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 急사라진다면?"…지방초교 '인구교육' 현장 가보니

작년부터 관내 초교 저학년 대상 '찾아가는 인구교육' 나선 전남 무안
지난달 25일 신도시內 무안행복초서 진행…'숏폼' 이상의 몰입도 보여
"아이 키우기, 어렵지만…멋진 세상 보여주고 꿈꾸게 하는 특별한 선물"
"효과적 교육 위한 민관협력·거버넌스 필수" "신설부처, 지원체계 마련해 달라"

지난달 25일 오전, 전남 무안행복초등학교 대강당에서 무안군청이 관내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찾아가는 인구교육' 관련 인형극이 진행되고 있다. 이은지 기자

"나는 소원요정이야. 네가 갖고 있던 '소원지팡이'의 원래 이름인데, 네가 첫 번째·두 번째 소원을 벌써 써버려서…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잘 생각해서 소원을 빌었으면 좋겠네."
 
"나는 멋진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또 부자도 되고 싶은데…이제 남은 소원이 한 개밖에 없네."(시무룩)
 

"그럼 과학자가 되거나, 부자가 되는 것 중 하나만 결정하면 되겠네."
 
"하지만 여기 있는 친구들은 (제가) 마지막 소원을 동생과 할아버지를 돌아오도록 하는 데 써야 한다는데요?"
 

핑크빛 의상으로 단장하고 은빛 왕관을 쓴 '소원요정'은 주인공 '기백이'의 결정을 돕기 위한 필살기를 하나 꺼냈다. 조부모 대부터 엄마·아빠, 또 아직 어린 기백이와 동생 '소라'가 장차 꾸릴 가정을 통해 태어날 가상의 다음세대가 반영된 가계도(家系圖)였다. 기백이 또래의 청중은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숨죽인 채 무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난달 25일 오전 전남 무안군 일로읍 소재 무안행복초등학교 대강당에서 인형극으로 진행된 '찾아가는 인구교육' 현장의 풍경이다. 이날 저학년 학생들은 두 타임에 걸쳐 '쉿, 동생이 사라졌어요'라는 제목으로 꾸려진 공연을 약 40분에 걸쳐 관람했다.
 
합계출산율 0.7명대도 위태로운 저출생이 주제란 점에서, '꼬마 관객'에겐 다소 어렵지 않을까 했던 걱정은 이내 무색해졌다. 장내에 모인 1·2학년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극에 몰입했다. 유튜브 '숏폼' 소비가 일상화된 시대에 과거 지상파 프로그램 '뽀뽀뽀'를 연상시키는 아날로그한 인형극이 얼마나 아이들의 주목을 끌 수 있을까 싶었던 기자의 우려는 기우였다.
 
행사 내내 뒷좌석을 지킨 무안군청 박진숙 인구정책팀장은 '인구교육'이란 말이 다소 거창하게 느껴진다는 지적에,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가족 사랑' 메시지가 주를 이룬다고 귀띔했다.
 
박 팀장은 "동생과 오빠가 놀다가, 동생이 자신의 물건을 흐트러뜨리자 (충동적으로) '야, 너 싫어', '네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하니 요술방망이 요정이 나타나서 오빠가 원했던 대로 동생이 (갑자기) 사라지는 게 시작"이라고 말했다. 또 "동생이 막상 사라지자, 빈자리를 느낀 오빠가 가슴 아파하며 다시 '동생을 아껴줘야겠다'고 변화되는 내용"이라며 "아이들에게 어떤 주제로 (인구교육을) 할 것인지는 늘 고민거리"라고 부연했다.
 
실제로 극중에서 '내 방'에 함부로 들어온다고 동생에게 면박을 주던 기백은 동생 소라를 다시 데려오는 데 마지막 소원을 썼다. 더불어 놀이터에서 만나 잔소리를 쏟아내던 동네 할아버지도 함께 돌아오게 해달라고 빈다.
 
앞서 기백은 '옛날 사람'인 할아버지의 얘기를 고리타분하게 여겨 두 번째 소원을 할아버지의 임종을 기원하는 데 써버렸다. "내가 청년이었을 땐 집집마다 형제자매가 많았다. 그 아이들이 성장해서 다 제몫을 해냈고, '코리아(Korea)' 하면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멋진 나라가 됐다"며 기백을 향해 "어떻게 동생을 귀찮아할 수 있냐"던 할아버지의 타박은 "요새는 어떻게 된 건지 결혼도 안 하려 하고, 결혼해서도 아이는 잘 안 낳으려 한다"는 한탄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25일 무안군청이 진행한 '가족사랑 인형극'을 관람한 뒤 별마당 인형극단의 '장고 아저씨' 김영식씨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무안행복초 어린이들. 이은지 기자

다만 인형극은 단순히 '아이를 (더) 낳으라'는 뻔한 훈계로 귀결되진 않았다. 소원요정은 '한 사람'의 중요성, '세상 무엇보다도 귀한 생명'의 소중함을 힘주어 말했다. 요정은 기백이 원했던 것처럼 좋은 곳에 투자해 부자가 되는 것,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과학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기백이 만날 수 있었던 미래의 조카들, 또 다른 수많은 '어린이'들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차분히 얘기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무대를 바라보는 301명의 얼굴들을 마주봤다.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 엄마·아빠 중 한 명이 '아기는 낳지 말아야지'라고 했다면 친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을까요? 없어요. 그럼 사랑하는 부모님도 못 만나고, 이렇게 자라서 어린이가 안 되고, 친구들이나 선생님을 통해 배움을 이루지 못하고 꿈도 꿀 수 없는 거예요. 아이가 태어난단 건 그 아이에게 이 멋진 세상을 보여주고 꿈을 주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에요."
 

행복초 아이들은 "아이를 키우는 게 쉬워요, 어려워요?"라는 질문에 곧바로 "어려워요"라고 외쳤다. 소원요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말을 가르치고, 데리고 놀러도 가고, 멋진 생각들을 심어준' 부모들의 노력을 자분자분 꼽았다.
 
"친구들은 커서 가족을 가질 수 있겠어요?"  "네!"
"정말로요?"  "네~!"
 
공연 후 강당을 나선 1학년 박시윤군은 '가족'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기자에게 "같이 먹고, 잠자면 재밌어요. 없으면 울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최근 대통령이 나서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저출생은 지자체들에게 생존이 달린 문제다. 이는 청년인구가 전체 33%에 이를 만큼 도내에선 '젊은' 지역으로서, 소멸위험지역을 면한 무안군도 피해갈 수 없는 고민이다. 신도시에 속한 무안행복초 외엔 전교생이 50명에 못 미치는 학교들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자체 사업으로 어린이 대상 인구교육을 시작한 무안군청은 올해도 이를 사전 신청한 관내 초교 9곳, 저학년 1400명에게 2주간 순회 교육을 실시했다.
 
전남 무안군 내 젊은 인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남악신도시의 무안행복초등학교 전경. 무안행복초는 지난 2020년 개교했다. 이은지 기자

박 팀장은 "대학생이나 관내 군부대 등 곧 결혼할 나이인 성인 대상으로도 교육을 추진하려 했지만 수요가 없어 하지 못했다. 또 아직 '생각이 말랑말랑한' 어린이들의 인식 개선이 더 쉽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건복지부가 일선 교사 대상으로 인구교육 소재 등을 공모하듯 효과적 교육을 위한 민·관 협력 및 거버넌스가 꼭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부부가 '2인 1조'로 움직이며 이날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별마당 인형극단의 '장고 아저씨' 김영식씨는 "정부에서 인구전략기획부를 만든다고 하는데, 결혼을 조건으로 집과 돈을 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고 본다"며 "(후속세대 대상) 인구교육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전국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지원체계를 정부가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소원요정으로 열연한 부인 강양희씨도 "히어로물 영화에도 '가족'이 안 들어간 작품이 없듯이 가족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최후의 보루"라며 "아이들이 자신의 가족을 생각하며 (미래의) '내 가족도 행복하게 잘 만들어봐야지'란 바람으로 옮겨지길 바라며 각본을 썼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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