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어느 날 네이버웹툰 김준구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생활의 참견' 연재해줄 수 있느냐고. 사실 기자나 소설가를 꿈꿨던 저로서는 고민이 됐죠. 문화잡지 '페이퍼'에서 음악 전문기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출판계가 어려워지고 있던 상황이라 선택의 기로에 섰죠. 기자는 다시 돌아갈 곳이 있지만 만화가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결국엔 기자로 돌아가지 못하고 만화를 20여 년 동안 그리고 있네요."
대중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김양수 작가는 대학시절 PC통신 시절 커뮤니티에 음악 칼럼이나 신보에 대한 평을 쓰면서 인기를 모았다. 그의 글을 눈여겨 보던 월간 문화잡지 '페이퍼' 측에서 음악이나 신보 관련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얼마 지나 해당 잡지사에 공석이 발생하면서 아예 음악 전문기자로 입사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만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만화가를 꿈꾼 적은 없었다. 당시 개그툰·생활툰 신문 만화가 인기를 끌면서 편집회의에 만화를 싣자는 제안을 했고, 자천타천 만화를 직접 그리게 된 것이 '생활의 참견'(원제 '김양수의 카툰판타지')이다. 박광수 작가의 '광수생각' 첫 연재처도 이 잡지였다.
2000년대 들어 출판만화가 저물고 일부는 학습만화 시장으로, 신문 만화와 웹을 중심으로는 개그 생활툰이 큰 인기를 끌면서 웹툰 시대의 서막을 열어 제끼고 있었다. 네이버와 다음(현 카카오), 야후!코리아 등 포털 플랫폼은 물론 돈이 되는 웹사이트들에서도 트래픽 유입입을 위해 경쟁적으로 만화 콘텐츠를 영입하고 있었다. 2005년 '생활의 참견' 에피소드를 정리하는 과정으로 단행본 출간 후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의 제안을 받은 김 작가는 음악전문 기자에서 만화가의 길을 선택한다. 2008년 2월 네이버웹툰에 이름을 올린 그는 생활툰 만화 전성시대를 맞는다.
생활툰 '생활의 참견'은 김양수 작가의 대표작이다. 김 작가는 '생활의 참견'에 대해 "나의 삶 자체가 '생활의 참견'이었다"면서도 앞으로 생활툰이 웹툰 생태계에서 다시 큰 인기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 같다고 말한다.
"짧은 에피소드 안에서 독자들에게 웃음을 줘야 하고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장르가 생활툰이에요. 애독자분들 중에도 '언제 다시 생활툰을 볼 수 있느냐'고 종종 물어오시는데, 지금의 웹툰 트렌드에서 생활툰을 돈 주고 연재하겠다고 하는 플랫폼이 드문게 현실이에요.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생활의 참견' 시즌2를 해볼 생각은 있어요. 그동안 '시우'와 '시영'이가 어른으로 성장했고 에피소드들이 쌓여서 계속해서 다음세대 이야기를 풀어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죠."
최근 네이버웹툰을 필두로 장르 다양성을 위해 생활툰이 다시 등장하고 있지만 '미리보기' 등 수익화 시스템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생활툰이 극화 웹툰과 인기 경쟁을 다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성 작가라고 해도 메이저 플랫폼 진입이 쉽지만은 않다. 작품 제안을 하려면 3회분 이상의 완성본을 제출해야 하는데, 수 개월 동안 준비해도 연재 확정을 받지 못하면 신인과 마찬가지로 다시 새 작품을 준비하거나 중소 플랫폼에 원고를 내밀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신인 작가와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는 웹툰 공모전의 규모가 줄고 1·2등이 아니면 연재 기회를 얻기도 쉽지 않다. 노블코믹스가 각광을 받으면서 그림 실력만으로는 등용문을 통과하기도 어렵다. 그렇다 보니 웹툰 제작스튜디오 전속 작가나 직원으로 '취직'을 하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
김 작가는 "웹툰이 짧은 기간 크게 사랑 받고 성장하면서 공급 과잉 현상이 빚어진 측면이 있다"며 "산업화가 견고해질수록 다양성을 가진 작품이 발을 디디기 더 어려워지고 있는게 현실"이라고 우려했다.
인기 위주의 장르 편중화와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높은 작품 위주로 공급이 집중되고 양산형 웹툰이 늘면서 오히려 비슷한 작품들에 식상함을 느낀 구독자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 김 작가는 다양성을 가진 작품을 산업계와 정부가 지원하고 육성해야 건강한 만화 생태계가 지속해 독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봤다.
김 작가 스스로도 생활툰의 만화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스토리텔러'에 무게를 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극 판타지 '조선홍보대행사 조대박' 등 다양한 극화에 도전하는가 하면 이솝우화 스토리에 착안한 기원전 500년의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아이소포스'와 현재 네이버웹툰에 연재 중인 무협웹툰 '팔문의 옥' 스토리 작가로 참여하고 있다.
장르를 뛰어넘으며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는 이야기꾼. 오는 7월말 판타지 성장물 블라이스 오리지널 웹툰 신작 '우리집 괴물' 론칭을 앞두고 있는 김양수 작가를 노컷뉴스 [만화인]이 만났다.
"웹툰 '미리보기' 안착에 '생활툰' 외면…다양성 지켜야"
▶사회생활을 문화잡지에서 음악담당 기자로 시작했다. 만화보다 글을 좋아했나?
= 고2때부터 PC통신에서 지금 웹소설이라 불리는 액션 장르의 인터넷 소설을 썼다. 당시에 이성수 작가의 SF 소설 '아틀란티스 광시곡'(1991)이 큰 화제를 모으면서 이후 인터넷 소설이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이었다. 대학 진학 후에는 음악에 빠져서 PC통신 하이텔 음악 게시판에 가요나 언더그라운드 앨범 리뷰를 썼다. 글을 본 월간 문화잡지 '페이퍼'에서 일본 퓨전 재즈 밴드 '카시오페아' 신보 리뷰를 써달라는 요청이 왔다. 괜찮았는지 매달 신보 리뷰를 써달라고 하더라. 4학년 졸업 즈음에 마침 잡지사에 공석이 생겨서 아예 음악 담당 기자로 입사를 했다. 그게 1997년~1998년 일이다. 만화는 좋아했지만 그땐 만화가가 어떻게 되는 건지도 몰랐다. 당시엔 소설가나 기자로 일하는 것이 나에게 맞다고 생각했었다.
▶김양수 만화가를 있게 한 대표 인기작 '생활의 참견'은 어떻게 탄생한 것인가?
= 잡지사에서 음악 담당 기자로 있으면서 우리도 만화를 연재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당시 신문만화를 중심으로 개그툰·생활툰이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대중문화잡지니까 재미 측면에서도 좋겠다고 낸 의견이었는데, 나보고 해보라고 하더라. 2000년 처음 '김양수의 카툰판타지'라는 타이틀로 월간 연재를 시작했다. 박광수 작가의 '광수생각' 최초 연재처도 우리 잡지였다.
'생활의 참견'을 5년 정도 연재를 하고 나서 한 번 정리를 해야겠다 싶어서 2005년 '김양수의 카툰판타지: 생활의 참견'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을 출간하고 몇 년 더 잡지에 연재를 하고 있었는데, 2008년 김준구 네이버웹툰 대표가 연락해와 연재를 제의했다. 기자나 소설 작가로 일하는 것만 생각했는데, 직업 만화가가 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만화가로 실패하면 다시 기자로 일하면 되지만 만화가는 쉽게 해볼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연재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렇게 시작한 게 2017년까지 9년을 연재하며 지금까지 기자로 돌아가지 못하고 만화가로 살고 있다.
▶직업 만화가로 전향하면서 '가우스 전자' 곽백수 작가의 도움이 컸다고?
= 기자 일도 하면서 월 1회 여유 있게 에피소드를 만들었지만 플랫폼에 주 2회 연재는 쉽지 않았다. 이미 만화가로 성공한 백수 형을 찾아가 어려움도 토로하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형이 매주 같이 만나 회의도 하고 자기만 따라다니라고 하더라. 아이디어도 내주고 연출도 잡아주고 만화가로 자리 잡는데 곽백수 작가의 도움이 컸다.
▶김 작가의 주요 작품들을 소개해달라.
= '생활의 참견'은 네이버웹툰에서 2017년 1001화 완결을 했고, 2019년부터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한 광고홍보의 귀재 조대박이 조선을 활보하며 큰 성공을 이룬다는 내용의 '조선홍보대행사 조대박'을 네이버웹툰에 연재했다. 2023년 9월부터 무협웹툰 '팔문의 옥' 스토리 작가로 참여하고 있다. 앞서 2013년 이솝 우화의 저자인 아이소포스 이야기에서 착안한 판타지 웹툰 '아이소포스'의 스토리도 담당했었다. 네이버웹툰에서 보실 수 있다.
생활툰은 왓챠에서 연재한 대중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김양수의 음악의 참견', 음식에 대한 사연과 추억의 에피소드를 다룬 '어떤 날의 한끼'가 있다. 생활의 참견'에도 가족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딸 '시우'를 주인공으로 한 4컷 가족만화 단행본 '시우는 행복해'가 있다. 개인적으로 술을 좋아해서 진(Gin), 위스키, 칵테일 등을 다룬 '한잔의 맛'도 있다. 예전에 압구정의 유명한 H 레스토랑 라운지 바에 갔다가 실력이 뛰어난 바텐더를 만났는데 위스키와 칵테일, 하이볼의 신세계를 경험하고 그린 만화다. 사실 나만 마시기에는 너무 아까워 남들에게도 꼭 추천해주고 싶어서 그린 작품이다.
▶술에도 조예가 깊다고 들었다. 올여름 추천해주고 싶은 술이나 칵테일이 있다면?
= 집안 내력이 있긴한데, 술 애호가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웃음) 요즘 자주 즐기는 술인데, '린치버그 레모네이드'를 추천한다. 잭다니엘과 사이다, 트리플 섹을 배합한 칵테일로 달콤한 캔디의 맛이 느껴진다. 보드카 베이스에 진저에일, 라임이 첨가된 '모스코뮬'도 추천하고 싶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에 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술이다. 하이볼은 요즘 쉽게 접할 수 있는데, 단순하면서도 아주 깊이가 있는 술이다. 정말 좋은 하이볼은 그 배합율이나 주종, 온도, 칠링에 따라 맛과 깊이가 천지 차이다. 바텐더가 추천해준 건데 윈저 위스키 하이볼이다.
▶'생활의 참견'과 같은 생활툰을 아직 그리워 하는 독자들이 많다. 추가 연재를 기대해도 되나?
= 네이버웹툰에서 900화 전후 연재할 때 쯤 사실 에피소드도 거의 바닥나고 독자들의 사연 활용도 한계에 이르러 그땐 의식의 흐름대로 만화를 그렸던 것 같다. '시우'나 '시영'도 사춘기를 지나고 있어서 개인 사생활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간 쌓인 에피소드로 '생활의 참견'이나 조금 다른 만화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플랫폼 입장에서 웹툰 수익 극대화에 생활툰이 그리 적합하지 않다. 누가 좀 등 떠밀면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환경이 쉽지 않은 것 같다. '노컷뉴스' 지면에서 연재하겠다고 하면 새 시리즈 낼 의사가 있다. (웃음)
▶최근에는 작화보다 스토리텔링에 무게를 두는 것 같다.
= 생활툰의 시대는 사실상 저물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주요 플랫폼들이 '미리보기'를 도입하면서 다음 화가 기다려지는 내용 전개로 독자들의 결제를 유도하는 시스템이 안착 되면서 생활툰처럼 매 회 작가의 일상 에피소드만으로는 영상화 등 2차 저작물이나 굿즈 등의 상품으로 확장하는데 한계가 있다. 생활툰 작가 입장에서는 작화 실력을 늘려 나름 개성이 있는 그림체로 극화에 도전하거나 스토리텔러가 되어 세련된 그림 작가와 함께 작품을 만드는 것이 타협점이다.
원래 글을 썼던 입장이라 좋은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다. 이미 생활툰 작가로 많이 알려진 만큼 좋은 스토리텔러가 되고 성공하는 것이 현재의 내 목표다. 물론 원하는 곳이 있다면 생활툰은 언제든 그릴 마음이 있다.
▶요즘 생활툰·일상툰의 주요 무대가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로 바뀌는 추세다.
= 생활툰 작가의 경우 연재 수익보다 기업·기관 등과의 컬래버레이션 수익을 기대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처럼 판타지 장르 인기 시장에서 생활툰 연재 요청도 많지 않고, 있어도 중단편 정도 요청 후 반응에 따라 추가 연재를 하는 식이다 보니 생활툰 작가들이 주요 플랫폼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추세다. 나의 경우 SNS에 작품을 잘 올리지 않지만, 근래 일상툰·생활툰 작가들의 소통 무대가 SNS로 옮겨진 것 같다. 독자들의 공감이 많아지면 협찬이나 협업 제의가 생기지 않겠나. 캐릭터 이모티콘 제작에 뛰어드는 경우도 많은 걸로 안다. 한 지인 작가는 이모티콘으로 성공해서 주업을 바꿨다. 그게 아니라면 극화 스토리 작가로 전향하거나 개성 있는 생활툰체 작화로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실력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성장한 부분도 있고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개인적으로 판타지나 예쁜 여성 그림 등 진지한 극화를 그리는 것이 쉽지는 않다. 기원전 500년을 배경으로 한 '아이소포스'나 개그 사극 판타지 '조선홍보대행사 조대박'은 역사적 지식에다 시대적 상상력이 필요한 스토리여서 상당히 고생했다. 다른 작가의 도움도 컸지만 그런 과정을 시도하면서 나 자신도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AI나 디지털 작업에도 나의 톤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스케치업을 사용해 배경과 구도를 만들지만 그림체 특성상 그대로 사용할 수 없어 참고만 하고 수작업으로 모두 그린다. 너무 의존하면 나만의 그림 톤이 사라지기 때문에 적정한 균형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최근 인기 장르 편향으로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이 한국 웹툰의 시급한 해결 과제라는 지적이 있다.
= 잘 팔리는 성공작이나 인기작품을 너도 나도 따라가는 상황이 이어되면서 장르 편중화가 심화됐고, 독자들도 비슷한 작품들만 보게 되니 흥미가 반감돼 떨어져 나간다. 플랫폼들도 그것을 방조한 책임이 있다. 결국 좁은 입구에 다같이 몰려가면 다 같이 죽게 된다. 건강한 만화시장 환경은 다양성을 키우는 일이다. 이를 위해 개별 작가들의 원고료를 더 높여야 휩쓸리지 않고 독창적인 만화를 그려낼 수 있다. 직업적 안정을 추구하는 최근 만화가 지망생들의 움직임도 눈여겨봐야 한다. 유명세가 있는 네이버, 카카오 등 메이저 플랫폼 연재에만 줄을 서고, 휴재나 완결 후 차기작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이어질 경제적 고민이 더해지면서 개인 창작의 시간이나 고통의 부담을 덜기 위해 웹툰 제작사 '직원'으로 들어가려는 추세도 이 같은 현상을 가속화 한다.
웹툰 작가에 대한 처우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플랫폼 시장 환경을 보면 아직 멀었다. 플랫폼들은 '미리보기'를 앞세워 수익화를 강화하고 있다. '미리보기'도 웬만한 순위권에 들지 않으면 작가 수익에 별 효용이 없다. 회당 기본 연재료를 깔고 가지만 지금처럼 고퀄리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여러 (어시스트)작가와 협업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 특히 손이 많이 가는 극화는 비용을 나누면 얼마 남지 않는다. 경쟁이 치열한 인기 순위에 들어 부수입을 기대해야 한다. 작품의 고퀄리티를 요구하는 환경이 만들어진 만큼 원고료의 현실화도 필요하지만 현실은 따라가지 못한다.
▶고속도로에 정체 현상이 생겼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건강한 만화 구조, 다양성을 키우기 위해 어떤 방법이 있을까?
= 지금도 여러 플랫폼이 있고 해외 플랫폼도 만들고 있지만 양적 성장뿐 아니라 특정 장르에 편중되지 않도록 다양한 형식과 장르의 만화가 진출할 수 있는 효과적인 채널을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질적 성장이다. 개별 작품의 질은 좋아지고 있지만 시장 환경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 해외 시장을 나갈 수 있는 채널도 메이저 플랫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격의 플랫폼들이 나와주고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나 시장이 적극 움직여줄 필요가 있다. 양산형으로 만들어지는 웹툰의 수는 많은데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것은 둘째 치고 노출되는 작품 자체가 제한적이다. 그렇다 보니 잘 팔리는 작품에만 더 잘 팔리게 하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계속 가다 간 같이 공멸할 수 있다.
창작자의 경우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능력으로 돈을 벌고 싶어서 만화를 그리는 것도 있지만, 정말 만화를 그리고 싶은데 연재처가 없어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못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저 조차도 '김양수의 음악의 참견'은 왓챠에서 의기투합해 연재가 됐지만 처음엔 생활툰에 장르만화다 보니 연재하겠다는 데가 없었다. 트렌디하고 인기 많은 작품도 좋고 수익화도 좋지만 다양한 만화를 독자분들이 선택하고 사랑해주신다면 한국 만화·웹툰이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지고 지속하는데 도움이 된다. 플랫폼도 인디만화, 장르만화 등 소외된 장르에게 채널을 열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도 다양성 만화 제작에 대한 지원책이 있었으면 한다.
▶7월말 블라이스에 론칭하는 신작 웹툰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 오는 7월말 KT 스토리위즈의 웹소설·웹툰 플랫폼 블라이스에서 판타지 성장물 '우리집 괴물'을 연재한다. 블라이스 오리지널 웹툰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중단편 극화다. 부모님을 잃고 작은아버지 집에서 눈칫밥을 먹고 얹혀사는 주인공인 고등학생 '강감찬'은 하루빨리 성인되서 독립을 하고싶어 한다. 어느날 우연히 집 지하실에서 뭐든지 고쳐내는 '괴물'을 만난 뒤로 기가 죽어 자신감 없고 짠내 풀풀 나던 강감찬 인생에 변화가 찾아오는 이야기다. 박정선 작가와 같이 'IQ200'이라는 필명으로 스토리를 쓰고 내가 그림을 그린다. 기존 제 작품에서 보지 못한 색다른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꼭 해보고 싶은 장르나 작품이 있나?
= 평소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에피소드를 메모하는데, 그동안 쌓아둔 아이템들은 많이 있다. 탄력이 붙으면 바로 작품화 할 수 있을 정도 되는 것 같다. 아직 기획 단계지만 중세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액션 만화를 구상하고 있다. 어쩌면 게임의 배경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반지의 제왕'이나 '와우'(WOW·월드오브워크래프트)같은 느낌을 상상하면 쉬울 것 같다. 국내외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익숙한 세계관이고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 소재다. 스토리가 좀 더 탄탄해지면 좋은 그림 작가와 함께 대작을 만들어보고 싶다.
▶후배 만화·웹툰 작가 지망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당부가 있다면?
= 요즘 스토리 작가는 늘고 그림작가 구인난이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플랫폼이나 웹툰 제작 스튜디오 전속 작가로 계약해 소속감을 갖고 싶어한다고 하는데, 결국엔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에 편입되고 싶어한다는 거다. 어릴 때부터 꿈꿨던 창작 만화가의 꿈은 사라지고 작가가 아닌 회사원, 직장인 작가로 변질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산업화의 부정적 측면이 부각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이러한 현상에는 만화가 지망생들이 꿈꾸는 만화가, 창작자의 삶을 안정적으로 만들지 못한 우리 기성 작가들에게도 잘못이 있을 것이다. 저 역시 운이 좋아 약간의 인지도가 있는 만화가가 됐지, 지금의 환경이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흐름이 아닌, 그리고 싶었던 만화의 꿈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 나도 더 배우고 새로운 꿈을 만들어가며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