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급발진 인정' 0건…'시청 역주행' 쟁점은 운전자 행동

13명 사상자 낸 '서울시청 역주행' 사건
운전자는 버스기사…급발진 주장
국과수 감정 나섰지만…급발진 인정은 0건
전문가들도 급발진 가능성 두고 의견 엇갈려
'의문의 역주행'…운전자 과실 증거 나올까
유사사건 판결문 보니 운전 당시 행위도 쟁점

1일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차량이 인도로 돌진하는 교통사고가 발생, 사고 현장이 통제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청역에서 역주행한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9명의 사망자를 냈다. 가해 차량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대형버스 운전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급발진 여부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과수가 지금까지 급발진을 인정한 사례가 없고, 검증에도 한계가 있어 국과수의 판단이 절대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결국 운전자 잘못을 뒷받침하는 직·간접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급발진 여부에 대한 결론은 사고 과정에서의 운전자 행동을 근거로 재판에서 가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민사 재판에선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 인정돼 확정 판결된 사례가 없지만, 형사 재판에선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가 존재한다.

'급발진 의혹'으로 번진 시청 사고…사고 전 회피 모습도 포착

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과수는 이번 시청역 역주행 사고를 일으킨 제네시스 차량에 대한 감정에 들어갔다.

앞서 가해 차량은 1일 오후 9시 27분쯤 서울 시청역 인근 소공로 일방통행 구간을 빠른 속도로 역주행한 뒤 인도로 돌진했다. 차량은 시민들을 덮친 뒤 이후 차량 2대를 들이받고 반대편 차선으로 튕겨져 나가 시청역 12번 출구 부근에서 멈춰섰다. 이 사고로 시민 9명이 사망했고, 중상자 1명과 경상자 3명이 발생했다.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무사고로 시내버스를 몬 운전기사였다고 한다. CBS노컷뉴스가 확보한 사고 지점으로부터 약 50m 떨어진 건물의 폐쇄회로(CC)TV를 보면 운전자가 보행자와 전방 차량을 가까스로 피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빠른 속도로 역주행하며 전방에 정차된 차량을 가까스로 피하는 모습. 박인 기자
경찰은 국과수 감정 과정에서 차량 급발진 여부도 따져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과수의 판단이 급발진 여부를 가려내는 결정적인 판단 근거로 작용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급발진 의심 신고는 늘어가는데 국과수가 차량 급발진을 인정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이도현 군이 사망한 '강릉 티볼리 급발진 의혹 사건'의 소송 대리인인 하종선 변호사는 "일단 소프트웨어 분석 능력이 없고 그냥 EDR 기록만 본다"라고 지적했다.

BMW 급발진 손해배상 소송을 맡아 2심에서 승소해 대법원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이인걸 변호사도 "급발진이란 것이 결국 자동차에 내장된 전자장치의 오류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오류가 발생했다는 흔적이 자동차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국과수에서 감정한다고 해도 급발진 여부는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과거 유사 사건 보니…운전자 행동에 따라 판단 갈린다

때문에 급발진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는 점이 수사 과정에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면, 이번 시청역 역주행 사건의 쟁점으로 떠오른 급발진 여부에 대한 판단은 사고 전후로 운전자가 어떤 행동을 취했느냐는 점을 중심으로 법원에서 갈릴 전망이다.

법원이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 급발진을 인정해 소비자의 손을 들어주는 확정 판결을 내린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차량에 결함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1차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법정B컷]급발진 소송, 이번에도 소비자 '패소'…판사가 남긴 말)

반면 형사 재판에선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가 존재한다. 형사재판에선 '급발진이 아니라 운전자가 위험하게 운전해 사고가 난 것'이란 점을 검사가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2020년 12월,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선 지하주차장을 나오던 그랜저 차량이 이후 캠퍼스를 질주해 보행자를 쳐 사망케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이번 시청역 역주행 대형 사고와 유사한 점이 존재한다. △급가속한 차량이 여기저기 방향을 틀며 주행한 점 △화분과 보행자를 친 뒤 서서히 멈췄다는 점 △운전경력이 긴 남성이었다는 점 △비슷한 거리를 고속 주행했다는 점 등이다.

당시 검찰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 혐의로 운전자 A씨를 재판에 넘겼지만, 1심 재판부는 차량 결함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운전자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아직도 논란이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운전 경력 30년의 A씨가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착각해 13초나 되는 시간 동안 계속해 가속 페달을 밟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당시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2023.6.15 대전지법 형사5단독 '그랜저 사망사고' 형사재판 판결문 中
재판부
"교통사고분석서에 의하면 이 사건 차량은 지하주차장을 나온 지점에서 시속 10.5km의 속도로 우회전을 하던 도중 갑자기 속도가 시속 37.3km, 45.5km, 54.1km, 65.5km로 계속 증가하다가 시속 68km의 속도로 피해자를 충격했다. 이후에도 시속 68.3km로 보도블록과 가드레일을 충격했고 그 이후에서야 속도가 줄어들었다"

"위 분석에 따르면 차량의 속도는 증가할 뿐 감속이 이뤄지지 않았고 그렇다면 피고인이 약 13초 동안 보도블록, 화분을 충격하면서도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계속 밟고 있었다는 것인데 이러한 과실을 범하는 운전자를 쉽게 상정하기 어렵고 이와 같은 주행은 오히려 의도적으로 가속페달을 계속 밟지 않는 이상 이뤄질 수 없는 주행으로 판단된다"


이어 재판부는 당시 차량이 방향을 여기저기 틀었다는 점을 근거로 운전자가 보행자를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도 차량 결함 추정의 근거로 들었다.

2023.6.15 대전지법 형사5단독 '그랜저 사망사고' 형사재판 판결문 中
재판부
"사고 당시 차량에는 A씨의 배우자와 자녀가 동승하고 있어 A씨가 의도적으로 비정상적인 주행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중략) 여러 차례 차량의 브레이크등이 점등되기도 해 A씨가 계속해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보기 어렵고, 이 사건 차량의 결함을 의심할 여지가 충분하다. 더욱이 A씨는 1991년 운전면허를 취득해 운전경력이 30년 이상으로 짧지 않고, 사고 당시까지 단 한 번의 교통 관련 수사나 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어 피고인이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밟았다고 예상하기 어렵다"


하 변호사는 급발진 여부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는 운전자 행동에 대해 "우선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 어떤 말들이 녹음이 됐는지, 엔진 소리가 어떻게 녹음이 됐는지 등이 쟁점이 될 것"이라며 "또 운전자가 장애물을 피하고 충돌 회피를 위해서 어떠한 동작을 조치를 취했는지, 주행 데이터를 비교해서 차이가 나는지 이런 것도 비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브레이크등에 대해선 "브레이크등도 전자식 모듈에 의해 점등되는데, 급발진 시 ECU 소프트웨어 오류가 발생하면 점등되지 않을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급발진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주장도 있다. 유원대학교 경찰소방행정학부 염건웅 교수는 전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급발진 가능성이 적어 보이는 부분이 차량이 마지막에 제동을 했고 정지했다는 부분이 그렇다"며 "보통 급발진 차량들은 차량의 전자장치 이상으로 인해 오히려 가속이 붙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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