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이라고 할 만한, '구현하고 싶었던' 음악인 '폭포'(Waterfall)부터 총 8곡이 담긴 '역성'은 앨범명 그대로, 무언가를 '거스르는' 노래를 모은 결과물이다. '폭포'는 관성, '폭죽타임'(POKZOOK TIME)은 어둠, '검을 현'(Strings as a Sword)은 판, '솔드 아웃'(SOLD OUT)은 시스템, '리턴매치'(Return Match)는 결과, '28k 러브!!'(28k LOVE!!)는 순도, '내게로 불어와'(Blown to Me)는 목적지, '캐논'(Canon)은 완벽을 거스르는 노래다.
CBS노컷뉴스는 이승윤이 조희원, 지용희, 이정원과 함께 만든 앨범 '역성' 제작 과정을 들어보았다. 이번 인터뷰는 18일 서면으로 이루어졌고, 아티스트이자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인 이승윤과 소속사 마름모가 답변했다.
데모 단계에서는 모든 노래에 가사가 없었다. 이승윤은 "가사 없는 노래들 데모로 저희끼리 품평회를 하고선 앨범 단위에서 이런저런 곡이 더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후 쓰인 곡이 있었고 그때 붙여진 가사가 '역성'이라는 키워드를 담고 있었다. '현재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역성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정규앨범명을 '역성'으로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데모 가사를 하나하나 써 내려갈 때 이 노래는 '역성'이라는 앨범에 실릴 것이라는 마음가짐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 같다. 사실 트랙 배치는 의외로 큰 고민이 되지 않았다. 멤버들과 회사 분들과 이런저런 배치를 해보다 '폭포'로 열고 '캐논'으로 닫는다는 명쾌한 줄기를 금방 땅땅땅 했던 것 같다"라고 부연했다.
"우린 어쩔 수 없이 이 시대를 살며 각자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면서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판에 완전히 박혀 있는 장기 말은 아니라는 인지를 한 번씩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이 영원불변한 진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저 장기말이기만 한 삶이 될 테지만, GET OFF라는 순간, GET OFF라는 마음가짐, GET OFF라는 사고의 전환을 한 번씩 한다면 체스판 위에서도, 아래서도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써본 가사입니다."
또한 이승윤은 "'개론'들뿐인 사상들, '재롱'들뿐인 우물들 같은 말맛도 시도를 해봤다. 그럴듯해 보이는 사상들로 시대를 지배하려 하지만 알맹이 없이 개론에 머물러 있고, 어마어마한 논공행상이나 떠들썩한 잔치처럼 보이지만 그저 우물 안의 재롱이기만 한 일들 나는 이제 필요 없다는 주제 의식을 가지고 쓴 가사이기도 하다"라고 소개했다.
체스판은 이번 앨범에서도 중요한 이미지로 작용한다. 곡에서 파생되는 비주얼 프러덕션 전반은 소속사 마름모의 호수빈 A&R 팀장이 담당했다. 호 팀장은 "이번 '역성'의 키 비주얼인 '체커보드'를 채택하고 그것을 토대로 온라인 프로모션 플래닝 및 피지컬(실물) 앨범 프로덕션, 콘텐츠 기획, 제작을 주 업무로 담당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승윤은 '폭죽타임' 중 "어둠 속에 '빈' 틈 속으로 '지'진과 같은 섬광을 뿌려 지금부터 '비'밀보다 더 '짓'궂은 불꽃놀이를 할거야"라는 가사를 언급한 후, "이 비, 지, 비, 지잇으로 말맛을 맞추기도 했고, 폭'죽'타임이 노래 후반에 모든 악기의 폭'주'타임이 되게 글자 하나를 바꾸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쇼케이스 당시 이승윤은 가사가 통 나오지 않아 독일로 여행 갔을 때 쓴 노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솔드 아웃'과 '리턴매치'다. 총 4곡을 썼는데, 다른 2곡은 이번 정규앨범에서는 탈락했다고 귀띔했다.
첫 곡 '폭포'부터 마지막 곡 '캐논'까지 모든 곡에 연주가 들어갔다. 오르간, 휘슬, 색소폰, 트럼펫, 플뤼겔호른 같은 독특한 악기도 포함됐다. 악기 구성에 신경 쓴 부분, 이 모든 것을 연주자가 하는 '직접 연주'로 소화한 이유를 물었다. 이승윤의 답을 그대로 옮긴다.
앨범을 보통 '음원' 단위로 소비하고, 이제 3분도 길다며 2분 안쪽의 노래가 쏟아지는 요즘이다. 이때 이승윤은 최근 3년 동안 '정규앨범'을 계속 내 왔다. 자기 자신을 "정규앨범을 내기 위한 여정을 가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올해까지는 정규앨범을 내는 음악인"으로 살겠다고 한 데서, '정규앨범'을 향한 애정이 느껴졌다.
회사는 '정규앨범'이라는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바라볼까. 마름모 주성민 대표는 "아티스트 메시지와 사운드가 하나의 앨범에 담겨 완성되기까진 정말 많은 고뇌와 노력의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매년 정규 단위의 앨범을 발매한다는 건 아티스트나 회사에도 절대 쉽지 않은 큰 프로젝트"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현시대 음악 시장이 여러 가지 이유로 대다수 싱글 단위 음원 발매와 활동으로 이뤄지고 있다. 시대가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음악에 영혼을 담아 하나의 앨범으로 완성시켜 가는, 의지 있는 음악인이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음악 시장에도 가치 있는 행보라고 생각한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앨범 만족도와 관련해 이승윤은 "함께 노래를 만든다는 방식이 저희 네 명 모두에게는 너무 소중하고 즐겁다는 마음을 훨씬 더 많이 부추겨줬고 결과물도 그렇게 나온 것 같아서 기쁘다"라며 "'굳이' '직접' 녹음을 하는 방식도 저희 모두의 호기심과 향상심이 플러스알파가 되어 더더더 시도해 보고, 더더더 도전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족도는 120%"라고 답했다.
이승윤은 '싱어게인' 출연 당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스스로를 '방구석 음악인' '배 아픈 가수'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회사가 이승윤에게 붙이고 싶은 수식어가 있는지 물었다.
"이승윤은 인디 뮤지션 출신입니다. 장르를 떠나 모든 신인은 방구석이나 합주실 또는 허름한 클럽에서 함께 하는 이들과 미래를 꿈꾸는 무명 시절을 거칩니다. 그런 시절을 멈춤 없이 나아간 결과 많은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을 방구석 뮤지션이라 말합니다. 이승윤은 현실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마음이 우주와 같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찾아볼 수 없는 뮤지션이라 생각합니다. 이승윤은 이승윤입니다." (마름모 주성민 대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