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중 하나인 '하미 학살'을 진실 규명 대상에서 제외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결정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이정희 부장판사)는 25일 응우옌티탄 씨 등 5명이 진실화해위를 상대로 "신청 각하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과거사정리법의 목적 달성을 위해 진실 규명이 필요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하미 학살' 사건은 1968년 2월 24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즈엉구 하미마을에서 전투 중이던 국군이 민간인에 총격을 가한 사건을 말한다. 이에 응우예티탄 등 하미마을 사건 피해자와 유가족 5명이 2022년 4월 진실화해위에 진실 규명 신청서를 접수했다.
그러나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5월 제55차 위원회에서 '하미 학살' 사건에 대한 조사 여부를 표결에 부쳐 4대 3으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당시 진화위는 "전쟁 당시 외국에서 외국인에 대해 발생한 사건으로까지 진실 규명 대상이 확대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행정소송에서도 외국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사건이 진실 규명 대상이 되는지가 쟁점이 됐다. 피해자 측은 "과거사정리법에 외국인에 대한 외국에서 벌어진 사건을 조사 대상에서 배제하는 규정이 없는데도, 진실화해위가 각하 결정을 내렸다"며 진화위가 과거사정리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진실화해위 입장에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과거사정리법의 입법 취지는 한국 전쟁, 독재 등의 시기를 거치며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이 침해된 경우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 법이 규정한 진실 규명 조사 대상에 외국에서 벌어진 외국인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의 목적과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고들의 주장을 따르면 진실 규명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가능성이 크며, 법의 효력이 미치는 영토적, 인적 한계로 인해 진실 규명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외교적 갈등 등 여러 문제도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과거사정리법에 따른 진실 규명을 거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에 권리구제를 신청할 방법이 많다"고 했다.
피해자 측은 판결에 즉각 불복했다. 피해자 측 대리인 법무법인 도담의 김남주 변호사는 "대한민국 정부에 학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요구했지만 여러 번 거절당했고 오늘도 거부당했다"라며 "원고들과 상의해 다시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말도 못 하는 전쟁고아, 베트남 노인에게 한국재판부는 진실 규명이 아닌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으로 구제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우롱하는 처사"라고 했다.
베트남에서 화상으로 기자회견에 참여한 응우옌티탄씨는 "오늘 선고가 너무나 슬프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전 세계인이 다 아는 전쟁범죄"라며 "그런데도 한국정부가 진실 인정하지 않고, 또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진실 규명을 거부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심경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