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파도처럼 물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왔어요. 난리가 난 거지."
"물이 밀물처럼, 막 쓰나미가 오는 것처럼 확 밀려 나갔어요."
10일 새벽 대전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침수된 서구 용촌동 정뱅이마을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주민들은 물에 잠긴 주택과 차량을 쳐다보며 "어떡해…어떡해"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한 남성은 "무릎까지 물이 차서 차를 빼려고 나갔는데 1분도 안 돼서 사람 키 높이만큼 물이 들어왔다"며 "저 전봇대 옆에 있는 게 제 차인데 다 잠기고 집도 다 잠겨서 구조대 보트를 타고 겨우 나왔다"고 말했다.
이 남성이 가리킨 곳을 살펴보니 이미 차량 여러 대가 물에 잠겨있었고, 주택과 비닐하우스에도 물이 가득 들어찬 모습이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 마을의 제방이 무너진 건 이날 새벽 4시쯤이었다.
이 마을은 갑천 옆에 위치한 곳으로, 주민들이 벼와 오이, 토마토 등 특수 작물을 농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새벽 제방이 무너지며 갑천의 물이 범람했고, 마을이 물에 잠겨버린 것이다.
주민 김환수(66)씨는 "4시쯤 제방이 무너지면서 (갑천이) 터져서 이렇게 다 쓸어버린 것이다. 순식간에"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 씨는 "(갑천이) 범람할 위험이 있다고 통장이 새벽에 방송을 하니까 사람들이 좀 깼지만, 다시 갈 새도 없이 물이 확 밀어닥쳤다"며 "그래서 2층 집 옥상, 지붕, 산으로 대피했다"고 했다. 오이 농사를 짓고 있는 김씨는 "비닐하우스가 다 넘어졌다"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날 용촌동에서는 27가구 36명이 고립돼 소방본부에서 보트를 이용해 구조했다.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를 키우는 박미원(61)씨는 소가 살아있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박씨는 "비가 많이 쏟아지면서 들이닥치니까 내 몸만 피했는데 나가보니 소가 안 보였다"며 "죽은 줄만 알았는데 다 살아있더라. 기적이다. 송아지 털을 드라이기로 말려주고 있다"고 했다.
하우스 6동에서 오이 농사를 한다는 71세 A씨는 체념한듯 하우스를 가리키며 "들어가보세요"라고 말했다.
취재진이 오이 하우스로 들어가보니 내부 바닥은 폭우가 할퀴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가운데 고랑에는 여전히 물이 고여있었다. 물이 흥건한 바닥에 한 발짝을 내디딜 때마다 질퍽질퍽한 진흙이 튀었다.
A씨는 "지금도 고랑에 물이 안 빠졌다. 하우스 3동이 피해를 입었는데, 오이는 물이 차면 헛것"이라며 "좀 있으면 따야 하는데 이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런 가운데 고령의 주민들이 집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발을 동동거리자 일부 주민이 합심해 대피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마을에 20여 년째 살고 있다는 목원대 권선필 공공행정학과 교수는 "집에 있던 놀이용 보트를 가지고 나갔다"며 "(어르신이) 지붕에 계시고, 그 옆 집은 목까지 물이 차서 소리를 지른다고 해서 보트를 끌고 수영해서 지붕 위에 계신 분을 태워서 내려드리고, 다른 집 가서 또 구조했다"고 말했다.
보트는 1인용이어서, 권 교수는 구명보트를 입고 수영하며 보트를 밀고, 또 다른 주민이 앞에서 보트를 끌어가며 합심해 주민 3명과 강아지 한 마리를 구조했다. 소방당국의 구조와 함께 주민들이 합심하면서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던 것으로 보인다.
구조된 주민들은 흑석동 기성종합복지관으로 대피했다. 이날 오전 11시 30분까지 복지관에는 24세대 44명이 대피한 상태였다. 서구청은 종합복지관에 이재민 대피소를 마련한 뒤, 구호 물품 제공 등 편의를 제공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