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 정책을 이상주의라고 비판하고 미국과의 동맹 유지를 한국이 추진해야 하는 대전략으로 꼽은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이춘근 박사의 번역으로 소개된 미어샤이머의 대표작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 및 외교 전략을 비판하기 위한 좋은 외부적 권위자이자 수단을 제공했다."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의 신간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펴낸 서해문집은 한국 정치외교가에 가장 잘 알려진 미어샤이머 교수의 대표작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2004 나남)이 한국에 소개된 과정과 이명박-윤석열 정부의 대북 및 외교 정책에 미친 영향을 이렇게 평가했다.
미어샤이머의 이론을 받아들인 이춘근 박사에 이어 이명박-윤석열 정부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수립해온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미어샤이머 교수를 자신의 스승으로 꼽는다.
신간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국가는 합리적으로 행동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의 제자 서배스천 로사토 교수와 함께 썼다.
이 신작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한국에서 논쟁적인 학자인 미어샤이머 교수의 학문적 철학은 무엇인지, 특히 한국을 둘러싼 동북아 외교안보 환경에 대한 그의 시각과 주장들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미어샤이머는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을 발전시킨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이론은 강대국 간의 상호 작용이 주로 무정부적 국제 체제에서 지역 헤게모니를 달성하려는 합리적인 욕구에 의해 주도된다고 설명한다.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조교수의 해제 '현실주의 이론가 미어샤이머에 대한 오해와 사실'에 따르면, 미어샤이머는 자신의 저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을 통해 21세기 강대국 국제정치를 전망하면서, 미국이 당면할 최악의 시나리오로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잠재적 패권국으로 등장하는 일을 꼽았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미국의 정책이 중국을 세계 경제에 통합시켜 '현상 유지'에 만족하는 국가로 만들려는 것이라며 개탄했다. 부유해진 중국이 현상 유지는커녕 지역 패권을 추구하는 공격적 국가로 더 빠르게 전환하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그의 주장은 일견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부상하는 중국 사이에서 갈등하던 한국 사회에 지속적인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의 저서가 한국에 소개된 이후 2010년대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한 미어샤이머는 한국 외교에 대해 조언하면서 중국의 강대국화에 맞서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과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냉전기 조지 캐넌의 대소련 봉쇄 전략을 높이 평가하면서 자신의 대중국 정책의 이론적 근거로 케넌의 봉쇄 전략을 꼽았다. 이는 이명박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서 연달아 국가 안보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김태효 제1차장의 전략 구상과도 유사하게 보인다. 그는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보내며 미어샤이머의 세계관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스스로 미어샤이머 교수의 사사를 받았다고 공언할 정도다.
다만 미어샤이머 교수의 조언은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경우 중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을 활용해 중국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현 정부는 북한을 둘러싼 중국과 러시아를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지 못하는 국가로 절하하고, 미국과 일본은 우리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 동맹'으로 본다는 점에서 미어샤이머와 결을 달리한다는 것이 옥창준 조교수의 지적이다.
이는 '자유주의적 가치'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하고 '힘의 역학관계'를 통해서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미어샤이머 주장과의 결정적 차이다. '자유 북진'을 외치는 정책은 오히려 미어샤이머가 비판하고자 했던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이나 네오콘을 닮아가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김태효 제1차장의 현 정부 대외정책이 미어샤이머의 '대중국 견제'를 넘어서는 것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미어샤이머의 논리를 받아들인 한국의 '현실주의' 노선이 다른 결을 보이는지에 대해 옥창준 조교수는 거친 가설을 제기한다. 분단된 한반도 남쪽의 '현실주의자'들이 주로 민주당 계열의 '비현실주의자'들과 싸우는 동시에, 자신들의 사상적 뼈대를 보수주의가 아닌 '자유주의'에서 발견하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제정치적으로는 현실주의 논설을 받아들이면서도 국내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 전사의 모습을 동시에 지녀야 했다는 것이다.
또한 미어샤이머가 미국 정치 문화가 지나치게 '자유주의적' 문화에 젖어서 국제정치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비판했다는 점을 든다. 자유주의 세계관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나머지 '세력 균형' 논리에 위배되는 정책을 추구하느라 중국을 향해 적절한 경제와 봉쇄를 취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미어샤이머 저서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기된다.
그는 미국이 탈냉전기에 정력적으로 추구한 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했다. 미국의 잘못된 자유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무리하게 비자유주의 국가들을 자유주의 국가로 바꾸려고 노력하다가 국력을 낭비했고, 지금도 중국의 부상을 저지한다는 제1 국가 목표를 망각한 채 '자유주의 수호'라는 헛된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는 미어샤이머의 냉엄한 진단이다.
옥창준 조교수는 미어샤이머의 논리에 동의하느냐 반대하느냐는 별개로 분명한 사실은, 미어샤이머는 미국 내에서는 자유주의적 접근을 비판하고, 국제정치전략으로는 '중국 견제'라는 제1의 목표를 줄곧 주장하는 현실주의 이론가라고 평가한다. 여기에 더해 그가 한반도 문제를 미국의 관점에서, 외부에서 바라보는 자의 시선이라는 점에서, 실제 한반도와 동아시아 현실에서 그의 이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치열한 논쟁과 탐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외교 전략의 논쟁점에 있는 미어샤이머 교수가 천착해온 국제 외교와 정치, 힘의 균형을 연구해온 새로운 분석과 철학을 담아냈다.
조지 부시, 블라디미르 푸틴, 아돌프 히틀러 등 과거와 현재의 세계 지도자들이 세계대전과 냉전, 탈냉전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대한 역사적 사건의 맥락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했는지를 분석해 '국가의 합리성'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한다.
냉전 이후 미국의 나토 확장 전략, 제1차 세계대전을 개시한 독일의 결정, 2차 세계대전 때 미국 진주만을 공격하기로 한 일본의 결정, 1960년대 미국의 쿠바 침공,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한 국의 '대전략'과 '위기 대응 전략'은 어떻게 결정되는지, 지도자와 정책결정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다른 국가를 상대하기 위한 정책은 어떻게 만드는지를 이론적·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책은 지속하는 미중 갈등, 한미일 동맹과 협력의 논란, 북중러 밀착 등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혼돈과 외교정책 논란이 증폭되는 대한민국에서 돌이켜보고 따져보아야 할 냉철한 현실을 일깨운다.
존 미어샤이머·서배스천 로사토 지음 | 권지현 옮김 | 서해문집 | 4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