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채상병 특검법 처리가 임박한 가운데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둘러싼 일명 '배신자 프레임'도 더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특히 용산 대통령실에서 채상병 특검법은 위헌적이며 그에 따라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한 전 위원장과의 사이는 멀어지고만 있다. 이에 전당대회 이후 거부권 행사를 놓고 당정관계가 갈등을 빚으면서 총선 때의 1~2차 '윤-한 갈등'과는 달리 봉합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한편에서는 한 전 위원장과 당권을 놓고 경쟁 중인 나머지 세 후보(원희룡 전 국토부장관·나경원 의원·윤상현 의원)가 채상병 특검법을 놓고 일제히 연합 전선을 펼치는 형국이 되면서, 당 안팎에서는 한 전 위원장에 대한 우호적인 시선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표면적으로 친윤계의 반격이 '당심'을 자극할 것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한 전 위원장이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 판세를 굳힐 것이란 반대 전망도 동시에 제기된다.
운영위가 드러낸 '특검 입장차'…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용산 VS 한동훈'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1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채상병특검법'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법안은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정 실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의 질의에 "재의요구권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권한인 동시에 의무, 책무"라며 "위헌 사항이 분명한데도 재의요구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직무 유기"라고 답했다.
야당의 추천만으로 특검을 임명할 수 있는 독소조항을 놓고 위헌적이라며 반대해 온 기존 입장에서 달라진 게 없는 것으로, 특검 도입 자체에 재차 위헌적 소지를 걷어내고 대법원장에게 추천권을 주자는 한 전 비대위원장의 중재안에도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정 실장은 또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찰이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 중인 만큼,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미진하고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가서 특검을 발의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라며 "채상병 사건의 본질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정당한 이첩 보류 지시 명령을 박정훈 수사단장(대령)이 어긴 항명 사건이 그 실체이고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정훈 대령이 주장하는 이른바 외압은 실체가 아직 규명된 바 없지만, 항명 부분은 직속상관인 장관의 정당한 명령 지시를 이행하지 않음으로 해서 그거 때문에 (박 대령이) 기소되지 않았느냐"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이는 '민심'을 명분삼아 채상병 특검법을 수용해야 한다는 한 전 비대위원장의 주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이다. 한 전 비대위원장은 외압 의혹 등 실체 여부를 떠나 다수 여론조사에서 의혹이 있다는 전국민적 시각을 해소해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해 왔다.
반면 한 전 위원장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당장 지금 민주당이 추구하고 있는 특검은 정말 위험한 특검"이라면서도 "민심에 따르는 게 필요하다. 민심이 정답지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정 실장이 채상병 사건에 대한 양측의 기본적인 시각 차를 반복해 드러내면서 한 전 위원장을 사실상 '배신자'로 낙인 찍게 된 측면도 있다. 이런 가운데 한 전 위원장이 신임 당대표가 되면 '총선 승리'라는 공통의 목적이 사라진 상황에서 양측 모두 자신의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고, 윤 대통령은 임기 3년을 남기고 여당을 적으로 돌리게 되는 셈이다.
친윤계에 수세 몰린 韓…당심·민심은 어느 쪽을 지지할까?
대통령실과 세 후보가 채상병 특검법을 놓고 연일 협공하는 모양새가 취해지면서 오히려 친윤계의 입김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도 하다. 한 전 위원장에 대해 융단폭격에 가까운 공세가 쏟아지자 특검법 수용 발언 이후 성난 당원 민심이 다소 가라앉았다는 당내 반응도 나온다.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친윤·친한 사이에서 입장을 정하지 않고 관망하던 당원들이나 의원들 일부는 한 전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듯한 모습에 '지난 전당대회 당시 연판장 사건이 떠오른다'고 하기도 한다"며 "이 흐름대로라면 한 전 위원장이 결선 없이 승부를 확정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친윤계의 지원을 등에 업은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은 '전당대회를 정정당당한 축제로 만들자'는 한 후보의 발언을 문제삼아 연일 공세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원 전 장관은 "지금이 축제를 말할 때냐. 총선 패배는 대통령 탓이고 한 후보는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냐"며 "적어도 총선 참패 주 책임자가 할 말은 아니다. 당론으로 반대하는 채상병 특검을 수용하겠다고 내부 갈등을 촉발한 당사자가 할 말도 아니다"라고 날을 세웠다.
윤상현 의원도 한 전 위원장의 중재안에 대해 "한마디로 민주당 대표나 할 소리를 하는 것"이라며 '윤심(尹心) 마케팅'에 가세했다.
연일 배신자 프레임 협공이 이어지자 한 전 위원장은 "저는 대안을 제시했다"며 "나머지 세 분께 여쭤보겠다. 이거(민주당의 채상병 특검법) 어떻게 막으실 거냐"고 반문했다.
여론이 채상병 특검법을 원하고 있는 만큼 민주당은 역으로 윤 대통령으로 하여금 거부권 행사를 유도해 정국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고 하고 있다. 이에 차라리 중재안을 찾는 편이 낫다는 것이 한 전 위원장의 셈법이지만, 세 후보는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려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또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수록 여론은 싸늘해질 텐데, 눈앞의 이익(윤심)만 보는 후보들과 아닌 후보가 비교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