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차기 지도부의 최고위원 경쟁이 후보 8명으로 압축되면서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예비경선에서 생존한 후보들 가운데 다수는 '윤석열 정권 심판', '탄핵'과 함께 '이재명 수호'를 소리 높여 외쳤다. 다만 '이재명 일극 체제' 속에서도 당의 정책방향에 대한 본인의 비전이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차별화 전략 또한 펼치고 있는 상황이어서, 어떠한 메시지가 본 경선에서 먹힐지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윤석열 정권 심판'·'이재명 수호' 중심에 둔 민형배·강선우·전현희
민주당은 14일 전국당원대회 예비경선을 열고 최고위원 후보 13명 가운데 8명을 최종 후보로 선출해 본선에 올렸다. 본선에 올라간 후보는 전현희·한준호·강선우·정봉주·김민석·민형배·김병주·이언주(기호 순)까지 모두 8명이다. 이 가운데 정봉주 후보를 제외한 7명은 22대 현역 의원이다.이재명 전 대표 마케팅을 가장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후보 중 한 명은 민형배 후보다. 민 후보는 지난 대선 당시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주류로 자리매김했던 당내 호남 인사들 중 가장 먼저 이 전 대표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인연이 있다. 이후에도 검찰개혁TF 활동과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강행 처리를 위한 '꼼수 탈당'도 불사하는 등 당내 검찰개혁 여론을 주도해 왔다. 이 같은 행보는 이 전 대표가 이른바 '사법 리스크'를 정면으로 헤쳐 나가는 데 적잖이 힘을 실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민 후보는 "검찰이 이재명 전 대표를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며 "이 대표가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민주당의 가장 크고 소중한 자산이 됐고, 윤석열 검찰 독재를 무너뜨릴 가장 중요하고 힘 있는 무기가 됐다. 반드시 구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선 의원인 강선우 후보는 21대 국회 당시 민주당 대변인을 맡아 메시지를 내는 최일선에서 활약했다. 당시 민주당이 '검수완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구성 등 검찰 권한을 약화시키는 여러 방안을 추진했던 만큼 강 후보 또한 여기에 적잖이 힘을 보탠 바 있다. 그는 "이재명 대표와 손잡고 용산의 괴물을 쓰러트릴 강선우"라고 자처하며 "'김건희 정권'에게 가장 거슬리는 눈엣가시가 되겠다. 당원이 주인이 되는 민주당을 만들어서 정권을 탈환하겠다"고 말했다.
21대 총선 낙선 뒤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냈던 전현희 후보는 윤석열 정부 출범 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과 함께 국무회의에서 배제됐다. 이후 여당의 전면적인 사퇴 요구와 함께 감사원의 전방위 감사를 받고도 자리를 지켰기에 민주당의 '정권 심판론'과 부합하는 인사로도 볼 수 있다. 이날 정견 발표에서도 그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공정한 법의 심판대 위에 세울 수 있는 강력하고 담대한 지도부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후보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자신이 윤석열 정권과 "직접 싸워 봤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분들은 말로 싸우지만 저는 행동으로 싸워서 이긴 것이기에 차별성이 있지 않겠나"라며 "민주당에서는 강남 지역에 당선자가 없는데, 강남의 표를 가져올 수 있고 치과의사와 변호사로서 중도층에 소구력이 있는 외연 확대의 적임자"라고 덧붙였다. 정권 심판론을 내세우는 후보들 가운데서도 경쟁력이 있는 동시에, 지지층 확장 능력도 갖췄다는 홍보 전략인 셈이다.
당 재정비 강조…'집권 준비' 김민석·'지역 문제' 이언주·'당심 결집' 정봉주
다른 일부 후보들은 '이재명' 보다는 당의 재정비나 외연 확장 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당내에서 비주류로 분류돼 왔거나, 탈당했다가 복당하는 등 주류와는 거리가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30대 중반이던 1990년 정계입문, 2002년 대선에서는 정몽준 후보 지지 등 여러 우여곡절 끝에 민주당으로 돌아온 경력이 있는 김민석 후보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권 심판론', '집권 준비'에 방점을 뒀다. "집권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대선 시기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집권 준비를 탄탄하게 하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보여 줘야 선거도 이길 수 있다"며 "집권 준비 깃발 아래 90대부터 20대까지 모든 역량이 함께 뛸 수 있게 각계각층과 소통하며 통합적인 판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변호사이자 기업인 출신이며, 정치판에서도 민주당, 국민의당, 국민의힘 등을 두루 거쳤던 이언주 후보는 어디서든 비주류를 자처해왔다. 국민의힘 소속일 때도 윤석열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했던 이 후보는 현 민주당에서도 '비명계'로 분류된다. 이 같은 성향을 극대화하는 듯 이번 경선에서도 '친명이냐 비명이냐', '정권심판이냐 아니냐'와 같은 단순한 틀에서 벗어나 청년층, 뉴미디어, 미래전략산업 등 다양한 의제를 제시할 방침이다. 그는 경선 직후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지역 소멸과 발전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부산 엑스포 국정조사처럼 지역과 관련된 정책 이슈도 좀 더 발굴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BBK 저격수'로 불렸던 정봉주 후보는 유일하게 원외 인사 중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정계복귀 후 절치부심하던 중 지난 총선에서 공천을 받았다가, '목발 경품' 발언 논란 등으로 취소된 아픔이 있는 만큼 안정적인 당의 정비를 화두로 삼고 있다. 그는 통화에서 자신을 '거리의 최고위원'이라고 자처하면서도 경선 등과 관련된 문제를 주로 언급했다. 정 후보는 "지방선거에서 자칫 잘못하면 당이 쪼개질 정도로 불안해하고 있다. 공정 경선이 안 되면 심각하다"며 "지선을 앞두고 투명하고 공정한 경선을 약속하겠다. 억울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없게 하면 당을 하나로 똘똘 뭉쳐 묶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성 내세운 재선 의원들…'언론개혁' 한준호, '평화가 곧 민생' 김병주
다른 후보들보다 상대적으로 정치 경험이 적은 재선 의원들 중에서는 '윤석열'이나 '이재명' 대신 본인의 전문 분야에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한 경우도 눈에 띄었다. 전당대회가 이른바 '명심 경쟁'이라는 비판을 받는 와중에, 이를 되도록 자제하고 다른 후보들에게 없는 어젠다를 내세우는 방식으로 차별성을 부각시키겠다는 것이다.MBC 아나운서 출신으로 2008년 총파업에도 참여한 바 있는 한준호 후보는 '언론개혁'을 전면에 내세웠다. 21대 국회에선 민주당의 당론이었던 언론중재법 추진 당시 원내대변인을 맡았었다. 그는 정견발표에서 "언론 개혁이라는 싸움에서 이겨야 윤석열 정권과 벌이는 더 큰 싸움에서 이길 수 있고, 그 싸움에서 이겨야 새로운 민주정부를 열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도 언론개혁 TF단장을 맡아 '방송 3+1법'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이를 최대한 강조한 포석으로 보인다.
보수성향이 강한 군 출신 가운데 드물게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육군 대장(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 김병주 후보는 거수경례로 정견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민주당을 택했을 때 육군사관학교 출신 선후배들이 배신자, 민족의 반역자라고 매도했다. 지난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에 반대하고 나섰을 때 육사 총동문회와 40기에서 제명시키겠다고들 했다"면서 "민주당이 좋고, 민주당의 비전이 내 비전과 같다. 한반도 평화를 만들고 종국에는 통일을 만들겠다는 비전, 민주주의와 민생을 살리겠다는 비전이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선 전략을 묻는 질문에 "남북한이 강대강으로 치닫고 전쟁의 위기로 몰리고 있는데, 이를 멈추고 한반도 평화를 만들고자 한다. 북한과 러시아가 동맹(에 준하는 조약)을 맺어서 더 위험하다"고 강조하며 "평화가 결국은 민생이고, 안보 분야를 더 튼튼히 해서 국민들이 생업에 마음껏 종사할 수 있게 하겠다"고 답했다. 다른 후보들과 달리 '안보' 분야에서 자신의 강점을 내세우고, 이를 최고위원 활동에도 그대로 반영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