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공연 문화의 산실로 평가받는 학전(學田)의 옛터에는 33년 넘게 학전을 이끌다 지난 21일 눈을 감은 고(故) 김민기를 추모하는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서울 정릉동에 사는 ㅈㅇ'라고 밝힌 한 시민은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꽃바구니에 쪽지를 넣어 애도를 표했다. 흰 국화와 흰 꽃다발, 남겨진 이들이 밝힌 것처럼 고인이 좋아하던 맥주 캔과 소주병도 눈에 띄었다.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김민기의 발인이 엄수됐다. 이날 오전 7시 50분쯤 장례식장에서 운구행렬이 이동했고, 8시쯤 아르코꿈밭극장(구 학전) 마당에 도착했다. 유족은 고인의 영정을 모시고 극장을 10분가량 순회했다. 고인의 친조카인 김성민 학전 총무팀장은 가족을 대표해 "이 이후의 일정은 저희 가족들과 함께하겠다. 감사하다"라고 인사한 후 자리를 떠났다.
마지막 가는 길에는 배우 황정민, 설경구, 장현성, 배성우, 최덕문, 이황의, 방은진 감독, 가수 박학기, 유리상자 박승화, 이적, 알리, 정병국 한국문화예술회 위원장,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이 밖에도 고인의 마지막 길에 함께한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거나 소리 내 오열했다. 또한 이들은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라며 '아침 이슬'을 함께 불렀다. 누군가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선생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쳤다. 내내 눈물을 흘리던 장현성은 "마지막 가시는 길은 가족분들 가족장으로 하겠다. 여기서 헤어지겠다.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195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김민기는 지난해 가을 위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가 지난 21일 저녁 세상을 떠났다. 고인이 세우고 마지막까지 헌신했던 학전은 지난 22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그의 죽음을 발표했다.
학전은 "학전의 김민기 대표님께서 2024년 7월 21일, 향년 73세로 별세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김민기 대표님은 지난해 가을 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건강 악화와 경영난으로 공연장을 더 이상 운영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올해 3월 15일 학전블루 소극장의 문을 닫았으나, 학전의 레퍼토리를 다시 무대에 올리겠다는 강한 의지로 투병해 왔습니다. 한평생 좋은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알렸다.
김민기는 '아침이슬'뿐 아니라 '상록수' '가을 편지' '아름다운 사람' '작은 연못' '봉우리' '내나라 내겨레' '친구' '백구' 등 많은 곡을 만들었다. 1991년에는 서울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만들어 대학로의 공연 문화를 이끌었다. 배울 학(學)에 밭 전(田)자를 쓰는 학전은 말 그대로 '배우는 못자리'로서 배우, 가수 등 다양한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길러냈다. 설경구·김윤석·황정민·장현성·조승우는 '학전 독수리 오형제'로 불리기도 했다.
해외 작품을 우리 환경과 정서에 맞게 각색한 한국적 뮤지컬 제작과 상연에도 앞장섰다. 70만 이상의 관객을 모은 '지하철 1호선'이 대표적이다. 김민기는 어린이·청소년극 제작에도 열심이었다. '우리는 친구다'부터 '고추장 떡볶이' '무적의 삼총사' '진구는 게임 중' '슈퍼맨처럼-!' '아빠 얼굴 예쁘네요' '도도' 등의 작품이 '학전 어린이 청소년 무대'를 통해 관객을 만났다.
하지만 경영난과 김민기의 건강 악화 등이 겹쳐 33주년이었던 올해 3월 15일 학전블루 소극장은 폐관했고, 김민기의 뜻에 따라 어린이·청소년 공연 중심 공연장을 지향하는 아르코꿈밭극장으로 바뀌어 이달 17일 공식 개관했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와 가수 등 아티스트를 '앞것'으로, 무대 뒤에 있는 본인을 '뒷것'으로 칭한 김민기는 영원한 잠에 들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과 조화 모두 받지 않았다.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