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고용·안전부재' 그늘서 숨진 외국인들…"위험의 이주화"

경기 화성 화재 발생한 아리셀 "불법 고용 의혹"
아리셀·메이셀 "외국인 특례고용허가 받지 않아"
노동부 "두 업체, 구두로 도급계약 한 것으로 보여"
소방당국, 참사 19일 전 화재안전 컨설팅 했지만
'3동 화재 시 인명피해 우려' 경고 현실화
'불법고용·안전부재' 의혹 속 이주노동자 다수 희생
전문가 "위험의 외주화 넘어 이주화 사례"

 
연합뉴스

경기 화성시 리튬 일차전지 제조업체인 아리셀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이주노동자들이 법망을 벗어난 고용 관계 속에서 업주 주도로 무리하게 현장에 동원됐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노동자들이 투입된 현장은 불과 3개월 전 소방당국으로부터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 우려가 있다는 경고를 받은 곳이었지만, 경고는 현실이 됐다.

결국 '불법고용·안전부재' 공장에서 벌어진 인재(人災)의 피해를 이주노동자들이 고스란히 떠안은 셈이라는 지적과 맞물려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선 '이주화' 사례로 남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아리셀·메이셀 "외국인 특례고용허가 신고 안 해"…불법고용 의혹

27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참사 현장에 인력을 공급한 업체 메이셀과 인력을 공급 받은 아리셀 모두 이주노동자 고용 관련 의무 신고 사항을 어긴 정황이 드러났다.
 
법무부는 화재로 숨진 18명 외국인이 모두 비자를 취득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는 입장을 앞서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는 한 명도 없다고 파악하고 있다"며 "대부분은 재외동포비자(F-4)이고, 그 외에 방문취업비자(H-2)도 있다. 사망한 라오스 분은 결혼이민비자(F-6)"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체류 기간이 지난 분이 있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들의 체류 자격은 실종자 명단과 출근부를 바탕으로 확인했다"며 "물론 사망자들의 신원 확인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아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발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 제12조에 따라 사업주가 방문취업비자(H-2)를 취득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면 고용노동부에 특례고용가능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아리셀은 물론 인력을 공급한 것으로 알려진 업체 메이셀도 고용노동부에 특례고용가능확인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연합뉴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지난 26일 "(이주노동자들을) 파악해서 관리하고 지원하기 위해서 사업주가 특례고용확인을 받도록 해놓은 것이다"며 "특례고용가능확인서 미제출을 포함해 위법 여부에 대해 조사할 계획이다. 관련 조치 역시 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례고용확인 없이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장이 적발되면 과태료가 부과되고 고용이 제한된다.

이에 더해 메이셀은 '무허가 업체'로 드러났다.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메이셀은 직업소개업 등록이 되어 있지 않고,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업체였다.

아리셀이 메이셀로부터 인력을 불법 파견 받았다는 의혹도 규명해야 할 중요 대목으로 꼽힌다. 노동자 파견이 금지된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이주노동자를 파견 받아 투입한 것 아니냐는 게 의혹의 골자다. 아리셀은 불법 파견은 없었고, 도급 인력이었다는 입장이지만 인력을 댄 메이셀은 파견이었다고 반박하는 상황이다.

관련 업주들이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적으로 현장에 투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자 고용노동부 등 관계 기관 조사도 뒤따르고 있다. 민길수 중부지방고용노동청장은 전날 오전 경기 화성시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아리셀과 메이셀은) 구두로 도급계약 체결된 것으로 보이는데 내용은 더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며 "도급계약서는 없다고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아리셀과 메이셀 간) 관계가 도급이었는지 파견이었는지는 조사와 수사를 통해 확인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방당국이 '3동' 찍어 화재 경고했는데…"위험의 이주화 사례"

이처럼 석연치 않은 과정을 거쳐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게 된 아리셀 공장 3동은 불과 3개월 전 소방당국의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 경고가 이뤄졌던 위험한 공간이었다는 사실도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확인됐다. 심지어 이달 5일에는 당국의 '화재안전 컨설팅'까지 진행됐지만, 경고된 참사를 피하지 못했다. 아리셀 측의 안전불감증이 심각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취재진이 전날 확보한 화성소방서 남양119센터의 '3월 28일자 소방활동자료조사 결과 자료'를 보면 소방당국은 아리셀 11개동 공장 가운데 '3동 공장'을 명확히 찍어 "제품 생산라인 급격한 연소로 인한 인명피해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리튬 1000kg, 990kg 저장소 2개소, 화재 시 3류 위험물 저장소 내 방수 금지'라는 내용도 자료에 담겼다. 물이 닿을 경우 급격히 발화하는 물질이 있으니 물을 뿌리지 말라는 것이다.

남양119센터가 올해 3월 28일 실시한 아리셀에 대한 소방활동자료조사 결과 자료.

이런 구체적 경고 이후 경기 화성소방서는 이달 5일 오후 2시 아리셀을 방문해 화재안전 컨설팅도 실시했다. 컨설팅에는 아리셀 관계자 2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9일 뒤 3동 공장 2층에서 불이 났고, 23명이 숨졌다. 사망자 가운데 18명이 이주노동자로, 이들 중 10명(중국인 9명·라오스인 1명)의 신원이 전날 처음 확인됐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는 "산업 현장에서 힘들고 더러운 일들은 결국 '코리아 드림'을 꿈꾸며 온 이주 노동자들이 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 받지 못하고 일하는 경우가 많아 산업재해 사고 등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아마 이주노동자들은 리튬 배터리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 교육을 받지 못했고 또 일용직으로 고용됐다면 작업장 구조에도 익숙하지 않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번 사고는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험의 이주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화성공장화재이주민공동대책위원회도 성명을 내고 "이번 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라며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이주노동자들의 안전과 인권 문제가 낳은 예견된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철저한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이주노동자 차별 없는 지원 △이주노동자 파견 민간 위탁 및 외주용역업체에 대한 관리 감독의 강화 △이주노동자 안전 및 인권 보호 대책 마련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한편 이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과 노동부는 아리셀 박순관 대표와 총괄본부장, 안전 분야 담당자, 인력파견 업체 관계자 등 5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했다. 전날 오후에는 아리셀과 메이셀 등 3개 업체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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