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민기, 황정민 등 배출한 '학전' 대표…아동극 공연도 힘써

21일 세상을 떠난 가수 김민기. 학전 제공
'아침 이슬' '상록수' 등을 만들었고 수많은 스타를 배출한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30년 넘게 이끈 가수 김민기가 21일 위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

195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김민기는 서울대 회화과에 입학했으나 획일적 교육 방식에 회의를 품고 1971년 '아침이슬'이라는 곡을 써 데뷔했다. 작사가·작곡가·편곡가·극작가·연출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30년 넘게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 '학전'의 대표를 지냈다. '땅 위에는 조용필, 땅 밑에는 김민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문화예술계와 동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를 '앞것'으로, 무대 뒤에 있는 자신을 '뒷것'이라고 칭한 데서 짐작할 수 있듯 김민기는 생전 인터뷰나 방송 출연을 꺼렸다. 올해 4월 'SBS스페셜'은 김민기와 학전을 주제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해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아침 이슬'과 '상록수'는 김민기가 작사·작곡한 대표적인 노래다. '아침 이슬'은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한낮에 찌는 더위는/나의 시련일지라/나 이제 가노라/저 거친 광야에/서러움 모두 버리고/나 이제 가노라'라는 가사로, '상록수'는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우리 나 갈길 멀고 험해도/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라는 가사로 유명하다.

이 밖에도 '가을 편지' '아름다운 사람' '작은 연못' '봉우리' '내나라 내겨레' '친구' '백구' 등 많은 곡을 만들었다. 그의 곡은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저항가요로서 민중의 곁에 함께했다.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서 임진택 연극 연출가는 고인이 투쟁 현장에서 직접 자기 노래를 부른 적은 없지만, 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를 들으며 용기를 얻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그게 예술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같은 프로그램에서 영화 '옥자' '기생충' OST를 담당한 정재일 음악감독은 "김민기 선생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라며 고인을 "내 음악적인 아버지"라고 존경의 뜻을 표했다. 또 하나의 국내 대표 포크 가수인 송창식은 김민기가 불러달라고 요청한 '친구'라는 곡을 듣고 '나보다 곡 잘 쓰는 사람이 많네' 생각했다며 "천재였던 것 같다"라고 돌아봤다.

1991년 3월 15일 개관한 소극장 학전은 김민기의 인생에서 뗄 수 없는 장소다. 33년 동안 총 359개 작품을 기획·제작하면서 공연예술인이 성장할 터전을 마련했다. 72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학전의 대표작이다. 황정민, 설경구, 안내상, 장현성, 김윤석, 조승우, 이정은, 이종혁, 배해선, 김대명, 박학기, 장필순, 강산에, 윤도현 등 많은 아티스트를 배출했다.

학전은 김광석, 안치환, 한동준, 신형원, 들국화, 빛과 소금, 권진원, 일기예보, 동물원, 윤도현, 박학기, 원미연, 유리상자, 시인과 촌장 등 많은 가수의 공연과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이병우 기타 콘서트' '김광석 추모 콘서트' 등 다양한 기획 공연을 개최해 대학로에 라이브 문화를 심었다.

학전은 한국적인 뮤지컬 창작에 앞장서기도 했다. 1994년 '지하철 1호선'을 시작으로 '모스키토' '의형제' '개똥이' 등 한국적 정서를 이야기와 음악에 녹여낸 뮤지컬을 발표했다. 김민기는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 '의형제' 번안과 연출을, '개똥이' 작사·작곡·연출을 맡았다.

'지하철 1호선'은 서울연극제 특별상, '의형제'는 제35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제37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대상 및 연출상 등을, '고추장 떡볶이'는 서울어린이연극상 우수상, 대한민국연극대상 아동청소년연극상 등을 탔다.

1997년 청소년극 뮤지컬 '모스키토'를 시작으로 꾸준히 아동·청소년극을 공연한 곳이 바로 학전이다. 2004년 '우리는 친구다'부터 '고추장 떡볶이' '무적의 삼총사' '진구는 게임 중' '슈퍼맨처럼-!' '아빠 얼굴 예쁘네요' '도도' 등의 작품이 '학전 어린이 청소년 무대'를 통해 올라갔다.

SBS스페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제공
'지하철 1호선'을 제외한 작품은 수익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지만 아동·청소년극을 소명으로 삼은 김민기의 뚝심이 있어 가능했다. 김민기는 주로 해외 원작을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번안해 직접 연출해 왔다.

학전 관계자는 2021년 CBS노컷뉴스에 "아이들을 어른에 비해 미숙하고 서툰 존재가 아니라, 어른과 동일 선상에서 존중받아야 할, 그 자체로 빛나고 의미 있는 존재로 바라본다"라며 "작품을 통해 아이들이 다양한 예술적 경험을 하고, 한 뼘 더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연을 올린다"라고 밝혔다.

김민기는 문화예술계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제5회 한국뮤지컬대상 특별상, 제10회 한국대중음악상 특별 분야 공로상,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수훈, 제23회 심산상 등 다수 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민기가 열정을 쏟아온 학전 소극장은 그의 병환과 경영난이 겹치면서 개관 33년 만인 올해 3월 폐관했다. 학전 소극장은 김민기의 뜻을 이어받아 어린이·청소년 공연 중심 공연장을 지향하는 아르코꿈밭극장으로 탈바꿈해 이달 17일 공식 개관했다.

고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22일, 김민기의 조카이기도 한 김성민 학전 총무팀장은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인의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지난 19일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졌고 20일 오전 응급실을 찾았으나 21일 저녁 8시 26분에 눈을 감았다고 설명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24일 8시, 장지는 벽제장-천안공원묘지다. 조문은 오늘(22일) 12시 30분부터 가능하며,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과 조화는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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