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이 길어지면서 의료공백이 커지는 가운데 환자와 보호자들이 거리에 나와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등 92개 환자단체는 4일 오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방지법 제정 환자촉구대회'를 열었다.
분홍색 옷을 입은 이들 단체 회원들은 '의료정상화 재발방지법'이라는 문구가 쓰인 팻말을 들고 의료계와 정부를 향해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집단휴진 철회하고 의료공백 해소하라", "환자 없이 의사 없다. 집단휴진 중단하라", "반복되는 의료공백 재발방지 입법하라" 등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들은 "정부와 전공의·의대 교수의 갈등이 136일째를 맞았다"며 "환자와 환자 가족, 그리고 국민은 무책임한 정부와 무자비한 전공의·의대 교수의 힘겨루기를 지켜보며 분노와 불안, 무기력에 빠졌다"고 입을 뗐다.
이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 수많은 아픈 사람들, 지금도 병실에, 수술실에, 병원 복도에, 진료실에 머물고 있을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섰다"며 "이 날씨에 우리를 이 자리에 서게 만든 정부와 전공의·의대 교수는 지금 이 순간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고 반문했다.
일부 회원들은 들고 있던 팻말을 내린 채 눈물을 닦기도 했다. '코넬리아드랑게' 증후군 환자 박하은(23)씨의 어머니 김정애(68)씨도 발언대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 박씨는 지금도 3세 수준 지능에 양손은 손가락이 하나씩만 있고, 제대로 걷기도 힘든 중증 장애가 있다.
김씨는 "의정갈등 해소용으로 환자들의 생명이 볼모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정부 편도 의사 편도 아니다. 그냥 아플 때 아무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원할 뿐"이라고 호소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장은 "반복되는 의정갈등에서 그간 백기를 들어왔던 과거 정부의 행태를 경험했던 의사들은 여전히 진료권이라는 무기로 힘을 과시하고 있다"며 "어떤 일이 있어도 아픈 사람들에 대한 의료공급이 중단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를 향해서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의사 수 수급추계 전문위원회를 신속하게 제도화해달라"며 "내년부터는 지금과 같은 논란과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원을 결정하고 조정해달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의료인이 집단행동을 할 수 없도록 재발방지법을 제정하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의료인 집단행동 시에도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실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는 한시도 중단없이 제공되도록 국회 차원의 관련 법 제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최 측은 이날 집회에 1천명이 참여한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들 단체에는 중증질환이 있는 환자들이 많은 만큼 대규모 거리 집회를 연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경찰 추산 이날 현장에는 단체 관계자 등 총 300여명이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