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과 여야는 물론, 정부도 올라탔다. 깜빡이도, 브레이크도 보이지 않는 '감세 드라이브'에 재정건전성을 줄곧 강조하던 '나라 살림 지킴이' 기획재정부도 "국정 철학에 부합한다"며 거들고 나섰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7일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실의 '종부세 폐지-상속세 최고세율 30% 완화'안에 대해 "기본 방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화답했다.
앞서 대통령실 성태윤 정책실장은 지난 16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지금 당장 전면 폐지할 경우에는 세수 문제가 있는 만큼 사실상 전면 폐지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종부세 제도를 폐지하고 만약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재산세의 일부로 흡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상속세에 대해서는 "OECD 평균은 약 26.1% 내외로 추산되기 때문에 최대 30% 내외까지 인하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일괄 공제도 좀 더 높여서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물려받는데 상속세 부담은 갖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상속세 일괄 공제 한도와 과세 표준 세율을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비록 최 부총리는 "다양한 검토 가능한 대안 중 하나일 뿐"이라며 아직 세법개정안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을 아꼈지만, 대통령실의 정책 보좌를 관장하는 정책실장이 공중파 언론에 직접 나와 구체적인 숫자까지 언급한 '대안'의 무게가 결코 가벼울 리 없다.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뚜렷한 답변은 내놓지 않았지만, 최 부총리는 대통령실의 '종부세 폐지-상속세 최고세율 30% 완화 및 공제한도 확대'라는 감세 방안에 "이런 방향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현행 상속세·종부세가 과도한 세 부담을 부른다는 주장은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다. 고소득·고자산가 뿐 아니라 평범한 중산층까지 부담을 준다는 지적도 일견 합리적이다.
문제는 정부 재정이다. 올해 들어 나라 살림을 한눈에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지난 4월 말 누계 기준 64조 6천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사상 초유의 역대급 세수 펑크를 빚었던 지난해보다도 19조 2천억 원 적자폭이 늘어 역대 최악의 기록이다.
종부세·상속세 완화를 먼저 거론하고 나섰던 더불어민주당도 대통령실의 전격적인 감세안에는 '부자 감세'라며 선을 그었다. 민주당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작년에만 56조 원이고, 올해도 30조 원이 넘는 세수결손이 예측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강조하고 있다"며 "이러한 국정운영 기조에도 불구하고 세수 확충 방안을 내놓지는 않고 부자감세라고 하는 상속세 개편과 종부세 폐지를 추진하는 것을 민주당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종부세 폐지 주장은 인구 구조 변화 속에 지방 소멸 위기에 놓인 지자체 재정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각 군·구에 교부되는 부동산교부세액은 100% 종부세에서 충당하는 구조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에 따르면 이미 현 정부 들어 종부세를 감면한 결과 지난해 부동산교부세는 전년대비 2조 6068억 원 감소한 상태다.
물론 종부세와 상속세를 모두 합쳐도 지난해 전체 국세 수입의 5.6% 내외에 불과하다. 종부세·상속세를 깎는다고 재정이 뿌리채 흔들린다는 류의 비판이 과도한 억측일 수 있다.
다만 정부에 대한 불신이 퍼지는 점은 우려된다. 종부세, 상속세 대상이 일부 중산층까지 확대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서민과는 거리가 멀고, 부자일수록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세금이다. '부자 감세' 논란은 태생부터 피할 수 없다.
애초 지난해 역대급 세수 펑크는 윤석열 정부의 대대적인 법인세 인하 조치에서 시작했다. 이를 수습하려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던 정부가 정작 '부자 감세'를 추진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재정 적자 가계부를 들이밀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이 감세안을 제기하고 나서면서 논란의 불길이 일어날 것은 예상됐던 일이다. 그동안 민주당을 중심으로 중산층 감세로 거론됐던 종부세 완화·상속세 공제 확대 논쟁은 삽시간에 종부세 폐지·상속세 최고세율 완화로 번졌다.
이에 대해 최 부총리는 이번 제안에 "건설적 논의가 이뤄져서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기본적으로 윤석열 정부 국정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성을 갖고 있고,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기본 방향에 공감한다"고 높게 평가하며 '소방수' 역할을 자임했다.
일부 기자들이 대통령실과 사전 조율은 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자 최 부총리는 "경제 정책 사령탑은 기재부이고, 기재부 장관인 저"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연이은 '감세 기조'에 재정을 유지하도록 세수를 보충할 방안을 물을 때에는 질문에는 "조세지출 효율화 측면의 노력도 병행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만 반복할 뿐, '꿀먹은 벙어리'에 머물렀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최 부총리가 기재부 수장으로서 추구해야 할 재정 건전성 등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정세은 교수는 "현 정부가 감세와 재정 건전성을 내걸고 조세 재정 정책의 기조를 잡으며 낙수 효과에 따른 성장을 약속했지만,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면 세수 결손만 크게 나면서 경기가 악화돼 재정 건전성도 지킬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부자 감세를 추구하는데 법인세보다도 더 낙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세목이고, 올해 세수 결손은 더 심각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세제 정책의 목표는 경기 상황, 구조적 대응, 미래 투자 등 다양한데, 그저 중산층 세금을 깎겠다는 인기 영합적 정책 방향이고, 세수 문제는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부족한 세수만큼 결국 서민에게 증세하거나 정부가 할 일을 하지 않는 둘 중 하나의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