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 '반의사불벌죄'인데…'피해자 대통령' 침묵은 언제까지

사건 쟁점은 '명백한 허위 인식' 될 듯
통상 반의사불벌죄 수사 땐 처벌 의사 확인
이번 사건 피해자 의사 안 묻고 수사·기소
전직 대통령들도 침묵…사건은 무죄 확정

지난 대선에서 대장동 사건과 관련한 허위 인터뷰로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왼쪽)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연합뉴스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를 적용해 언론사와 기자 등을 재판에 넘기면서, 윤 대통령의 입에 이목이 쏠린다.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형사처벌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사건과 관련한 처벌 의사를 표시한 바 없지만, 검찰은 "피해자가 처벌 의사를 밝히지 않더라도 수사·기소를 거쳐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검찰,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뉴스타파 등 기소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대선개입 여론조작 의혹 특별수사팀(팀장 이준동 부장검사)은 지난 8일 배임증재 및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청탁금지법 위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와 배임수재 및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청탁금지법 위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공갈 등 혐의를 받는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을 구속 기소했다.

김씨와 신씨는 지난 2021년 9월 15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대검찰청 중수2과장 시절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 수사를 무마해줬다'는 취지의 허위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뉴스타파 등 언론사가 대선 직전인 2022년 3월 6일 보도하게 만든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런 일련의 보도 과정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고 보도 관련자인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와 한상진 기자 역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명백한 허위 인식 있었나…향후 재판 쟁점될 듯

검찰은 지난해 9월 특수부 검사 10여명을 투입해 특별수사팀을 꾸렸고 약 10개월간 이뤄진 수사 결과를 최근 내놓았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뉴스타파 등 언론과 언론인들이 윤 대통령의 '수사 무마' 의혹이 허위라는 점을 명백히 인식했는지다. 언론이 윤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비방할 목적'을 갖고 취재 및 보도를 한 것이 아니라면 재판에서 명예훼손죄가 인정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김씨 등의 검찰 공소장에는 "허위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라는 문구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김씨와 신씨는 물론, 뉴스타파 관계자 2명 역시 윤 대통령의 '봐주기 의혹'이 허위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도 보도를 강행했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기 때문이다.

'피해자' 尹 대통령 처벌 의사도 변수

연합뉴스

검찰이 언론에 반의사불벌죄인 명예훼손죄를 적용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벌인 점을 고려하면, 명예훼손 피해 당사자인 윤 대통령의 의사도 이번 사건의 주요 변수로 꼽힌다. 명예훼손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죄를 물을 수 없어서다.

통상 수사기관이 명예훼손죄 같은 반의사불벌죄를 수사할 때는 피해자에게 처벌 의사를 확인한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굳이 수사를 진행할 필요성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김건희 여사는 자신의 접대부 의혹을 제기한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와 안해욱 전 한국초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하던 경찰에 "처벌을 원한다"는 취지의 진술서를 냈다.

이와 달리 검찰은 피해자인 윤 대통령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채로 현재까지 수사를 진행해 일부 관련자를 재판에 넘긴 상태다. 다만 기소 후 재판 과정에서라도 윤 대통령이 처벌 불원 의사를 표시하면 법원은 명예훼손죄에 관해서는 공소기각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피해자가 '처벌 불원' 의사를 1심 선고 이전에 밝혀야만 그 효력이 인정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라는 점이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피해자인 윤 대통령 측의 처벌 의사를 확인할 지는 미지수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현 상태로도) 수사와 재판에 문제가 없다"면서도 "2023년 9월 대통령실에서도 이 사건 범행이 희대의 대선공작 사건이라고 발표한 사실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박근혜·문재인 전직 대통령들 명예훼손 사건서 침묵

수사 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상, 윤 대통령이 먼저 처벌 의사를 밝힐 가능성은 전례와 비교해도 적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시각이다. 과거 대통령들 역시 자신의 명예훼손 혐의 사건에서 침묵을 지켰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세월호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의 행적에 관한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 별다른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전광훈 목사가 2019년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해 "간첩" "공산화 시도" 등 발언을 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도 문 전 대통령은 처벌 의사에 관해 입을 열지 않았다. 두 사건 모두 재판 결과 무죄가 확정됐다.

사단법인 오픈넷 손지원 변호사는 "대선 당시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사실인지 허위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이 대통령의 명예훼손 혐의를 수사하고 언론을 압수수색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면서 "윤 대통령이 하루 빨리 처벌 불원 의사를 표시해 이 상황을 멈춰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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