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김태용 감독이 들려준 '원더랜드'의 비밀

영화 '원더랜드' 김태용 감독.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만추' 김태용 감독이 무려 13년 만에 신작 '원더랜드'로 돌아왔다. 영상 통화를 하다가 문득 '화면 너머에 있는 저 사람은 실재하는 것일까?' '저 공간에 진짜로 존재하는 것일까?' 등의 의문이 김 감독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세계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계속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을 진짜처럼 여기고 믿는다면 그 관계는 지속되는 게 아닐까?' 등으로 이어진 생각 결국 김 감독을 움직이게 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원더랜드'다.
 
영상 통화에서 시작해 '관계'에 대한 질문은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 통화 서비스 '원더랜드'. 관객들은 '원더랜드' 서비스와 그 안에 담긴 여러 사람의 이야기와 그들의 관계를 보며 자신만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화 개봉일, 김태용 감독을 만나 '원더랜드'를 둘러싼 몇 가지 궁금증에 관해 물었다.
 
영화 '원더랜드'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 '원더랜드'는 한 명의 주인공이 아닌 여러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러한 구조를 가져간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의 주제가 여러 사람의 관계나 합이 모여야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정인과 태주의 이야기를 보면 '살아 돌아온 태주를 정인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난 왜 기계보다 인간을 받아들이기 더 어려운 걸까?' 등의 질문이 생긴다. 바이리의 엄마는 사진은 받아들이는데 기계로 구현된 딸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받아들이기'라는 큰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정인과 태주를 보다가 바이리를 보게 된다면 서로 시너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하나의 에피소드를 깊게 갈 때의 장점도 있겠지만, 이런 구조가 주는 장점이 있다. 다양한 받아들이는 형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 구조(옴니버스)가 가지는 장점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 AI와 관련해 자료조사를 하고 전문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공지능이 가진 어떤 점이 가장 흥미로웠나?
 
처음엔 '내가 만나는 사람이 진짜일까 아닐까?' '진짜든 아니든 내가 소통할 수 있으면 진짜일까?' 등 관념적인 고민이었다. 죽거나 없는 사람을 진짜 있는 것처럼 구현해 주는 기술이 곧 나오겠다는 상상을 해봤고, 그런 쪽으로 시나리오를 써 봤다.
 
내가 궁금했던 건 우리는 왜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이상한 감정이 들고, 이 감정은 왜 생긴 건가 등이었다. 뇌과학자들이 주로 이야기하는 건 뇌는 사리 판단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판단한 걸 합리화하기 위해 쓴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인공지능 이야기를 통해서 감정의 변화를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원더랜드'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 영화 속 고고학자가 된 바이리가 찾는 것도 '생명의 나무'이고, 현실에서의 기억을 되찾고 원더랜드 시스템의 시작점처럼 보이는 곳에 도달해 만난 것 역시 생명의 나무와 닮은 형상이었다. '생명의 나무'라는 키워드는 어떤 의도로 영화에 활용한 것인가?
 
창세기 3장 22절에 '생명의 나무'가 나온다. 종교적 관심이 인공지능과 연결이 안 될 수 없다 보니 영화에서 짧게나마 등장한다. 고고학자가 무엇을 찾을 것인지 시나리오를 쓸 때 고민하다가 생명의 나무를 생각해 봤다.
 
에덴동산에 선악과만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선악과나무 옆에 생명의 나무도 같이 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이 생명의 나무를 취할까 봐 에덴에서 쫓아낸 것인데, 우리는 그 중간을 빼고 선악과를 먹어서 쫓아냈다고만 알고 있다. 영생을 꿈꾸기 시작하면 안 되기에 에덴동산에서 내쫓은 것이다.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더라.
 
인공지능이 죽음 이후 우리를 계속 살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고, 생명의 나무를 찾으려는 고고학자가 활동하는 곳이 요르단이다. 요르단이 '요르단강을 건너다'의 그 요르단이다. 실제 요르단에서 생명의 나무를 찾는다는 게 우리 영화와 연관이 있었다.
 
영생과 관련된, 죽음 이후 세계를 인공지능으로 구현한다는 게 에덴동산의 생명의 나무를 취한다는 것과 비슷했다. 신이 우리를 버렸듯이 어느 순간 인공지능이 우리를 파괴할 거란 두려움이 있는데, 그거랑 연결해 보고자 했다.

영화 '원더랜드'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 영화 마지막을 보면 바이리는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고, 또 딸 바이지아 역시 엄마인 바이리의 죽음을 금세 받아들인다.
 
내게는 영화의 결말이 영화를 시작한 계기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가 누가 누구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보니, '인공지능 엄마를 엄마로 받아들일 거냐' '바이리 엄마가 내 딸이 아닌 기계를 내 딸로 받아들일 거냐' '돌아온 태주를 받아들일 거냐' '인연과 관계가 확장되면서 기계를 내 일부로, 내 가족으로 받아들일 거냐' 등 '받아들인다'는 가장 핵심적인 태도가 바이지아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바이지아가 (엄마의 죽음을) 알고 있었을까 몰랐을까, 찍으면서도 그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짧은 영상의 레퍼런스가 있었다. 엄마가 병원에 오래 있다가 돌아가셨는데, 아이는 엄마의 죽음을 모르고 아직 병원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빠가 아이에게 말할 시기를 놓치다가 일 년쯤 지나서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지는 몰라도 끝까지 아빠의 이야기를 듣길 거부했다. 진실이 드러나기 바라지 않는 것일 거라 생각했다. 아이는 (엄마의 죽음을) 알았을 수도, 몰랐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팩트가 아니라 '나의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 그 아이를 많이 생각했다. 바이리의 딸을 연기한 배우에게도 엄마가 죽었다는 게 무슨 뜻인 줄 아는지 등에 관해 많이 이야기하면서 그 신을 찍었다.

영화 '원더랜드' 스틸컷.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 영화를 연출하는 건 감독이지만, 감독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데 배우들도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런 지점에서 자신이 상상하고 그리려 했던 캐릭터와 세계를 각 배우가 자신의 해석으로 더 멋지게 구현해 준 순간을 꼽아본다면 어떤 장면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 해리(정유미)와 현수(최우식)가 해리의 인공지능 부모님과 같이 밥을 먹는 장면이다. 그때 두 배우가 가진 땅에 딱 붙게 만드는 연기의 힘이 있다. 사실 별 내용 없는 신이고, 지루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 부모와 같이 밥을 먹으면서 술을 따라주고 싶지만 따라줄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를 정유미와 최우식 배우 자체가 가진 힘을 통해 정말 땅에 잘 붙여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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