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7·23 전당대회'를 한 달 앞둔 23일 나경원 의원과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동시에 차기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모두 국회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연달아 출마회견을 했는데, 각 후보 지지자들 수십 명이 한곳에 모이면서 첫날부터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한 후보가 '채 상병 특검'에 '찬성' 입장을 밝히자, 나 후보가 "순진한 발상이고 위험한 균열"이라고 저격하는 등 후보 간 기싸움도 팽팽했다. 원 후보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결과가 미진할 때 먼저 특검을 요청하자는 게 여당 입장"이라고 반박하고, 윤상현 후보는 "민주당 대표 출마 선언으로 착각할 정도"라고 비판하는 등 한 전 위원장을 향한 집중 공세가 이어졌다. 특검 찬반을 기점으로 '친윤(親윤석열) vs 비윤(非윤석열)'의 구도로 좁혀지는 모양새다.
주요 당권 주자들의 출마 선언으로 전당대회 레이스의 막이 본격 오른 가운데, 이미 대세론을 구축한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의 분위기가 반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동훈 "채상병 특검 수용" 발언에 나경원·원희룡·윤상현 일제히 '맹폭'
이날 한 후보는 오후 2시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국민들이 의구심을 갖고 계신다. 지금 이 시점에서 국민의힘이 특검에 반대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며 "진실규명을 위한 특검을 우리 국민의힘이 나서서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 윤석열 정부와 우리 국민의힘을 진정으로 살리는 길"이라고 밝혔다.
다만 현재 야당이 발의한 특검법은 "특검 추천권이 야당에게 있어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며 새로운 내용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대통령도 아닌 공정한 결정을 담보할 수 있는 제3자가 특검을 해야 한다"며 "민주당이 무조건 민주당이 고르는 특검으로 해야 한다고 한다면 그 속내가 진실 규명이 아니라 정략적이라는 걸 자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수처의 수사 종결 여부를 특검법 발의에 조건으로 달지 않겠다. 그 사족을 달았을 때 국민들이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하지 않겠느냐"며 "그런 특검법을 제안한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나 후보가 즉각 반응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한 후보의 특검 수용론, 순진한 발상이고 위험한 균열"이라며 "민주당의 특검은 진실 규명용이 아닌 정권 붕괴용이다.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에 한 후보는 바로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 특검법을 받자는 것이 아니다. 나 후보가 오해하신 것 같다"고 반박 메시지를 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 윤상현 후보도 곧바로 한 후보 비판에 동참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공수처 수사를 지켜보자는 입장을 짓밟고 내부 전선을 흐트러뜨리는 교란이자 자충수다. 당 대표가 되셔도 이렇게 당을 운영하실 건가"라고 지적하며 "공수처 수사가 진행 중이고 대통령께서도 그 수사가 미진하다면 먼저 특검을 요청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특검법을 발의하겠다니, 순간 민주당 당 대표 출마 선언으로 착각할 정도였다"고 날을 세웠다.
원 후보 역시 출마 선언 후 기자들과 만나 "현재 공수처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며 "우선 공수처의 수사가 철저히 진행되도록 하고, 결과가 미진하다면 그 때 특검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히며 특검법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韓, 김건희 특검엔 '반대'…"특별감찰관 임명·제2부속실 설치" 촉구는 지속
한 후보는 이른바 '김건희 여사 특검'으로 불리는 특검 법안들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도이치모터스 사안은 (주범의) 항소심 판결이 임박한 상황이고, 가방 사안 같은 경우는 사실 관계는 대부분 드러난 상태에서 법리 판단만 남은 문제라 지금 단계에서 특검을 도입할 문제는 아니다"고 밝혔다.다만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이고 속도감 있는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선택받은 정부다. 검찰이 법 앞에 평등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신속하게 수사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며 "누구든 수사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두 사건 모두 검찰에서 진행하고 있는 만큼 하루 빨리 김 여사 등을 소환해 조사한 뒤 결론을 지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 후보는 이에 그치지 않고 "대신 국민들 걱정을 덜어드려야 한다"며 "제가 당 대표가 되면 특별감찰관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국민의힘이 적극적으로 추천하겠다. 그리고 투명성을 재고하기 위해 제2부속실을 즉시 설치하자고 강력 요구드리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선명해진 '친윤vs비윤' 구도…결선가면 친윤 결집해 '어대한' 저지할 수도
대표적 비윤계 인사인 유승민 전 의원과 안철수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한 후보가 '채 상병 특검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비윤계'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한 모양새다. 반면 나경원·원희룡·윤상현 후보는 특검법 '반대'를 고수하면서 '친윤계'로 묶이고 있다. '4파전'이지만, 3대 1의 '친윤vs비윤'의 구도가 선명해지는 셈이다. 때문에 '결선투표'로 갈 경우 친윤계가 결집해 '어대한'을 뒤집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현행 국민의힘 당헌·당규상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 본선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2위 득표자는 결선을 치르도록 돼 있다. 지난 전당대회에선 4명이 본선에 올라 김기현 후보가 52.93%를 득표해 결선 없이 끝났다. 안철수 후보(23.37%)가 천하람 후보(14.98%)와 비윤계 표를 나눠서 가져갔고, 친윤 조직표가 모두 김 후보에게 쏠렸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당시 안철수·천하람 후보의 합산 득표율은 38.35%였지만, 최근 4·10 총선 참패로 타격을 받은 윤 대통령의 리더십과 최근 '어대한'으로 불리며 한 후보가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 후보가 1차 본선에서 바로 과반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어대한'은 '국민의힘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통해 생긴 현상일 뿐, 막상 투표권이 있는 책임당원들을 상대로는 여전히 '친윤 조직표'가 더 힘을 발휘할 것이란 반론도 제기된다. 만약 결선으로 갈 경우 친윤표가 결집해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전당대회 투표 비중은 당원이 80%, 일반국민이 20%다.
"대선 불출마"로 한동훈 압박한 나경원…"1년 후"라며 즉답 피한 한동훈
대권 주자들이 일제히 당권에 도전했다는 점 또한 하나의 변수로 꼽힌다. 이날 오후 1시 가장 먼저 출마선언을 진행한 나 후보는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눈길을 끌었다. 그는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저한테 있어서 대권 꿈도 정말 접을 수 없는 소중한 꿈"이라면서도 "그러나 당이 너무 어렵고 정말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이는 차기 대권 도전 가능성이 높은 한 후보를 겨냥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의하면 대선에 출마할 경우 당 대표는 선거일 1년 6개월 전에 사퇴해야 한다. 오는 대선이 2027년 3월로 예정돼 있는 만큼 차기 당대표가 대선에 나가려면 2025년 9월쯤에는 사퇴를 해야 한다. 이 경우 대표 임기는 1년 2개월만 채울 수 있으며, 2026년 6월에 치러지는 지방선거 또한 지휘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조항 때문에 당 안팎에선 차기 대선에 나갈 예정이 있다면 당 대표엔 출마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윤 후보도 나 후보와 함께 한 후보를 겨냥했다. 그는 "대선에 나가지 않고 당대표 임기를 채울 생각인가. 적어도 이 질문에는 정정당당하게 밝히고 출마해야 한다. 그게 한동훈답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를 의식한 한 후보는 관련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되게 먼 미래다. 지금 당장은 당의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의 기반을 만든다는 것에 집중할 때"라며 "1년 뒤 시점에서 고스란히 가장 강력하게 우리 지지자들을 대변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라는 판단이 되면 대선후보로서의 자격을 갖춘 후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1년 후 여론조사 등을 통해 당 지지층이 자신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날 경우, 대표직에서 사퇴하거나 당헌·당규를 개정해서라도 자신이 대선에 출마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미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