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팬들은 세계 축구의 흐름을 잘 아는 외국인 지도자 선임을 요구했고, 축구협회 역시 이에 발맞춰 움직였다. 실제로 제시 마쉬, 헤수스 카사스 등 검증된 지도자가 후보로 거론돼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협상은 모두 결렬됐고, 결국 돌고 돌아 국내 지도자인 홍 감독을 차기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지난 2월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 경질 후 5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이 기간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해 무능만 입증할 뿐이었다.
홍 감독 선임은 큰 충격을 안겼다. 그동안 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이 없다고 선을 그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을 후보군에 올린 축구협회를 향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던 그가 지휘봉을 잡는 건 모두가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였다.
이에 홍 감독을 향한 팬들의 비판이 거세다. 돌연 울산을 버리고 대표팀으로 향하는 홍 감독에게 '통수', '배신자', '런명보', '피노키홍' 등 격한 반응을 보인다.
홍 감독은 지난달 30일 포항 스틸러스와 경기 전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나보다 더 경험 많고, 경력과 성과가 뛰어난 분들을 데리고 오면 자연스럽게 내 이름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내 입장은 항상 같으니 팬들께서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수원FC전에서는 "(감독 선임 작업을 진행하는) 이임생 기술총괄이사를 만나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는 ▲빌드업 등 전술적 측면 ▲원 팀을 만드는 리더십 ▲연령별 대표팀과 연속성 ▲감독으로서 성과 ▲현재 촉박한 대표팀 일정 ▲대표팀 지도 경험 ▲외국 지도자의 철학을 입힐 시간적 여유의 부족 ▲외국 지도자의 국내 체류 문제 등 8가지 이유로 홍 감독의 선임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이는 홍 감독을 선임하기 위해 끼워맞춘 이유가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축구 팬들에게는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지 못한 축구협회의 비겁한 변명으로 보일 뿐이었다.
여기에 이 이사가 그동안 감독 선임 작업을 함께 한 전력강화위원과 논의 없이 단독 결정을 내려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이사는 지난달 28일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돌연 사퇴한 뒤 권한을 이어받았다.
이영표 축구 해설위원은 JTBC와 인터뷰에서 "면접 후에 기존 전력강화위원들과 토의가 있어야 했다. 외부로 유출될 것이 두려웠다고 했는데, 이는 5개월 동안 감독 선임을 위해 노력했던 위원들을 믿지 못했다는 뜻"이라면서 "협회가 행정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꼬집었다.
"우선 팬들을 실망하게 했다는 게 이번 감독 선임의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한 이 위원은 "지금까지 협회가 여러 행정적 실수를 했는데, 이전에는 그럼에도 믿어보자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실수가 계속 반복되면 그건 실력이다. 이제는 전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에 축구협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박주호는 전력강화위 활동과 감독 선임 과정을 자의적인 시각으로 왜곡했고, 이것이 언론과 대중에게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고 반박했다. 축구계에 따르면 축구협회는 박주호가 '비밀유지서약'을 어겼다며 법적 대응까지 논의하고 있다.
전 국가대표 이천수는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선배들이 못났다. 축구인들이 좀 멋있게 늙어야 하는데, 얼마나 답답했으면 (박)주호 같은 후배가 나섰겠나. 난 진짜 주호한테 미안하다"면서 "선배가 해야 할 일을 후배가 하고 있으니, 얼마나 선배들이 못난 거냐"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후배가 내부 고발까지 한 건데, 주호도 엄청 힘들어질 거다. 제2의 이천수가 될 것"이라며 "어떤 일이 있으면 또 목소리를 내달라고 할 거고, 축구계에 정착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2의 이천수가 되는 게 좋겠나, 나랑 상의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했다.
홍 감독도 이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영상을 봤고 내용도 안다. 박주호 위원이 본인의 커넥션을 통해 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어려움도 있었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축구계에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옹호했다.
이어 "각자의 의견이 존중받는 게 우리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면서 "박주호 위원의 말이 불편하게 들리는 이가 있지만, 우리가 포용해 더 나은 축구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홍 감독은 울산을 떠나 대표팀으로 향한다. 그는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라는 강한 승리욕이 생겼다"면서 "새 팀을 정말로 새롭게 만들어서, 정말 강한 팀으로 만들어서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선임 과정에서 여러 논란이 있었던 만큼 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축구협회가 만든 '홍명보호' 대표팀은 환영받지 못하며 출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