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한 형사와 수사 1반이 앙상블을 이뤄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성장 과정을 그렸는데 10부가 너무 빨리 끝나는 느낌이었어요. 마지막에 반장이 된 박영한의 모습과 이후 최불암 선생님이 출연하셔서 박영한의 현재 모습으로 마무리가 됐는데 정말 눈물이 많이 났어요. 실제 선생님 곁에 동료 배우들이 계시지 않는 상황과 박영한의 현재 상황이 동일시 되면서 현실인지 드라마인지 구분이 안 가더라고요. 잘 귀결이 됐다 싶어요."
전설적인 드라마와 배우의 작품을 재해석한다는 부담감이 당연히 없지 않았다. 다만 과거 최불암이 연기했던 박영한 반장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깨에 얹어진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최불암 선생님의 대표작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했어요. 대본 리딩 당시에 조언을 해주셨던 건, 박영한의 화가 가슴에 잘 묻어져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일념으로서의 화가 잘 표현됐으면 좋겠다는…. 그게 결국 키포인트가 됐죠. 따라하려고 노력을 하면 할수록 연기에 매몰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 로맨티스트, 코믹함 등 여러 다채로운 모습을 박영한에 잘 녹여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처음부터 '반장'은 아니었으니까 아직 무모하고 성숙되지 않은 박영한을 더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그 성장 과정을 그리고자 했어요."
"세상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피해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비춰졌으면 해요. 그런 관점이 작품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고요. 작품으로 제 정신과 태도를 보여줄 수 있고,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다보니 지금까지 그런 드라마들을 선택해 왔어요. 다만 캐릭터에 대한 연기는 조금 고민이 생길 거 같아요. 선인과 악인을 구분 짓지 않고, 미스터리한 인물을 흥미를 갖고 찾아야 되지 않나 싶네요. 배우로서도 노력해야 할 부분이고요."
'빌딩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림자는 길어진다'. 이제훈이 꼽은 '수사반장' 최불암의 명대사다. 각기 다른 사람의 인생을 표현하는 배우란 직업에 종사하기에 이 사회와 인간 군상에 더 깊게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단 전언이다.
"그 때도 마찬가지고, 지금 현실도 사실 다르지 않잖아요. 발전하는 사회 속에서 길어지는 그림자가 씁쓸하고, 힘들고 아픈 일들이 최소한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배우는 사람을 표현하니까 한 인물의 인생까지도 상상을 많이 하게 되는 거 같아요. 뉴스나 신문, 사회적인 사건 사고들은 당연히 이 인물이 어떤 상황과 시대를 겪었는지 접목을 시키기 위해 알아야 되는 부분 같고요. 캐릭터들마다 '히스토리'가 중요하다고 작품을 하면 할수록 느끼거든요. 그런 확장 없이 단순히 어떤 성격과 외모로 캐릭터를 표현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정신과 태도가 행동에 대한 표현에도 영향을 미치는 거죠. 앞으로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을까 해요."
"이동휘 배우가 자기 시간을 할애하고, 금전적 이득을 포기하면서까지 독립영화를 꾸준하게 작업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져요. 그런 지점에서 결이 같다고 느끼거든요. 저런 친구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서 너무 고마운 존재고요. 연기할 때 원래 제 컨디션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데 이동휘가 우리 소속 배우니까 먼저 컨디션을 체크하게 되더라고요. 대사나 장면이 너무 많을 때는 제가 (제작진에게) '이렇게 해주시면 좋겠다'고 이야기도 하고 그랬어요. (웃음) 같이 연기할 때 실수하면 괜히 부끄럽고 의식이 안될 수는 없었어요. 동휘 배우는 너무 잘해주니까 볼 때마다 뿌듯했죠."
그렇다면 '모범택시'의 무지개운수와 '수사반장 1958'의 수사 1반을 두고 이제훈은 각기 어떤 팀플레이를 펼쳤을까. 무지개운수가 베테랑 배우들의 향연이었다면 수사 1반은 그야말로 신인들의 패기가 돋보였다.
"무지개운수 팀은 워낙 연기 경력이 두터우니까 서로 장난치기 바빴어요. 현장에서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거든요. 의지가 너무 많이 되는 식구들이라 편하고 좋아요. 이번 작품에는 신인 친구들이 많았는데 처음엔 이끌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현장에 금방 적응하고, 자기가 준비한 연기는 확실하게 잘 보여주고 하니까 걱정은 기우더라고요. 신인시절에 제가 긴장했던 걸 생각하면 정말 달랐어요. 확실하게 이끄는 리더가 있는 게 아니라 각 캐릭터들의 감정과 이야기가 모여서 수사 방향을 정하고 나아가고 싶었기 때문에 제가 작가님께 양해를 구해서 저한테 쏠린 대사를 나누기도 했어요. 그렇게 만들어가니까 너무 재미있었죠."
"슬프지만 (장르물을 하는 게) 제 운명인가 싶어요. (웃음) 뒤에 작품들 예정돼 있다고 로맨스 대본을 안 주시지 않았으면 해요. 미뤄서라도 하고 싶은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거든요. '수사반장 1958'도 너무 짧은 감이 있어서 만약 시즌2가 나오게 된다면 즐거울 거 같아요. 드라마는 시간, 영화는 티켓값이 아깝지 않은 작품을 보고 싶은 게 사람들 마음이잖아요. 그런 작품들을 1차적으로 고민해요. 예전에는 제가 꽂혀서 그냥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젠 사람들이 재미있게 볼까 생각하거든요. 또 재미를 넘어서 그 안에 담긴 의미나 메시지가 전달되면 이 작품이 생각할거리로 남겨지면서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물론, 삶의 스트레스를 뒤로 하고 행복하게 울고 웃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찬사죠."
감독, 제작을 겸하는 배우들처럼 이제훈도 언젠가 작품 기획 영역에 본격 참여할 꿈을 꾸고 있다.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일단 작게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시작할 예정이다. 실제로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존재한다.
"연출은 갑자기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 같아요. 제안을 주시는 것도 있지만 지금은 배우로서 해야 할 역할이 주어진 게 있으니까요. 제작은 처음엔 영화를 만들고자 했어요. 그런데 역시 투자 부분이 쉽지 않았고, 드라마 작업도 생각을 하게 됐어요. OTT 운영하는 곳과 계약을 맺고 지금 작품은 집필 단계에 있어요. 아직 제가 배우로 출연할 지는 결정되지 않았는데, (제가 제작한) 장편 영화보다 시리즈가 빨리 나올 수도 있겠더라고요."
글로벌 OTT 시리즈들이 대량 제작되면서 배우로서의 고민도 나날이 깊어가고 있다. 이제훈은 데뷔작인 영화 '파수꾼'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선택에 따른 성공, 때로는 시행착오를 겪어 왔다. 앞으로도 배우란 직업에 있어 치열한 고민이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연기에 책임감을 갖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신인 시절에는 연기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끝이 아니라 작품의 시작부터 과정, 그리고 결과물까지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를 위해 많은 아이디어를 생각해서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고요.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에 사람들에게 얼마나 매력있는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