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밑으로 절단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 괴사가 진행돼 무릎 위로 또 절단했다고…"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한 대학병원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이 4개월 넘게 지속되는 가운데 전남에서 골절상을 입은 50대 노동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다리를 두 차례나 절단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최초 진단 '개방성 골절', 광주·전남서 당일 수술할 병원 없어
지난 3일 오후 5시 15분쯤 전남 여수국가산단 모 석유화학업체 사포2부두. A(51)씨의 외마디 비명이 울려 퍼졌다. 구조물 위에 올라가 컨베이어벨트 보수 작업을 함께하던 B(39)씨는 소리가 난 현장에 급하게 뛰어 내려갔다.A씨는 컨베이어벨트를 움직이는 롤러와 뒤에 있던 H빔 사이에 오른쪽 정강이가 끼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어찌나 상황이 급했던지 B씨는 끼어있는 A씨를 구조하기 위해 급히 움직이던 중 2m 높이에서 떨어져 오른쪽 다리가 골절됐다.
사고 이전 A씨와 B씨 등은 1㎞ 길이의 컨베이어벨트를 고치기 위해 벨트의 시작 부근에 서 있었다. 해당 벨트는 선착장에 도착한 배에서 내려진 공업용 소금을 적재하는 장소까지 운반하는 용도로, 부두 인근의 공장에서 사용 중이다.
이들이 맡은 작업은 노후화된 컨베이어벨트의 롤러를 교체하는 것. 롤러 교체를 위해서는 롤러를 잡아주는 볼트를 풀어야 하지만 너무 오래돼 녹이 슬어 있었다. 결국 A씨는 풀리지 않는 볼트를 그라인더로 절단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당시 벨트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는 사실을 1㎞ 정도 떨어진 A씨와 다른 작업자가 서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를 모른 채 A씨는 볼트를 절단하다 롤러 중 하나가 탄성에 의해 튀어 나가면서 다리가 벨트 안으로 협착됐다.
26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소방당국은 이날 오후 5시 20분쯤 현장에 도착해 A씨와 B씨의 응급 처치를 진행하고 병원으로 이송했다. 이날 사고를 당한 A씨는 응급처치가 끝나고 한 시간여가 지난 오후 6시 20분쯤 전남 여수의 한 종합병원에 도착했다.
초기 응급 처치와 의료영상 촬영을 진행한 해당 병원에서는 "A씨의 오른쪽 종아리 부분이 완전히 으깨지고 혈관도 파열돼 당일 수술이 불가능해 수지 접합 전문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는 소견을 내렸다.
40여 분 동안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았지만 전공의 집단이탈 등으로 전남대와 조선대 등 광주 대학병원에서는 "해당 환자를 수용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6시간 뒤 수술 가능 병원 찾았지만…혈관·신경 손상으로 절단
여수의 한 종합병원에서는 광주 전원에 실패한 뒤 대구지역 전문병원 등 전국적으로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물색했다.오후 7시가 되어서야 경기도 시흥의 C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A씨의 지인은 "광주와 전남지역의 대형병원은 전공의 이탈 등으로 환자를 받아주기 어려운 상황인 것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A씨는 밤 11시쯤 경기 시흥 C병원에 도착했다. 이송을 담당한 사설 구급인력 등 관계자들은 A씨의 상태는 골절보다 심각한 상태인 것으로 파악했다. C병원 관계자는 "혈관·신경 손상도 확인돼 더욱 응급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음날인 4일 오전 6시 혈관 접합 수술이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이날 오후 1시에 A씨는 골절 수술을 진행했다. 1시간 20분의 수술 도중 A씨는 괴사와 당뇨 등의 영향으로 끝내 무릎 아래까지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A씨가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이동하기까지 6시간, 본격적인 골절 수술이 진행되기까지는 모두 20시간이 걸렸다.
해당 사건의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고용노동부 여수지청 관계자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빨리 치료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끼임 사고는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해 알아본 광주지역 병원에서는 전공의 이탈 등을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며 "이에 경기도까지 가서 다음날 수술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형외과 전문의는 혈관 손상 등이 판단되는 개방성 골절의 골든타임은 4시간, 최대 6시간으로 보고 있다.
한 정형외과 전문의는 "무릎의 경우 4시간, 발목 부위는 6~8시간 내 수술을 받아야 괴사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혈관 손상만 있는 경우에는 완전 절단보다 진단과 수술 모두 어려운 '초응급' 상황이다"고 말했다.
절단 수술 진행했지만…지병·괴사 겹쳐 또다시 다리 절단
C병원에서 절단 수술을 받은 이후에도 A씨의 다리는 시간이 지체된 탓에 괴사가 진행돼 추가적인 절단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됐다.C병원은 사고 발생 일주일 뒤인 지난 10일 오후 6시쯤 경기도 시흥의 D종합병원으로 A씨를 이송했다. 이날 D종합병원에 도착한 A씨는 지난 18일 오전 11시부터 2시간 20여 분 동안 무릎 위로 다리를 절단하는 2차 수술을 진행했다.
2차 수술을 진행한 D종합병원 측은 "괴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의료진 판단하에 무릎 위로 절단하는 수술을 진행했다"며 "환자 컨디션이 좋지 않아 소화기내과 협진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A씨는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수술 이후 회복 단계에 있고 사고 충격과 후유증으로 인해 취재진과 연락은 닿지 않는 상태다.
광주 대학병원들, "전원 불가 사례 많아 확인 어려워"
실제로 광주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공의는 지난 25일 기준 전남대병원 169명 가운데 9명(5.3%), 조선대병원 114명 가운데 5명(4.3%)으로 모두 14명에 불과하다. 전남대병원의 수술실 가동률은 전공의 집단이탈 이전 대비 50% 수준으로 떨어졌다. 조선대병원의 수술실 가동률도 평상시 대비 60~70% 수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A씨가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았더라면 다리 절단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터져 나온다. A씨의 진료를 거부한 지역 상급종합병원인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 측은 전원 거부 사례가 많아 제대로 된 파악조차 못 하는 실정이다.
전남대병원은 관계자는 "응급실과 외상센터 교수들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면서 "치료 가능 여부를 묻는 전화가 워낙 많이 오기 때문에 기억을 못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대병원 관계자도 "전원과 관련한 기록이 남지 않아 당시 상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사고가 발생한 이후 시간도 많이 흘렀고 비슷한 문의가 병원으로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집단 이탈 이후인 2월 19일부터 지난 21일까지 4개월여 동안 정부 운영 피해신고지원센터를 통해 총 3638건의 상담이 접수됐다. 이 중 피해신고 접수가 813건인 22.3%를 차지했는데 수술 지연으로 인한 신고건수가 476건(58.5%)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에서의 수술지연이 424건으로 나타났다. 진료거절도 120건으로 나타나 전체 피해신고 건수 중 15%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