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김태용 감독이 무려 13년 만에 신작 '원더랜드'로 돌아왔다. 영상 통화를 하다가 문득 '화면 너머에 있는 저 사람은 실재하는 것일까?' '저 공간에 진짜로 존재하는 것일까?' 등의 의문이 김 감독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세계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계속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을 진짜처럼 여기고 믿는다면 그 관계는 지속되는 게 아닐까?' 등으로 이어진 생각 결국 김 감독을 움직이게 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원더랜드'다.
영상 통화에서 시작해 '관계'에 대한 질문은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 통화 서비스 '원더랜드'. 관객들은 '원더랜드' 서비스와 그 안에 담긴 여러 사람의 이야기와 그들의 관계를 보며 자신만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화 개봉일, 김태용 감독을 만나 '원더랜드'를 둘러싼 몇 가지 궁금증에 관해 물었다.
영화의 주제가 여러 사람의 관계나 합이 모여야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정인과 태주의 이야기를 보면 '살아 돌아온 태주를 정인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난 왜 기계보다 인간을 받아들이기 더 어려운 걸까?' 등의 질문이 생긴다. 바이리의 엄마는 사진은 받아들이는데 기계로 구현된 딸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받아들이기'라는 큰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정인과 태주를 보다가 바이리를 보게 된다면 서로 시너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하나의 에피소드를 깊게 갈 때의 장점도 있겠지만, 이런 구조가 주는 장점이 있다. 다양한 받아들이는 형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 구조(옴니버스)가 가지는 장점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 AI와 관련해 자료조사를 하고 전문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공지능이 가진 어떤 점이 가장 흥미로웠나?
처음엔 '내가 만나는 사람이 진짜일까 아닐까?' '진짜든 아니든 내가 소통할 수 있으면 진짜일까?' 등 관념적인 고민이었다. 죽거나 없는 사람을 진짜 있는 것처럼 구현해 주는 기술이 곧 나오겠다는 상상을 해봤고, 그런 쪽으로 시나리오를 써 봤다.
내가 궁금했던 건 우리는 왜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이상한 감정이 들고, 이 감정은 왜 생긴 건가 등이었다. 뇌과학자들이 주로 이야기하는 건 뇌는 사리 판단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판단한 걸 합리화하기 위해 쓴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인공지능 이야기를 통해서 감정의 변화를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영화 속 고고학자가 된 바이리가 찾는 것도 '생명의 나무'이고, 현실에서의 기억을 되찾고 원더랜드 시스템의 시작점처럼 보이는 곳에 도달해 만난 것 역시 생명의 나무와 닮은 형상이었다. '생명의 나무'라는 키워드는 어떤 의도로 영화에 활용한 것인가?
창세기 3장 22절에 '생명의 나무'가 나온다. 종교적 관심이 인공지능과 연결이 안 될 수 없다 보니 영화에서 짧게나마 등장한다. 고고학자가 무엇을 찾을 것인지 시나리오를 쓸 때 고민하다가 생명의 나무를 생각해 봤다.
에덴동산에 선악과만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선악과나무 옆에 생명의 나무도 같이 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이 생명의 나무를 취할까 봐 에덴에서 쫓아낸 것인데, 우리는 그 중간을 빼고 선악과를 먹어서 쫓아냈다고만 알고 있다. 영생을 꿈꾸기 시작하면 안 되기에 에덴동산에서 내쫓은 것이다.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더라.
인공지능이 죽음 이후 우리를 계속 살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고, 생명의 나무를 찾으려는 고고학자가 활동하는 곳이 요르단이다. 요르단이 '요르단강을 건너다'의 그 요르단이다. 실제 요르단에서 생명의 나무를 찾는다는 게 우리 영화와 연관이 있었다.
영생과 관련된, 죽음 이후 세계를 인공지능으로 구현한다는 게 에덴동산의 생명의 나무를 취한다는 것과 비슷했다. 신이 우리를 버렸듯이 어느 순간 인공지능이 우리를 파괴할 거란 두려움이 있는데, 그거랑 연결해 보고자 했다.
▷ 영화 마지막을 보면 바이리는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고, 또 딸 바이지아 역시 엄마인 바이리의 죽음을 금세 받아들인다.
내게는 영화의 결말이 영화를 시작한 계기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가 누가 누구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보니, '인공지능 엄마를 엄마로 받아들일 거냐' '바이리 엄마가 내 딸이 아닌 기계를 내 딸로 받아들일 거냐' '돌아온 태주를 받아들일 거냐' '인연과 관계가 확장되면서 기계를 내 일부로, 내 가족으로 받아들일 거냐' 등 '받아들인다'는 가장 핵심적인 태도가 바이지아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바이지아가 (엄마의 죽음을) 알고 있었을까 몰랐을까, 찍으면서도 그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짧은 영상의 레퍼런스가 있었다. 엄마가 병원에 오래 있다가 돌아가셨는데, 아이는 엄마의 죽음을 모르고 아직 병원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빠가 아이에게 말할 시기를 놓치다가 일 년쯤 지나서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지는 몰라도 끝까지 아빠의 이야기를 듣길 거부했다. 진실이 드러나기 바라지 않는 것일 거라 생각했다. 아이는 (엄마의 죽음을) 알았을 수도, 몰랐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팩트가 아니라 '나의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 그 아이를 많이 생각했다. 바이리의 딸을 연기한 배우에게도 엄마가 죽었다는 게 무슨 뜻인 줄 아는지 등에 관해 많이 이야기하면서 그 신을 찍었다.
▷ 영화를 연출하는 건 감독이지만, 감독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데 배우들도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런 지점에서 자신이 상상하고 그리려 했던 캐릭터와 세계를 각 배우가 자신의 해석으로 더 멋지게 구현해 준 순간을 꼽아본다면 어떤 장면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 해리(정유미)와 현수(최우식)가 해리의 인공지능 부모님과 같이 밥을 먹는 장면이다. 그때 두 배우가 가진 땅에 딱 붙게 만드는 연기의 힘이 있다. 사실 별 내용 없는 신이고, 지루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 부모와 같이 밥을 먹으면서 술을 따라주고 싶지만 따라줄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를 정유미와 최우식 배우 자체가 가진 힘을 통해 정말 땅에 잘 붙여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