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7%(170원) 오른 시간당 1만 30원으로 결정되면서 사상 최초로 시간당 1만 원을 넘겼다. 1988년 최저임금 제도 도입 후 37년 만이다.
노동계의 숙원이었던 '최저임금 1만 원' 시대가 열렸지만, 전년 대비 인상률이 역대 두 번째로 낮다는 점에서 노동계는 물가 인상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실질임금 삭감"과 다름없다고 반발했다. 경영계는 '최대한 방어했다'는 분위기다.
노동계 "물가 상승 가파른데 170원 올려…실질임금 삭감"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의 낮은 인상률을 지적하며 "해마다 이어지는 고물가 시대를 가까스로 견뎌내고 있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쪼들리는 고통 속에서 1년을 또 살아가야 한다"며 "이번 최저임금 결정에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이어 "최저임금제도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는 현재의 결정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며 "노사가 공방을 벌이다 마침내는 공익위원이 '정부의 의지'를 실현하는 현 최저임금위의 논의 구조에서는 현실적으로 의미 있는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청년진보당 홍희진 대표는 "최저임금이 거의 최고임금이나 다름없는 청년들이 체감하기에는 '물가는 5%~10% 우습게 오르는데, 우리들의 시급은 오른 게 없구나'라는 절망감마저 느낀다"라고 했다. 이어 "정부는 종부세나 상속세·금융투자소득세 등은 어떻게든 깎아주겠다는 시그널을 보내면서 정말 살기 어려운 저임금 노동자들, 이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정말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공익위원들이 관련 자료 부족을 이유로 올해엔 도급제 노동자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기로 한 점을 두고도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노동계는 이번 심의 때 특수고용직·플랫폼 종사자와 프리랜서 등 도급제 노동자에 가까운 이들의 최저임금 설정 문제도 처음 꺼냈지만, '향후 논의'로 가닥이 잡혔다.
웹툰작가노조 하신아 위원장은 "나 같은 웹툰노동자는 일단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아니다. 우리도 헌법에서 말하는 국민이고, 시민이고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노동하고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똑같은 한 표를 가진 국민으로서, 적어도 최저임금에 대해 합리적인 논의와 합당한 결론이 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오민규 연구실장은 "최저임금법 제24조에 따르면 최저임금 심의에 필요한 자료는 고용노동부가 제공하게 돼 있다"며 "심의를 위한 기본 자료는 정부가 제시해야 하는데, 노동계에 관련 자료를 준비하라는 건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대리운전노조 김주환 위원장은 "(최저임금제 사각지대에서) 가장 취약하고 어려운 노동자들이 그동안 최저임금조차도 적용 받지 못했다"며 "갈수록 플랫폼 노동자들이 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이어 "플랫폼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적극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초 요구안으로 최저임금 동결을 제시했던 경영계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과 관련해 "최저임금이 또다시 고율 인상될 경우 초래될 부작용을 어떻게든 최소화하고자 노력한 사용자 위원들의 고심 끝에 이뤄진 결과였다"고 평가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양근원 경제조사본부 임금HR팀장은 "고물가, 고금리, 내수 부진 장기화로 한계 상황에 내몰린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현실을 고려할 때 내년 최저임금은 동결됐어야 한다"며 "내년 최저임금이 사업주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만 원을 넘어선 만큼 자영업자들을 위한 경영 부담 완화정책이 적극적으로 시행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저임금 결정 시스템 한계…객관적 기준 마련해야"
노동계에선 고물가 시대에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 안정을 위한다는 본래 최저임금 제도의 취지를 잃어버렸다며 최저임금 결정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노총은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이 제시한 '인상률 1.4%~4.4%'라는 심의촉진구간에 대해서도 "이 구간 자체가 이미 사용자 측에 유리하게 나온 안이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전호일 대변인은 "노사가 대치하는 상황에서 공익위원이 회의 진행과 최저임금액 등을 모두 결정하게 된다"며 "공익위원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임명해 결국에 정권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오민규 실장은 "공익위원들이 구간 설정하는 기준이 매년 달라지고 있다"며 "2~3년 전에는 국민경제생산성 상승률을 활용한 산식을 결정 기준으로 삼았는데 그게 어느새 상한선 기준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유일호 고용노동정책팀장도 "노사 협상이라는 힘겨루기 방식이 아니라 객관적 지표를 바탕으로 결정할 수 있는 최저임금 결정 체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2일 새벽 제11차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표결을 통해 2025년 최저임금을 시급 기준 1만 30원으로 결정했다.
노동계가 '최저임금 1만 원' 주장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2013년 이후 11년,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이 처음 시급 1만 원 요구안을 내놓은 2015년 이후 9년 만에 1만 원 문턱을 넘은 셈이다.
다만 올해 최저임금 대비 인상률은 1.7%로,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인상률 9.0%에 못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