국제 룰은 정해져 있다"며 "새로 조림을 한다거나 산림바이오매스를 이용한다거나 등의 행위를 해야 국제적으로 탄소 흡수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구' 친화적인 목재…무기한 탄소 저장고
그렇다면 '지구'에 친화적인 방식은 무엇일까. 탄소 중립 시대, 전문가들은 목재를 주목한다.나무는 태울 때 그동안 저장해온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뒤집어 말하면 나무를 태우지 않는 한 이산화탄소는 저장된다. 나무로 만든 목재 제품은 이산화탄소를 몸체 속에 고정하고 있다.
김 박사는 "목재 기둥 1㎥에는 약 840kg 정도의 이산화탄소가 저장된다"고 했다.
이는 온실가스 감축 실적이 된다. 김 박사는 "2011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따르면 국산 목재를 사용하였을 때 목재의 탄소 저장량으로 인정된다"고 부연했다.
더 중요한 점은, 사용이 끝난 목재를 폐기해 태울 때에도 국제 규정상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정한섭 임업연구사는 "IPCC 기준상, 목재는 수확되면 탄소가 방출된 것으로 산정된다"며 "(벌목 시) 탄소 배출이 이미 산정되었기 때문에 이후 추가 산정은 없다"고 설명했다.
나무를 베어낸 후라면, 곧바로 태우든 가구로 쓰다 50년 후 태우든 배출량은 '0(제로)'다. 대신 감축량은 인정된다. 대표적인 산림 선진국이자 목재 강국인 오스트리아가 '목재 활용'에 주안점을 두는 이유다.
오스트리아 브루크안데어무어(Bruck an der Mur)에 있는 연방산림학교 HBLA의 산림학과 학과장(headmaster)인 볼프강 힌트슈타이너(Wolfgang Hintsteiner) 박사는 "산림은 탄소 저장 측면에서 제한이 있다"면서 "(따라서) 오스트리아의 전략은 목재를 장기적으로 사용해 추가로 탄소를 저장하는 것"이라 말했다.
韓 "목재도 시간 지나면 탄소 배출한다"…전형적 인용 왜곡
산림청과 일부 언론들은 IPCC 보고서를 인용해 "목재 제품도 시간이 지나면 탄소를 배출한다"며 '평균적인 반감기'를 제시한다.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이는 보고서 일부만을 발췌해 오인한 것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산림청은 "IPCC 기준 탄소 저장 기간이 제재목의 경우 50년, 보드 20년"이라 공식적으로 언급한다.
이를 바탕으로 산업계 뿐만 아니라 일부 언론들은 "목재 제품마다 평균적인 반감기가 존재하고, 이를 지나면 탄소가 배출된다"는 식으로 해당 기준을 인용해왔다.
취재진이 전체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보고서는 반감기가 목재에 따라 고정돼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 같은 '오해'는 IPCC의 '2006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가이드라인 2019 개정판' 12.7장의 "제재목(반감기 35년)과 목재 패널(반감기 25년) 같은 장수명 목재 제품의 배출량을 과대 평가할 수 있다"고 기간을 언급한 문장에서 비롯됐다.
이 문장은 "특정 경제 상황에 따라 목재의 반감기(수명)가 과대 또는 과소평가될 수 있다"고 언급하는 맥락에서 예시로써 거론됐을 뿐이다.
보고서는 경제 호황기일 때는 사람들이 목재 제품을 빈번히 교체할 수 있고, 반면 불황기에는 교체 주기가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목재 제품의 평균적인 탄소 방출 시기를 일정하게 고정하는 것은 잠재적 불확실성을 지닌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이 문장 속 언급된 기간을 '제재목과 목재 패널의 반감기'로 단정짓는 것은 전형적인 인용 왜곡이라 할 수 있다.
보고서에 언급된 '35년'과 '25년'은 미국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한 것이며, 개별 국가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해석도 있다.
올리버 스터는 "그건 미국 보고서이고 미국의 건물을 기준으로 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우리 비엔나에선 보통 건물 수명이 200년 이상이다. 또 중국에는 1천년 된 목조 사원이 있는데, 1천년동안 탄소가 저장되어 있다고 한다. 그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오히려 IPCC가 발간한 또다른 보고서에서는 목재를 주택이나 가구에 사용한다면 탄소 저장을 수세기까지 늘릴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일단 나무를 베어냈다면, 최대한 오래 쓸수록 지구엔 '진짜' 친환경이 된다는 의미다.
탄소 저장 1천년도 끄떡없다…유럽은 '목조 건축' 홀릭
전문가들은 목재를 장수명(長壽命) 이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목조 건축물을 꼽는다.
콘크리트 건물에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건물 자체를 나무로 짓는다면 지구에 친화적일 뿐만 아니라 공식적으로도 상당한 양의 탄소 감축분을 인정받을 수 있다.
재료 생산 및 건축 과정에서도 탄소가 배출되는데, 2021년 기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7%가 건축 분야에서 배출됐다.
올리버 스터는 "철, 콘크리트 그리고 유리로 건물을 만들 경우 상당히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설명했다.
목재를 쓰면 건물 자체로 탄소를 저장할 뿐만 아니라 건축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도 현저히 줄어든다. 콘크리트 1㎥를 목재 1㎥로 대체하면, 약 1톤의 이산화탄소가 저감된다.
내구성 역시 철·콘크리트 건물 못지않다. 목재기 때문에 화재, 지진 등에 상대적으로 약할 것이란 생각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올리버 스터는 "불이 났을 때 콘크리트와 강철은 650도에서 붕괴하는 반면, 목재는 1천도에서 90분 동안 불을 때어도 내부 코어 온도는 10도 상승하는 데 그친다"고 말했다.
또 "지진 발생 시에도 목조 건물은 유연하다"며 "재료가 더 단단할수록 쉽게 부서지는데, 목조 건물은 구부러지고 탄력적이라 지진에도 잘 버틴다"고 주장했다.
그가 설계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 건축물 중 하나인 호호빈(HoHo Wien)은 목재 비율 75%로 콘크리트와 혼합해 만들었고, 고전적인 콘크리트 100% 건물과 비교했을 때 약 2800톤의 이산화탄소를 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는 정책적으로 건축 분야에서 목재 사용을 장려한다. 오스트리아뿐만 아니라 실제로 취재진이 방문한 유럽 곳곳에선 목조 건축물을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기후 정책의 산림 분야에서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은 목재를 건축 등 장수명 제품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오스트리아의 농림부 소속 산림 및 지역관리(Forestry and Regions Office of the Director-General)를 담당하는 폴 에어가트너(Paul Ehgartner) 국장이 강조하는 바다.
그는 "이는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시멘트나 철강 같이 생산 시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재료를 대체할 수 있고 동시에 건물에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며 "이는 마치 제2의 숲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볼프강 힌트슈타이너 학과장도 "목재는 오스트리아가 직접 가진 원자재지만, 철강이나 천연가스 등은 수입해야 한다"며 "따라서 (목조 건축을 장려하는 것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내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함으로써 국내 경제를 강화할 수 있다"고 이중 효과를 언급했다.
한국도 "향후 조성하는 건축물 목조건축화 선언"…현실은 '저조'
한국은 어떨까. 국내에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건축물' 중 하나로 소개된 목조 건축물이 있다. 경북 영주시 한그린목조관이다.국립산림과학원이 지은 이 건물은 국내 최초로 CLT(목재를 가로세로 교차해 붙인 건축재)를 활용해 2시간 내화성능을 인증받은 건축물이다. 지난 2021년 세계목재페스티벌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한그린목조관 역시 호호빈과 마찬가지로 목재와 콘크리트 혼합 방식이다. 국내 건축법상 피난 방화 규칙에 따라 엘리베이터와 계단은 무조건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그린목조관의 탄소 저감효과는 무려 160톤에 달한다.
김철기 박사는 "30년 된 소나무 숲 11ha(헥타르)가 15년 동안 흡수할 수 있는 양"이라며 "19평 되는 주택을 콘크리트로 지었을 때와 목재로 지었을 때를 비교하면 목조 주택은 승용차 18대가 연간 배출하는 탄소량을 저감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한그린목조관 준공 이후 국내 목조 건축 대중화 속도는 아직 더딘 편이다.
산림청은 2018년부터 총 예산 10억 원을 산정해 민간 건축물의 목조화를 지원하고 있으나 6년이 지난 현재까지 집행은 단 2건에 불과했다.
목조 건축을 위한 공급 여력 자체도 충분치 않다. 현재 국내 CLT 생산업체는 0개사, 집성재 생산업체는 5개사, SPB 생산업체는 1개사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의 목재 소비 현황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2022년 기준 한국은 연간 2868만㎥의 목재를 소비하지만, 이 중 절반 이상인 58.9%가 펄프용과 바이오매스용으로 쓰였다. 목조 건축에 쓰일 제재용은 16.6%, 보드용은 24.5%에 불과했다. 목재를 마치 일회용품처럼 소모적으로 쓰고 있다는 뜻이다.
네덜란드는 내년부터 신축되는 건물의 20%를 목재 등 소재로 의무화하는 규정을 도입할 예정이다. 캐나다는 목재우선법에 따라 국가자금이 투입된 건물은 목재를 주자재로 사용한다.
산림청은 CBS노컷뉴스 보도 후 ▲국내 목조건축 활성화를 위해 2022년부터 공공부문에 2,190억원 규모의 목재친화도시, 목조건축 실연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고 ▲효율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목조건축 품셈 마련과 함께 규제도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기획·취재 : 박기묵 정재림 장윤우 최보금
-본 기획물은 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인터랙티브]독이 된 녹색, 친환경의 배신: 숲이 위험하다 페이지 바로가기https://m.nocutnews.co.kr/story/s24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