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새벽 제주에 내리는 비가 올해 장마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한다. 마음이 한켠이 편치 않다. 최근 잇따랐던 '재난의 추억'이 소환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15일 충북 청주에서 폭우에 범람한 강물이 지하차도를 덮쳐 차에 타고 있던 시민 14명이 숨지는 오송 참사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19일, 경북 예천 내성천 수해 현장에선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원 고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숨진채 발견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이어졌다.
한 해 전인 2022년 9월 6일 새벽, 필자는 경북 포항과 경주를 강타했던 태풍 힌남노의 한가운데 있었다. 새벽녘 차를 몰고 이동하던 10여분간의 출근길은 위력적인 강풍과 곳곳에 형성된 물웅덩이로 인해 끔찍한 악몽이었고, 도심에 위치한 사무실 건물 앞은 이미 차바퀴 높이만큼이나 물이 차올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삽시간에 불어난 강물로 포항 냉천이 범람해 인근 인덕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7명의 주민이 희생됐다. 포항제철소도 침수 피해와 매출감소로 2조원 이상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힌남노가 포항지역을 관통하던 6일 새벽 3시~7시까지 4시간 동안의 강우량은 동해면 374mm, 오천읍 354mm로, 500년 빈도를 초과하는 기습폭우로 기록됐다.
기상이변을 일으키는 주범은 단연 기후변화에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지구의 지표 온도는 1850년~1900년에 비해 현재 섭씨 1.1도 상승했다. 이대로 놔두면 금세기 말 3도 이상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구온도 1도 상승의 위력은 상상외로 크다. 지구 평균온도가 1도 상승하면 극지에서는 2~3도 오르는 셈인데 빙산과 빙하가 빠르게 녹아 해수면 상승과 이상기후로 이어진다. 안데스산맥 등 세계 곳곳의 빙하도 녹기 시작해 인근 주민들의 물부족을 야기하기도 하고, 또한 기온 상승은 지구 표면의 증발량과도 연관이 있어 기습폭우와 홍수, 도시 침수 등의 재난을 야기한다.
특히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지하시설물이 위험에 빠지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고를 계기로 감사원이 전국의 지하차도 실태를 조사한 결과 159개 지하차도가 홍수시 차량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는 등 대형참사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지자체의 지하공간 침수 대비태세가 크게 미흡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인근 하천에서 홍수경보가 발령됐는데도 관리기관들이 '조치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차량진입을 통제하지 않았던 사례가 드러났는데, 감사원은 올해서야 행안부와 환경부, 국토부 등에 관련 조치를 요구해 뒤늦게 통제기준 수립 조치에 들어갔다고 한다.
매년 되풀이된 대형 재난을 막지 못한 이유가 정부와 지자체의 관리부실과 안전불감증, 안이한 대응에 있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업에만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할 게 아니라 대형 인명피해를 수반한 재난사고 발생시 행정기관에도 엄중한 책임을 물어 법 취지를 살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하천주변에 위치한 전국 곳곳의 아파트 지하주차장도 가림막 설치와 비상시 출입 통제 등의 대응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기상청은 전세계 기상청의 기후예측모델 결과를 토대로 올여름 우리나라는 평년보다 덥고 비가 많이 내릴 걸로 예측했다. 기후변화의 여파로 전통적 의미의 여름장마보다는 단기간의 집중호우 가능성도 커졌다. 면밀한 대비태세로 소중한 인명과 재산을 지키는 게 국가의 책무란 점을 명심하고 정부는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비상한 각오로 임해주길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