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범위 친족(8촌 이내 혈족·4촌 이내 인척·배우자)을 대상으로 절도나 사기와 같은 재산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하지 않는 형법 조항(형법 제328조1항)이 71년 만에 효력을 잃게 됐다. 지난 4월 도입 47년 만에 수술대에 오른 '유류분' 제도와 같이 시대 흐름의 변화에 따른 조치라는 반응이 나온다.
해당 조항은 방송인 박수홍씨 가족 간 재산 분쟁이 불거지며 주목받은, 이른바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 규정이다. '법은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도입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달라진 사회 분위기와 가족 개념의 변화로 규정을 손질해야 하는 요구가 컸다.
친족간 재산범죄 처벌 면제 '친족상도례'…71년 만에 헌법불합치
28일 법조계 안팎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전날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해당 조항을 헌법불합치 결정한 배경에 이런 사회적 요구가 반영됐다는 시각이 많다.
헌재는 가족이나 친족 관계에 관한 우리나라의 역사·문화적 특징이나 재산범죄의 특성 등을 고려할 때 가족(친족) 사이에서 참을 수 있을 정도의 재산 범죄에 대한 형사소추나 처벌 특례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일정한 친족관계 요건만 되면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하는 친족상도례 규정은 '입법재량을 명백히 일탈해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또 "친족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점에서 제도적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농경시대 대가족 제도와 달리 핵가족 비중이 증가하고 1인 가구가 급격히 늘어나는 등 가족 세대 구성이 단순화하는 현재 시대 상황도 반영했다. 농림수산업의 비중이 줄고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는 등 산업구조도 고도화해 경제활동의 양상도 과거와는 현저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헌재는 "일정한 친족 사이에서는 언제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공유될 수 있다거나 손해의 전보 및 관계 회복이 용이하다고 보는 관점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넓은 범위의 친족 관계에 적용되는 일률적 형면제는 경우에 따라 형사피해자인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이 돼 규정 취지와 어긋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성년자·환자·장애인·노인 등 가족이나 친척 관계에서 다른 구성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등의 취약한 피해자에게 친족상도례를 적용하는 것은 가족과 친족에게 경제적 착취를 당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또 재산 범죄 규모가 클 경우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한 피해 회복이 어렵다는 점도 경고했다.
헌재는 "심판대상 조항은 이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법관이 형 면제 판결을 선고하도록 획일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피해자가 재판에 참여할 기회를 상실한다"며 "입법 재량을 명백히 일탈해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해 형사피해자의 재판 절차 진술권을 침해한다"고 덧붙였다.
헌재의 결정으로 형법 제328조 1항은 적용이 중지됐다. 또 국회는 내년 말까지 개선 입법을 해야 한다.
지난 4월 헌재, 가족 개념·사회 변화 반영해 '유류분' 조항 손질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이 강하던 시절 여성 등 가정 내 약자가 상속에서 일방적으로 소외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든 일종의 '보호장치'인 셈이다.
하지만 헌재는 지난 4월 25일 민법 1112조 4호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해당 조항은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인(故人)의 뜻과 상관없이 형제자매들에게까지 법정상속분의 일부를 보장하도록 규정한 유류분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단이다.
헌재는 가족의 역할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상속인들은 유류분을 통해 긴밀한 연대를 유지하고 있다며 유류분 제도 자체는 정당하다고 봤다.
하지만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는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나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 등이 거의 인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류분권을 주는 것은 그 타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의 유류분 상실 사유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은 민법 1112조 1~3호, 부양 기여분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은 민법 1118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입법 개선 시한은 2025년 12월 31일로 정했다.
당시 헌재는 "피상속인을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등 패륜적 행위를 일삼은 상속인의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반한다"며 "유류분 상실 사유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은 것은 불합리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