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16살 당구 천재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한국 3쿠션을 주름잡았던 '헐크'를 떨게 한 앳된 소년이 향후 프로당구(PBA)를 뒤흔들 신호탄을 쐈다.
김영원은 24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리금융캐피탈 PBA 챔피언십' 남자부 결승에서 강동궁(SK렌터카)에 아쉽게 졌다. 세트 스코어 2 대 4로 패하면서 우승컵을 내줬다.
역대 최연소 우승은 무산됐다. 그러나 김영원은 역시 역대 PBA 최연소 결승 진출이라는 역사를 썼다.
하마터면 PBA 투어 2회 우승에 빛나는 강동궁을 누를 뻔했다. 김영원은 1세트를 15 대 4로 따내며 기선을 제압했고, 3세트도 15 대 13으로 가져와 리드를 이어갔다.
하지만 관록을 이기지 못했다. 강동궁이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며 4~6세트를 따내 통산 3번째 우승을 확정했다. 김영원은 6세트 8 대 13까지 추격했지만 승부를 뒤집지 못했다.
대선배의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 김영원은 눈물을 쏟았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김영원은 소감을 묻는 첫 질문에 "너무…"라고 말문을 뗀 뒤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겨우 "좋은 경험을 했다"고 첫 답변을 마무리했다.
눈물을 흘린 까닭을 묻자 김영원은 "그동안 훈련을 해왔던 게 생각나서 벅차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노력한 게 갑자기 생각났고, 힘들었던 게 기억났다"고 덧붙였다.
자기 자신과 싸움이었다. 김영원은 "요새 계속 혼자서 아무도 없을 때 외롭게 훈련하는 게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일찍 일어나서 훈련하는 선수가 많지 않은데 처음 당구장 문을 열고 어두운데 테이블 하나에 불을 켜놓고 훈련했다"면서 "아침 8시부터 저녁 6, 7시까지 했다"고 부연했다.
그야말로 고독한 싸움이었다. 대부분 당구 선수들은 생활 패턴이 '올빼미'다. 밤 늦게까지 훈련하는 선수들이 많다. 그와 반대로 김영원은 당구 선수 중에는 드문 '아침형 인간'인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영원은 고교 진학 대신 당구에 인생을 걸었다. 2021년 전국종별학생당구선수권대회 3쿠션 중등부 1위에 올랐던 김영원은 중학교 졸업 뒤 PBA로 뛰어들었다. 또래 친구들과 한창 장난을 치고 수다를 떨 나이에 큐대를 잡고 아버지뻘 선수들과 자웅을 겨루고 있다. 외로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만큼 엄청난 잠재력을 입증했다. 김영원은 2022-23시즌 '크라운해태 PBA 챔피언십' 128강전에서 또 다른 슈퍼 스타 조재호(NH농협카드)와 접전을 펼쳤다. 승부치기 끝에 조재호가 행운의 득점으로 간신히 이겼다. 그러더니 올 시즌 개막전부터 결승에 올라 조재호의 라이벌 강동궁을 떨게 만들었다.
강동궁도 "사실 1년 전쯤 운영하는 당구 아카데미에 김영원 프로가 찾아왔다"면서 "그런데 1년 사이에 어떻게 저렇게 잘 치게 됐는지 깜짝 놀랐다"며 28살 어린 후배에 혀를 내둘렀다. 이어 "대단하게 공을 잘 치더라"면서 "어린 선수라 초반 안 풀리면 내가 쉽게 경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잘 쳐서 당황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경험이 차이였다. 김영원은 "사실 강동궁 선수를 결승에서 만났을 때 쉽지 않겠다 생각했다"면서 "PBA 와서 우승도 하고 경험이 많아 확실하게 잘 치지 않으면 이기기 어렵겠다고 예상했다"고 전했다. 이어 "결승에 올라온 적이 없어 경험이 부족했고 멘털이 흔들렸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김영원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이었다"면서 "결승에 올라왔으니 향후 우승 목표로 하고 싶고 한번 올라왔으니 쉽게 올라올 수 있을 거 같다"고 영건의 패기를 뽐냈다. 이어 "기본 공을 실수 없이 치는 스타일인데 까다로운 공에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면서 "난구를 잘 풀어가야 할 것 같다"고 앳된 얼굴로 굳게 다짐했다.
첫 결승 진출에 대해 김영원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지? 진짜 맞나? 의아한 느낌이었다"면서 "그런데 아버지가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잘한 것이다. 주눅든 모습만 보여주지 말라'고 하셨다"고 귀띔했다. 고독한 자신과 싸움을 이겨낸 이 친구, 어쩐지 한국 당구를 뒤흔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