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경기도 법인카드로 민주당 인사들에게 식사를 대접한 혐의로 기소된 김혜경씨가 자신의 재판에서 진술 자체를 거부하는 '포괄적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예정됐던 피고인 신문이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 개별로 진술을 거부하면 될 일이지, 신문 자체를 생략하는 것은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진술 거부권이 검찰의 신문권보다 상위에 있는 개념이라며 김씨 측 요청을 받아들였다.
수원지법 형사13부(박정호 부장판사)는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씨의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선 김씨의 피고인 신문이 예정돼 있었지만, 김씨 측의 거부권 행사로 진행되지 않았다.
김씨는 '법인카드'와 관련된 또다른 사건인 업무상 배임 혐의로도 검찰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관련 진술을 하는 게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포괄적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포괄적 진술거부권이란 법정에 선 피고인의 검찰 등의 신문에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않는 것이다.
김씨의 변호인은 "현재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도 조사를 받고 있고, 이달 4일에는 검찰로부터 출석 요구도 받았다"라며 "이 사건(공직선거법 위반)을 포함한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 조사대상으로 돼 있기 때문에 (이 재판에서) 검찰의 질문 일체에 진술을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피고인 신문 자체를 진행하지 않는 것은 피고인 신문을 규정한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검찰의 개별 질문에 피고인이 답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도 방어권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피고인은 검찰의 질문에 개별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답변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신문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은 취지에 반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진술거부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행사하는 것과, 포괄적 진술거부권으로 애초에 신문 자체를 진행하지 않는 것은 상당히 차이가 크다"라고 말했다.
양측은 피고인 신문 진행 여부를 놓고 상당 시간 공방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김씨 측의 표현이 문제되기도 했다.
김씨 측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피고인이 일체 진술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도 검찰이 반복적인 질문을 한다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할 계획까지 있다"라고 밝혔다.
검찰은 즉각 반발했다. 검찰은 "인권위에 제소하겠다는 말은 검찰에게 피고인 신문을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으로 들린다"라며 "재판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검사에게 인권위 제소를 운운하는 것은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김씨의 변호인은 "적절치 않은 말이었다. 취소하겠다. 죄송하다"라며 "피고인이 진술을 거부하는데도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은 인권 침해 사례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막 나갔다. 사과한다.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라고 사과했다.
양측의 주장을 듣고 고심한 재판부는 김씨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피고인의 진술 거부권이 검찰의 신문할 권리보다 상위에 있는 개념이라고 판단해서다. 재판부는 형사소송법 제283조와 296조를 이유로 들었다.
형사소송법 제283조의 2는 김씨 측 주장을 뒷받침 하는 조항으로, 피고인은 진술하지 않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해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검찰 측 주장은 제296조 2에 기반한다. 검사 또는 변호인은 증거조사 종료 후에 순차로 피고인에게 공소사실 및 정상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신문할 수 있다.
재판부는 "검사가 신문할 수 있는 권한보다는 포괄적 진술거부권에 대한 효력이 상위개념이라고 판단된다"라며 "두 가지가 충동할 땐 진술거부권이 우수하기 때문에 피고인에게는 포괄적으로 거부할 권리가 있고, 그 경우에는 신문을 실시하지 않는 게 맞는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두 차례 휴정을 하고 논의 끝에 이같이 결정했다.
검찰은 재판부 결정을 받아들이면서도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피의자들은 수사기관에서 진술조서를 거부할 것이고, 재판에서도 진술을 거부하는 문제가 계속 될 것"이라며 "검찰은 피고인의 주장도 알 수 없고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방어권도 보장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재판부는 다음 기일을 오는 25일로 정하고 결심공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김씨는 배씨와 공모해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가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2021년 8월 당시 서울의 한 식당에서 경기도 법인카드로 민주당 인사 3명(7만 8천원)과 수행원 3명 등 식사비용 10만 4천원을 결제한 혐의(기부행위)로 기소됐다.
또 이 전 대표가 경기지사에 당선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당시 경기도 전 별정직 공무원인 배씨가 경기도 법인카드로 소고기나 초밥 등 자신의 음식값을 지불하는 데 관여한 혐의(업무상 배임 등)로 조사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