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기준 건강보험 보장률은 65.7%로 돼있습니다. 그런데 이 수치는 사실 이번 정부의 성적표라고 보긴 어렵고요. 본격적으로 현 정부 성적표가 나오는 건 2023년도일 텐데 그때 보장률은 65.7%보다 올라갑니까?"
17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및 국가 책임의 확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린 가운데 좌장을 맡은 신영전 한양대 의대 교수는 이날 패널로 참석한 조충현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을 향해 이렇게 질문했다.
조 과장이 잠시 머뭇거리자, 신 교수는 올 2월 발표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을 들어 "(보통) 5개년 종합계획에는 (건보) 보장률을 얼마나 높이겠다는 확대 계획이 담기지 않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데 제가 못 찾은 건가"라고 반문했다. 또 건보 적용을 통한 보장성 제고를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이 있다면 직접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조 과장은 "고가 약재에 대한 급여화 부분이 작년과 올해는 가장 컸던 것으로 안다"며 "암이나 희귀·난치질환에 대한 (약값) 부담 완화를 위해 보장성을 강화하는 부분들"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더불어민주당 남인순·강선우·김윤 의원이 공동 주최한 이 자리에서는 수가 인상 등 '필수의료' 과(科)에 대한 공정한 보상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보편적 의료 제공'을 위한 건보 보장성 강화는 누락된 정부의 의료개혁 방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다수 나왔다.
홍석환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기본적으로 윤석열 정부는 (건보) 보장성과 관련된 내용을 전혀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건보(제도)를 약화시키려 하는 것"이라며 "역대 정부들은 매번 5년짜리 (건보)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보장성 계획을 포함시켜왔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노무현 정부보다 한 10%p 높은 80%를 보장률 목표로 제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민들의 생명·건강권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차원에서, 통상 의료의 '공공성'을 보다 강조하는 진보 정권이 아닌 보수 정권에서 되레 더 높은 보장성 목표를 수립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건보 외 본인부담금과 비급여 등을 합산한 전체 의료비 지출은 지난 2022년 이미 200조 원을 넘겨 국내총생산(GDP) 대비 9.7%에 이른 데 반해 공적 사회보험인 건보의 보장률은 연평균 증가율이 1%에도 못 미쳐 '답보' 상태인 점도 지적했다. 60%대인 현 보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0%p 가량 낮은 수준이다.
홍 정책국장은 "(현 정부는 문재인 정부 당시) '비급여(항목)의 무차별적 급여화'로 재정(상태)만 악화됐다고 하면서 건보의 재정건전성, 안정성만을 강조하고 있다"며, 복지부는 동의하지 않고 있으나 은연중에 의료 시장화(민영화)를 부추기는 정책도 건보 종합계획에 상당수 들어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영리 목적의 민간 실손보험을 통제하지 못하면 건보 보장성 확대는 기대할 수 없다며, 이 두 가지는 보완적 관계와는 거리가 멀다고 밝혔다. 홍 정책국장은 "실손의료보험이나 민간보험사들은 내는 보험료나 보험상품에 따라 보장범위나 내용이 천차만별"이라며 "심사기준도 자의적이라,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신청한 질병의 경우에도 (보험사 판단에 따라)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손 의존도는 낮추고) 건보 보장성을 높여야만 가계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정부가 '혼합진료'(급여+비급여 진료)를 금지하겠다고 얘기한 데엔 동의한다"고 했다. 다만, 정부가 대표적인 예시로 든 백내장과 도수치료의 경우, 이 같은 조치의 실효성이 높지 않을 거라고 봤다.
구체적으로 백내장은 2022년 대법원이 백내장 수술을 일괄적으로 '입원치료'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려 실비 적용이 까다로워졌고, 관련 비급여 과잉진료가 다소 잡힌 부분도 있다고 언급했다. 홍 정책국장은 "이후 금융감독원이 실손보험사 손익 관련 통계를 낼 때도 어느 순간 백내장 부분은 빠졌다"며 "아무리 (큰 틀에서) 좋은 정책을 한다고 해도 보험사의 민원을 받은 결과 이상은 아니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발제자로 나선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 대표도 정부가 비급여 항목을 의사와 환자 간 사적계약 관계로 방치하면서, 의료이용 부담은 늘고 진료체계 역시 '필수의료 붕괴', '개업의 개원 열풍' 등의 부작용이 이어졌다고 봤다.
김 대표는 보장성 개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공공재원 지출 △혼합진료 시행 여부 등 2가지를 꼽았다. 사실 경상의료비 중 공공재원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고, 2000년대 초반 이후 안정적 추이를 유지 중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단, 또 다른 변수인 혼합진료 영역은 당국의 개입이 없었던 점을 들어 "공공재정 투입에 따른 보장성 개선 효과가 비급여 비용으로 상쇄되고 있으며, 이를 차단하기 위한 장치가 부재하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맥락에서 급여와 비급여의 '혼용'을 허용하는 체계 아래서는 비급여 부문을 온전히 통제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따라서, 바람직한 급여체계 개편을 위해서는 '특정 질환 등에 한해' 일부 비급여 행위와 급여항목과의 혼용을 인정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입장이다. 물론 비급여 일체를 금하는 방법도 있지만, 현실적 수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혼합진료의 제한적 인정 기준으로는 △질환 특성 및 중증도 △건보 급여행위와의 대체가능성 △남용 여지 등을 꼽았다. 또 관련 비급여는 '한시적 인정'을 원칙으로, 2년마다 재평가를 통해 문제항목은 퇴출하자고 제언했다.
정부는 최근에서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비(非)중증 과잉 비급여 혼합진료' 억제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조규홍 복지장관은 지난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리나라의 기형적 비급여 실손보험 진료를 개혁하지 않으면 필수의료 붕괴를 막을 수 없다"는 김윤 의원 지적에 "동의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비급여·실손 개편을 위한 가격통제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조 장관은 "(왜곡된 구조 개혁을 위한) 가장 직접적 방법이긴 한데, (의료계의) 반대 의견이 상당하다"며 "의개특위에서 연말까지 합리적이고 단계적인 방안을 만들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