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7.23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원희룡 당대표 후보가 연일 한동훈 후보를 겨냥해 '배신자' 공세를 펴고 있다. 채상병 특검에 대한 조건부 찬성 입장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야권의 '탄핵' 압박에 동승한 것과 같고, 결과적으로 보수 분열을 획책한다는 비판이 담겼다.
그런데 원 후보는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 새누리당에서 탄핵에 앞장섰고,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탈당했던 인물 중 한 명이다. 여당 정치인으로서 과거의 탄핵은 옳고 현재의 탄핵은 틀리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원 후보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다시는 권력이 권한을 남용하고 헌법을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탄핵의 결정이 옳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번 전당대회 국면에서는 "당이 분열해서 탄핵에 찬성했다"거나 "(탄핵에) 안타까운 점이 많고, 국민들의 오해도 있었다"며 8년 전과는 전혀 다른 입장에 서 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원 후보 측은 박 전 대통령과는 사적·공적 인연이 없었던 반면, 한동훈 후보와 윤석열 대통령의 관계는 차원이 다르다는 반박을 제기했다.
元, 연일 한동훈 향해 "대통령 배신" 맹공…8년 전에는 탄핵 찬성
원 후보는 1일 페이스북에 6 차례 게시글을 올렸는데, 모두 한동훈 후보를 겨냥한 내용이었다. 먼저 원 후보는 "(한 후보가 언급한) 배신하지 않을 대상은 국민뿐이라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배신, 당에 대한 배신은 별 거 아니라는 것으로 들린다. 저는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글에서도 원 후보는 "한 후보는 당 대표와 대선 후보 자리를 단숨에 거머쥐려 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 자신을 아끼고 키워준 윤 대통령과 차별화도 불사하겠다고 한다"며 "탄핵의 징검다리가 될 특검도 먼저 발의하겠다고 한다. 참으로 나쁜 정치"라고 직격했다.
전날 "당이 대통령을 버렸을 때 어떤 결과가 되는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자세로, 설득하고 당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며 "특검과 탄핵은 공멸로 가는 국민배신의 길"이라고 말한 것의 연장선이다. 당정은 일체가 돼 국정을 운영해야 하는데, 한 후보가 채상병 특검 수용 의사로 윤 대통령을 배신해 당정 갈등, 당내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원 후보는 지난 2016년 여당 의원 일부가 대통령 탄핵안을 처리했을 때 뜻을 같이 했던 인물이다. 당시 제주지사였던 원 후보는 새누리당 비주류 국회의원, 전·현직 광역단체장 등 80여 명이 함께한 비상시국회의에 가담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출당 조치를 요구한 바 있다. 원 후보 자신도 "제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사실"이라고 적은 바 있다.
같은해 12월 9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원 후보는 페이스북에서 "헌법을 무시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며 "새누리당은 오늘 죽음으로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듬해 1월에는 "새누리당을 떠난다.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드는 길에 나선다"며 당도 떠났다.
"권력의 헌법 위반 막겠다" 반성이 이번엔 "분열해 탄핵 찬성" 변질
원 후보는 탄핵의 당위성을 계속 긍정해온 인물이었다. 원 후보는 탄핵소추안 의결 4년을 맞은 지난 2020년 12월 페이스북에 "4년 동안 우리 당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온몸을 던져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었다"며 국민들에 용서를 구했다. 이어 "다시는 권력이 권한을 남용하고 헌법을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모든 것을 걸고 모든 힘을 다해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지난 2021년 대선 경선에 참여하고 있을 때에도 원 후보는 "과거 문제 중 가장 핵심이 (박 전 대통령) 탄핵"이라며 "탄핵은 인정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전당대회에 들어서자 8년간 이어왔던 탄핵에 대한 입장이 180도 바뀌었고, 원 후보는 바뀐 입장에 기대 한동훈 후보를 공격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27일 원 후보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2017년에도 야당이 탄핵하고 국민 여론이 탄핵 여론이 높은데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그냥 반대하다가는 명분에 밀린다면서 그때 분열해서 탄핵에 찬성했다가 지금 이 결과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충북도청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서는 "거대 야당의 특검을 미끼로 내세운 탄핵 그물질과 선동에 당정과 보수 우파가 공멸하는, 2017년 탄핵으로 인한 공멸 어게인이 벌어질까봐 공한증(한동훈 공포증)에 정말 떨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원 후보는 자신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것에도 배신 꼬리표가 붙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배신보다 한 후보의 배신이 더 심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원 후보는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적 대척점에 있던 제가 탄핵에 찬성의사를 표시했다는 이유로 배신자로 불린다면, 지금의 자기를 키우다시피한 윤 대통령을 배신한 한동훈 후보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동훈 후보를 끌어내려야 하고, 윤 대통령과는 코드를 일치시키겠다는 전략인 줄은 알겠다"면서도 "원 후보 자신의 행보를 돌아보면 앞뒤가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원외 당협위원장도 "수직적 당정관계가 총선 참패 원인인데, 비판과 논쟁을 봉쇄하고 다 배신이라고 규정한다는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원 후보 측은 "원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이 키운 정치인이 아니라 자력으로 성장한 인물이지만, 한 후보는 윤 대통령이 100% 키운 정치인인데도 자신을 키워준 사람과 척을 지려는 것"이라며 "배신자라고 이름을 붙이면 그 수준이 원 후보가 1일 때, 한 후보는 100정도 되는 수준이 아니겠냐는 취지"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