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제3대 신임 당 대표로 한동훈 후보가 당선됐다.
검사 출신인 한 대표는 문재인 정부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시키는 등 '조선제일검'이라 불렸지만, 이른바 '조국 수사'를 지휘하면서 좌천당했다. 이후 들어선 윤석열 정부에서 법무부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 위기에 빠진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정치 무대에 데뷔해 총선을 이끌었지만 참패 끝에 사퇴했다.
하지만 73일 만에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다시 정계에 복귀했고, 결국 당원들의 압도적 선택을 받아 선출직 대표에 올랐다.
조선제일검에서 좌천까지 '尹과 함께'…황태자로 정치 데뷔
국민의힘은 2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제4차 NEXT 보수의 진보' 전당대회를 열고 한동훈 후보를 신임 당 대표로 선출했다. 한 신임 대표는 당심 80%, 민심 20%가 각각 반영돼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합산 득표율 62.84%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한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신뢰했던 후배 검사 중 하나로, 20여년간 검찰의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 특수(특별수사)부 검사다. 검사 시절에는 윤 대통령과 계급장을 떼고 토론할 정도로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법대 대학 재학 중인 1995년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7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한 대표는 공군 법무관을 거쳐 2001년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검찰 재직 당시엔 '천재 검사', '엘리트 특수통'으로 유명했다. SK그룹 분식회계 사건, 현대차그룹 비자금 사건 등을 수사해 '재계 저승사자', '대기업 저격수'로 불리기도 했다. 2009~2010년 이명박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했고, 이후 법무부와 대검 등을 거치며 기획 능력과 정무 감각을 키웠다.
2016년 '박영수 특검(특별검사)'팀에 투입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팀장이던 윤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다. 이후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할 때 중앙지검 3차장 자리에 올랐다. 201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 수사·기소를 지휘했고,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에 올랐을 땐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역대 최연소 검사장에 올랐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시절을 보냈던 한 대표는 2019년 '조국 수사'를 지휘하면서 한순간에 좌천 인사를 당했다. 2020년 7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당시에는 이른바 '채널A 검언유착 사건'과 관련해 휴대폰 압수수색을 당하는 과정에서 서울중앙지검 정진웅 형사1부장과 몸싸움이 벌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초대 법무부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후 국회에 출석해 야당 의원들과의 설전에서 밀리지 않는 등 직설적이고 논리적인 '사이다 화법'을 구사하면서 '스타 장관'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한 대표는 '강남 8학군', '서울대 법대', '소년 급제' 등의 키워드와 함께 정통 엘리트 검사 출신의 캐릭터로 보수층의 지지를 받으며 '차기 대권 주자'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김기현 대표가 돌연 사퇴하는 등 당이 비상 체제에 들어서자 '구원투수'로 등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정치 무대에 데뷔했다.
정치 무대 선 순간부터 尹과 충돌…그럼에도 총선 참패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의 '아바타'라 불릴 만큼 현 정권의 '황태자'였지만, 정치에 데뷔하는 순간부터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존재감을 나타냈다.
지난해 12월 19일 법무부장관 사임 직전 한 대표는 국회를 찾아 당시 야당에서 거론되던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조건부 수용론'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대통령과 충돌했다. 다음 날 언론에서 '총선 후 김건희 특검 추진'을 대서특필했고, 이를 본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한 대표는 같은 달 21일 장관직에서 사임했고, 26일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 취임했다.
이후에도 한 대표는 대통령실과 여러 차례 충돌했다. 결정적인 사건이 지난 1월 18일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전후 과정에서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들이 걱정하실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언급한 일이다. 그로부터 3일 뒤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했지만, 한 대표는 '당무개입'이라며 반발했다.
총선을 약 한 달 앞두고 있던 3월 중순에는 이른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과 '황상무 대통령실 사회수석의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 등에 쓴소리를 내면서 또 다시 갈등을 겪었고, 이후 대통령실이 이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일단락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108석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뒀고, 한 후보는 책임지겠다며 총선 다음 날인 4월 11일 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73일 만에 '反尹' 주자로 정계 복귀…'배신의 정치' 공세 속 당선
하지만 한 대표는 올해 6월 23일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정계에 복귀했다. 사퇴 73일 만이었다. 총선에 참패한 당 대표가 바로 다음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기존 정치문법에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의 출마의 변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출마하겠다는 것"이었다.그는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채 상병 순직 사건 이첩 외압 의혹 특검'을 수용해야 한다고 밝혀 당내 '반윤'(反윤석열)계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외압의 정점에 대통령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이를 수용한다는 것은 대통령과 각을 세운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다만 야당이 낸 법안에는 특검 추천권 등 독소 조항이 존재한다며, 본인이 당 대표가 되면 제3차 추천권을 골자로 한 새로운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경쟁 주자들과 당내 '친윤'(親윤석열)계 세력들은 한목소리로 한 후보를 비판했고, 한 대표는 전당대회 레이스 내내 '배신의 정치'라는 공격을 감내해야 했다. 이에 더해 이른바 '김 여사 문자 읽씹(읽고 무시)'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자기 정치를 위해 대통령 부부를 저버렸다'는 비난까지 받았다.
이날 한 대표는 당 대표직 수락 연설에서도 "당원 동지와 국민 여러분들은 오늘 국민의힘에 '변화'를 선택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여드리자", "건강하고 생산적인 당정관계" 등을 언급했다.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강조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행사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검찰의 김건희 여사 특혜 조사'에 대해 "그동안 조사가 미뤄지던 것을 영부인께서 결단해서 직접 대면 조사가 이뤄진 것"이라면서도 "다만 검찰이 수사 방식을 정하는 데 있어서 국민의 눈높이를 고려했어야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