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노조 "대학병원 75%, 의·정 사태 장기화로 비상경영"

113개 병원 실태조사…국립·사립대병원 47곳 중 35곳 비상경영 선포
인력운영 효율화·인건비 절감에 방점…간호간병통합서비스 폐쇄·축소, 상당수
대학병원 대다수, 일반→PA 간호사 전환했는데…관련교육 미실시 30%에 달해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23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 무기한 집단휴진 계획에 대한 해당 대학병원노조의 입장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의대정원 증원으로 인한 의·정(醫政) 사태가 넉 달 넘게 계속되면서, 전공의들이 빠져나간 대학병원 대다수는 '비상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상가동률과 외래 감소세 등에 따라, 적지 않은 병원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 운영을 폐쇄·축소하는 등 환자가 제공받는 의료 질은 하락한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가 전공의의 빈자리를 대체하고자 시범사업을 활용 중인 진료지원(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의 급작스런 증원도 같은 맥락에서 지적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지난 4월 24일부터 5월 22일까지 총 113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현장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24일 이 같이 밝혔다. 조사대상은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이 소속된 국립대병원(10곳)과 사립대병원(37곳), 지방의료원(26곳), 민간중소병원(14곳), 적십자병원(4곳), 근로복지공단병원(6곳) 등이다.
 
노조가 파악한 결과, 지난달 기준으로 의사 집단진료 거부 사태에 의해 비상경영을 선포한 병원은 조사대상 기관의 46%(52곳)에 달했다. 이 중 전공의(인턴·레지던트)의 수련을 담당하는 국립대·사립대병원의 경우, 74.5%(47곳 중 35곳)가 비상경영을 유지 중인 것으로 나타나 더 타격이 컸다.
 
비상경영은 크게 △병상운영 효율화 △인력운영 효율화 △비용 절감 등 3가지 내용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반병동을 통폐합·축소하는 한편 중환자실 병상을 축소 운영하고, 진료과를 일시 축소하거나 긴급치료병상 확충계획을 보류하는 식이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선 인력 동결과 한시적 정원 감축, 특별 명예퇴직제, 정규직 신규채용 제한·중단, 신규직원 발령 유예 등이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퇴직·사직, 계약 만료 등에 따른 자리 미충원과 인력 파견 운영, 무급휴가·무급휴직제 등과 함께 일방적 근무형태의 변경도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진료 공백을 메우기 위한 PA 간호사 확대와 당직제도 조정 등의 조치도 병행되고 있다. 
 
의대 증원을 놓고 의정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20일 대구 한 대학병원 진료실 앞에 전공의 부재 관련 안내가 송출되고 있다. 연합뉴스

비용 절감 방안으로는 올해 예산 전면 재검토 및 조정, 시설투자 지연·중단, 장비 구입 감축, 운영·관리비 절감을 위한 지출 최소화, 의료 소모품 절약 등이 전방위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특히 연차휴가 사용을 독려하거나 시간외근무를 제한·통제하고, 연장근로 관련 보상휴가제, 근시간 단축, 야간근로·당직근무 축소 등이 적극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병원은 극심한 자금난으로 건강보험 급여 청구 주기를 단축했다. 월 200억이 넘는 '차입 경영'을 시행하는 곳도 있다는 게 보건의료노조의 조사 결과다. 행사비나 부서운영비·교통비 등 각종 비용 지급이 '반토막' 난 곳도 있었다.
 
노조는 의료기관 파행운영의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와 간호사 등 타 직역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에 따르면, 보호자가 상주하거나 간병인을 별도 고용하지 않아도 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폐쇄되거나 축소 운영된 병원도 24곳으로 집계됐다.
 
당초 당국은 내달부터 중증 수술환자, 치매·섬망환자 등을 전담 관리하는 병실을 도입하고, 병원 전체 단위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현실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조는 "중증·수술·응급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운영조차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상운영의 초점이 대개 인건비 절감에 맞춰져 있다 보니, 병원을 지키고 있는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고통도 크다고 토로했다. 영남의 한 국립대병원은 약 500명 규모의 신규간호사 채용을 중단했고, 경기 지역 사립대병원도 예정된 간호사 채용을 270명 가까이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병원 '10곳 중 9곳'은 전공의의 일부 업무를 대신하는 PA 간호사를 확충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자격별로 간호사의 가능업무범위를 늘린 정부의 시범사업에 맞춰, 증가한 업무 관련 최소한의 교육 없이 현장에 투입한 곳도 많다는 지적이다.
 
이번 실태조사에 참여한 대학병원 총 47곳 중 단 네 곳을 제외하고는(43곳, 91.5%) 모두 PA 간호사를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간호사를 PA간호사로 전환한 국립대·사립대병원은 93.6%(47곳 중 44곳)나 된 반면, PA간호사 관련 교육훈련을 실시하지 않은 대학병원은 29.8%(47곳 중 14곳)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PA간호사의 의사업무 대체로 의료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의료기관도 한 곳 있었다. 근접오류(아차사고)가 일어났다고 답변한 병원은 8곳으로 좀 더 많았다.
 
노조는 "제대로 된 교육훈련 과정도 없이 의사업무를 PA간호사에게 떠넘기는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료사고까지 발생하고 있단 사실을 보여준다"고 정부와 병원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의사 진료거부 사태 장기화는 노동자들의 고용과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사태 당시에 이어 현 진료 파행을 온몸으로 메우고 있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의 희생·헌신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조속한 진료정상화 조치가 없으면, 참을 만큼 참아온 보건의료노동자들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사들은 진료거부와 집단휴진을 전면 중단하고 업무복귀하여 진료 정상화에 협력해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는 모든 정치력을 발휘하여 대화 국면을 열고, 이달 내 진료정상화를 이룩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협을 상대로 보건의료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교섭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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