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 역주행 참사 이후 '페달 블랙박스'가 급발진 관련 해법으로 주목되고 있다. 다만 이는 사후 규명수단일 뿐, '사고 예방' 수단으로 기능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에 따라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의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나섰다.
1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최근 박상우 장관은 국회 상임위에서 "차에 개인적으로 달려고 한다"면서 페달 블랙박스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사이에 장착돼 운전자의 페달 조작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이 장치는 사고 직전 운전자의 행위를 확인시키는 수단이다.
2017년부터 최근까지 교통안전공단에 접수된 급발진 의심 사고 236건 가운데 급발진을 인정받은 것은 단 한건도 없다. 이처럼 소비자가 급발진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차량 소유자들의 페달 블랙박스 의무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여론을 반영해 국토부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완성차 업계에 7차례 페달 브레이크 장착을 권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에서도 페달 블랙박스 설치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페달 블랙박스로 다 되지는 않아
하지만 페달 블랙박스 의무화에는 아직 논란이 있다. 당장 이해 당사자인 완성차 업계는 설계변경이 간단치 않고, 제품 가격 상승요인으로 작용하는 데다, 사고원인 규명은 사고기록장치(EDR) 분석으로 충분하다고 반대한다.
다른 나라에서 페달 블랙박스 설치가 의무화된 사례도 없어, 수입차 업체에 의무화를 적용하는 경우 통상마찰로 이어질 수 있다. 수입차 업계가 페달 블랙박스 장착 모델을 자발적으로 별도 제작할 만큼 국내 시장이 매력적일지도 알 수 없다.
장치의 본질인 원인규명 측면에서도 페달 블랙박스의 기능은 제한적이다. 이는 사고 직전 운전자의 조작미숙 여부만 가릴 뿐, 운전자의 정비 불량 등 관리소홀 가능성까지 해소시키지는 못한다.
정부는 이를 감안해 의무화 대신 권고를 통해 업계의 이행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박상우 장관은 국회 상임위에서 "제조사에 강제할 것이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업계가 자발적으로 따라오도록 유도해나가는 게 옳고, 좀 더 적극적으로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예방장치 필요성도 고조…최초 장착차량 출시
페달 블랙박스보다 사고예방 장치를 의무화하는 쪽이 훨씬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페달 블랙박스는 결국 사고 뒤 책임을 따지는 사후 수단인 만큼, 사고 자체를 막는 예방 수단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일본에서 활성화돼 있는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가 거론된다. 엔진 회전수 급등과 같은 비정상 조작이 감지되면 차량이 경고음을 내고 제동이나 감속하는 장치다. 2012년 첫 출시 이래 일본 내 신차의 90% 이상이 이 장치를 달았다.
국내에서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이 페달 오조작 방지 및 평가 기술 개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 착수한 이 연구는 다음달 말까지 완료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도 현대자동차가 캐스퍼 일렉트릭 차종에 최초로 오조작 방지장치를 탑재했다.
정부는 오조작 방지장치의 설치도 업계에 권고해나간다는 방침이다. 특히 내년부터는 오조작 방지장치 장착 차량에 '안전도 평가' 가산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일본도 안전도 평가 인센티브 제도로 오조작 방지장치 확산을 유도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페달 오조작 방지 기술은 우리 업계도 갖고 있는 상태"라며 "사후 규명수단인 블랙박스나 사전 예방수단인 오조작 방지장치나 업계에 강제할 수는 없고, 안전도 평가를 통해 장착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